[명법문] “홍시도 젊은 날엔 많이 떫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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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홍시도 젊은 날엔 많이 떫었지”
  • 적경 스님
  • 승인 2019.03.2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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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배문

이제 4월입니다. 꽃샘추위에 아직은 곳곳에 싸늘한 바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도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입니다. 따듯한 봄바람처럼 우리의 가슴에도 따듯한 봄이 찾아오기를 기원해봅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는 새해 인사를 두 번씩이나 합니다. 첫해 첫날 새해 인사와 설날 세배하며 복 받으라고 인사를 합니다. 이래저래 우리는 복 받을 일만 많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복 받는 날입니다.

똑같은 날들이지만 새해, 묵은해 구분 짓는 것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다짐을 위한 의미부여일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지난 한 해의 모든 것들(그것이 좋든 나쁘든)이 새해의 자양분이 되도록 힘쓸 일입니다. 삶은 내가 의미부여한 만큼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아름답게 의미부여를 하면 매 순간이 선물이 되고 복이 되겠지만, 부정적인 의미부여를 하면 고통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복은 겸양(謙讓)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복 있는 사람과 박복(薄福)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살펴보면 박복한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수용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싫어 난 못해’, ‘그걸 왜 내가 해야 해?’ 이런 식입니다. 반면 복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잘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내가 해볼게’, ‘괜찮아’, ‘고마워’ 이런 유형인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복을 기원해 주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복(福)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보면 볼 시(示)에 한 일(一)과 입 구(口), 그리고 밭 전(田-경제력)이 있습니다. 부처님도 복덕과 지혜 즉 복혜(福慧)를 구족하셨다는 표현을 씁니다. 저는 기복(祈福) 불교를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욕망에서 묻어나는 기원이 아니라 순수한 정성 어린 기복입니다. 

기복이라는 글자는 놀랍게도 관찰(示) 없이는 형성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관찰은 모든 것의 발전을 가져다줍니다. 의학의 발달도 관찰 없이는 불가능하며 과학의 발달도 그렇고 약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도 오랜 연구와 관찰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놀랍게도 깨달음도 관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복은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재해 있는 나의 복을 발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작은 씨앗을 보면 그 씨앗 속에는 이미 나무로 성장하고 꽃 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성품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 조건이 어떠하냐에 따라 싹이 트고 크게 성장할 수도 있고 조금 자라다 죽을 수도 있고 아예 싹도 못 틔우는 씨앗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미 무량공덕의 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복이 발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욕망하거나 저항하거나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서 싹이 틀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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