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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달라이 라마는 어떤 사람인가?제자 청전 스님이 말하는 스승 달라이 라마

티베트불교의 상징적 인물인 달라이 라마를 만나본 사람들은 ‘소탈하다’, ‘인간적이다’, ‘유쾌하다’, ‘따뜻하다’는 말을 한다. 한국 스님으로 30여 년간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 곁에서 지켜본 청전 스님은 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곳에서 티베트불교를 공부하며 어떤 일이 있었을까. 강원도 영월에서 청전 스님을 만났다.

|    달라이 라마에게 반하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위선이 없다는 거예요. 남들 앞에서 폼 잡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게 느껴져요. 인간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성의 향상과 조화를 이끌려는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달라이 라마를 지켜보며 감동을 받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첫 만남 때는 정수리 끝부터 꼬리뼈까지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출가 후 10여 년간 전국의 선방을 돌며 참선수행을 이어왔으나 풀리지 않는 물음에 갈증이 나던 참이었다. ‘혈기 왕성한 남성으로 성적 욕망이 들 때, 수행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의 근본적인 의문에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몇몇 어른 스님들께 물어도 한 생각 돌리라고 말했다. 청전 스님은 그 말이 썩 와 닿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으로 가 남방의 수행 문화를 보았다. 그리고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찾아간 한국 승려 앞에 맨발에 싸구려 샌들을 신고 달라이 라마가 나왔다. 달라이 라마의 모습은 그때도 꾸밈이 없었다.
“어렵게 만난 자리에서 수행을 하며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모두 물었습니다. 존자님께도 성적 욕망으로 고민할 때가 있었냐고 물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한 생각 돌리라’고 말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나 인간적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신도 그러했다’며 ‘그럴 때마다 욕망을 억누르고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더라고요.”

티베트 최고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스님이 성적 욕망이라니, 말하기 힘든 자기 고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해결책을 그대로 말했다. 순수한 그 대답이 청전 스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스님은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 달라이 라마 곁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1987년이었다.

|    순례길에서 마주한 수행자의 삶
고국을 떠나 새로운 자리에서 수행한 지 몇 해가 흘렀을 때. 순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카일라스 산 순례. 청전 스님은 몇몇 일행과 함께 티베트불교의 성산이라 불리는 산으로 향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은 수행과 봉사를 함께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세상으로 나아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떠났습니다. 험준한 산길을 하루에 삼사십여 킬로미터씩 걸었습니다. 비상식량을 챙겼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유목민들을 만나 음식을 얻어먹었습니다. 그 음식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진심으로 그분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유목민들이 스님에게 음식을 나눴던 것처럼 스님은 유목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비상약을 나눴다. 유목민들에게 약은 귀했다. 달라이 라마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았다. 얼마나 약이 귀했으면,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울고 보채는 데도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를 안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약이 떨어져 나눠줄 게 없던 스님은 가슴이 아팠다. 어미 품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난 것은 죽는다.’ 자연의 순리는 예외가 없다. 순례길에서 바라보고 겪은 일들을 통해 스님은 느낀 게 많았다. 수행은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 아니구나. 세상 속에서 몸으로 부딪히고 체험하며 느끼는 것이구나. 사람을 향해야 하는구나. 청전 스님은 달라이 라마에게 배운 것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성산을 돌아보며 직접 체험한 것으로 공부와 수행을 이어나갔다. 달라이 라마 곁을 떠나 세상에서 보고 배우며 수행하던 중 신비로운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현상들을 바로 종이에 적었다. 스승 달라이 라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마자 이야기를 건넸다.

“존자님을 찾아가 물어보려고 적어놓은 것을 꺼내기도 전에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러이러한 경험을 했구나. 이거는 어떤 거고, 저거는 어떤 거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어요.”

청전 스님은 이후에도 매년 한 달 이상 다양한 물품을 챙겨서 히말라야 오지로 향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스승의 곁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한국인 불자들이 달라이 라마를 찾아올 때면 통역을 담당했다. 달라이 라마의 말을 사람들에게 옮기고, 사람들의 말을 달라이 라마에게 전하면서 많이 배웠다.

“하루는 어떤 분 통역을 해주는데, 평소 게으름 때문에 올바르게 살기 힘들다면서 존자님께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께서 ‘저는 그 대답을 할 수 없어요. 제가 게을러서.’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너도 게으르지?’ 하시는데 그 말을 통역하면서 함께 있던 사람들 모두 웃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그렇게 편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항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    “비구 청전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청전 스님은 가지고 있던 사진 중 두 장을 선물로 주었다. 달라이 라마와 마하트마 간디의 사진이었다. 스님은 “존경하는 분”이라며 “수행자라면 청정하고 청빈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인의 올바른 모습을 강조하는 스님은 다른 수식어보다 ‘비구’라는 말을 사용했다. 종교인의 모습과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청전 스님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세상의 나쁜 일들은 종교가 다 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종교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한날 의문이 들어 달라이 라마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다. 종교는 필요하다. 어린아이가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아이는 엄마를 찾는다. 종교는 그런 역할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막에 부르는 그 이름이 되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의 대답이었다. 명쾌했다. 길 위에서 만났던 경험들이 스쳤다. 스님은 가진 것들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고, 나눔에서 오는 행복을 느꼈다. 

“성직자는 말하기 이전에 그 모습에서 존경심이 느껴져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를 보면 그래요. ‘아이고 존자님’ 하고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 축원문 중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나의 이름을 듣는 이 모두 삼악도를 벗어나고, 나의 형상을 보는 이 모두 해탈하게 하소서. 성직자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종교가 더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나 불교가 만연해야 한다는 청전 스님. 모든 스님들이 산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걸림 없는 ‘비구’로서 부처님을 닮은 출가수행자의 삶을 강조했다.

“잘 먹어서 몸을 지킨다? 노(No). 아닙니다. 계속해서 공부해야 몸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여든이 넘은 달라이 라마도 늘 소식하며 자기 공부 시간을 빠트리지 않습니다. 자기를 잘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김우진  kimwj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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