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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원통암 진현 스님“아침 세숫물에 비친 나를 보니, 어느덧 진짜 노옹(老翁)이 되었구나.”
사진: 최배문

은근히 올라간다. 산이야 오르는 맛이지만, 비탈이 급해지면서 숨이 턱 차온다. 화개 의신 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꺾어 오르는 길, 원통암 가는 길. 마을 끝 집 지나자 더 이상 찻길은 없다. 느릿느릿 걸어 오르는데 갈수록 경사가 만만치 않다. 그 급경사에 축대가 쌓아져 있다. 축대는 사면(斜面)을 평면(平面)으로 바꾼다. 평면은 논이었다. 다랑논, 아파트 거실보다 작은 논. 다시 오르면 축대, 축대 위에 다랑논, 논 지나면 축대, 축대 너머에 다랑논. 그런 배열이 끝없이 이어진다. 헤아리며 가는 길에 10층이 넘는다. 화전민이었거나 빨치산이었거나 혹은 은자이었거나,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의 생명이었을 저 논들. 하지만 지금은 응달,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들이 논 볕을 가로채, 논이 아닌 그 위에 벼 아닌 것들이 자란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 축대는 귀부터 허물어지고, 사람들 떠난 땅은 논에서 산으로, 다시 비탈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원통암은 칠불사 선원장 스님이 혼자 산다. 여름 겨울 안거는 칠불사에서 정좌하시고, 해제되는 봄가을에 암자로 돌아온다. 법명은 진현, 그런데 법호가 노옹(老翁)이다. 노옹은 할아비보다 높은 어르신쯤 된다. 법호를 언제부터 쓰셨냐고 물었더니, “마흔셋”이라며 웃는다. 
“보라, 산과 물의 경계가 없었던 성철 퇴옹(退翁), 물을 보면 물이 되고 꽃을 보면 꽃이 되었던 백양사 서옹(西翁), 이른 봄볕에 벙그는 꽃 한 송이 보고 깨달았던 칠불사 지옹(智翁),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했던 왕사 나옹(懶翁), 그리고 여기 서산대사가 출가했던 자리에 원통 노옹(老翁). 하하하! 수덕사 안거 들어가는데, ‘노옹’이면 조계종 제일 어른스님이라고 이름 바꾸기 전에는 못 들어간다는 거라, 사실은 ‘옹(翁)’자가 훨훨 날아간다는 뜻도 있어요, 내가 젊었을 때 몸이 별로 안 좋아서 일부러 그렇게 지은 거요. 지금은 아침에 세수하면서 물에 비친 나를 보고 그러지, 어느덧 진짜 노옹이 되었구나 하고.”

이광이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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