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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에세이] 인연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만행의 배움 끝에 국립박물관에 들어가다
1968년, 결혼 사진

탈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해야만 한다. 같은 자리, 같은 교과서, 같은 담임선생님, 같은 짝 등 대부분 고정된 생활이다. 창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얼마나 어리석은 교육 방식인가. 1960년 봄 대학생이 되었는데 4·19혁명에 연이어 5・16 쿠데타가 일어나 매일 데모에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야 했다. 내 삶에도 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그러나 교양과목이라고 하여 다시 국어와 영어 등을 같은 교실에서 독문과, 불문과, 영문과 학생들과 한 해 동안 들어야 했다. 당시에는 문과와 이과가 함께 한다는 의미로 문리대(文理大)라고 하여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해 5월 어느 날, 짐을 챙기고 정처 없이 경부선 3등 열차를 탔다. 부산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간 곳이 부산 범어사(梵魚寺)였다. 미리 알고 간 것은 아니고, 무턱대고 산을 걸어 올라가다 보니 범어사에 도착했다. 정문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누가 틀어놓고 갔는지 트랜지스터에서 차이콥스키의 비창(悲愴) 교향곡이 비장하게 계곡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다시 정처 없이 걸어 올라가다 마지막 암자에서 짐을 풀었다. 내원암(內院庵)이었다. 그때 나는 시계 초침 소리에도 잠이 들지 못해 장롱 깊숙이 숨겨 놓아야 했고, 형수님이 건강을 걱정하여 삼계탕을 끓여 주어도 한 숟갈도 들지 못할 만큼 예민한 상태였다. 하지만 계곡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내원암에서는 밤새 흐르는 계곡물이 천둥소리 같았음에도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꼭두새벽 사발에 고봉으로 담은 밥도 거뜬히 먹어 치웠다. 가끔 뒷산에도 올랐다.
그 당시 나는 폐결핵을 앓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아랫마을에 내려가 작은 마을의 보건소에서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 주사를 맞아야 했다. 하루는 늦은 저녁에 논밭만 있는 인적 드문 벌판에서 절을 향해 산을 오르다 밤이 되었는데, 반딧불이를 처음 보았다. 처음 보는 것이라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고작 반딧불이를 보고 놀라다니, 서울 촌놈이 따로 없었다.

강우방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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