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싫어하는 마음, 슬픔, 절망,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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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싫어하는 마음, 슬픔, 절망, 우울
  • 일묵 스님
  • 승인 2019.03.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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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죄는 원래 자신의 고유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건으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죄는 어떤 조건 아래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 실체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화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어떤 조건에서 일어난 하나의 현상이라고 바라보면 그것을 극복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몸을 통해 일어나는 통증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필요한 것이므로 통증은 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통증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화에 해당합니다. 『상윳따니까야』 「화살경」 (S36:6)에 보면 처음 육체적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첫 번째 화살로 비유하고,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적 불만족과 함께 화가 계속 일어나는 것을 두 번째, 세 번째 등의 화살에 비유합니다. 첫 번째 화살에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연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등의 화살에 맞지는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치과에서 실제로 치료받을 때보다 치료받기 전에 미리 고통을 생각하면서 더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몸을 통해 일어나는 통증은 피할 수 없지만, 통증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싫어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더 큰 괴로움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 삶에서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무겁다’, ‘피곤하다’, ‘힘들다’ 하는 식으로 미세한 짜증들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은 모두 몸의 불편한 상태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입니다. 몸의 불편한 상태에 반응해서 화를 일으키지 말고 몸의 불편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몸의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화는 내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육체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으로 끝내야지 그것에 대하여 화로써 반응하여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슬픔과 절망도 화입니다. 슬픔이나 절망도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불만족스럽고 싫어하는 마음 상태이므로 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불교를 인생의 행복을 무시하는 염세적이고 허무적인 종교라고 오해합니다. 그런데 염세적이라는 말 자체가 세상을 싫어하는 것이므로 화의 한 형태이고, 허무하다는 것도 희망이 없고 절망에 빠지는 상태이므로 이것 또한 화의 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지향하는 마음은 온전히 깨어 있고, 탐욕과 성냄이 없고, 또렷하고 활발하며, 지혜가 작용하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집착과 화에서 벗어나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만이 없어지고, 평온하여 지혜가 발현되기에 최적화된 마음 상태에서 어떻게 염세적이고 허무적인 생각이 나오겠습니까. 불교를 염세적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를 잘못 이해해서 나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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