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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티베트불교는 어떻게 세계 불교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나?
  • 김천
  • 승인 2019.04.15 11:24
  • 호수 534
  • 댓글 0

매년 정초 부다가야에는 10만 명 이상이 모여 법회를 연다. 최근 들어 세가 약간은 줄었지만 수만 명이 모이는 것은 다를 바 없고, 그 반은 티베트 출신의 스님과 신도들, 또 다른 반은 전 세계에서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다. 달라이 라마는 며칠 동안 이 법회에서 사전에 정한 주요한 대승불교 논서를 강의한다.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며 수행을 다짐하는 모습은 지극히 모범적인 법회의 정경이다.

부다가야뿐 아니라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는 다람살라에도 곳곳에서 법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푸른 눈의 젊은이부터 백발의 노년까지 가르침을 찾아 몰려온다. 세계 여러 곳에서 열리는 달라이 라마의 해외 법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전 예약을 받고 진행되는 법회장은 인파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서구의 티베트 사원에는 수행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그곳에서 애써서 티베트 말을 배우고 경전을 읽으며 명상하고 대승 보살의 길을 걷겠다고 서원한다. 다른 문화권의 사찰들과는 차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 이런 관심을 일으키는 것일까. 금강경 주석서 『다이아몬드 커터 – 인생과 사업을 관리하는 부처님(Diamond Cutter)』를 쓴 게쉐 마이클 로치(Geshe Michael Roach)는 사람들이 티베트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가르침을 훌륭한 스승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전하고 있다. 승려들의 진지한 노력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젊은 시절 죽음을 넘은 삶의 비밀을 찾아 인도로 방랑을 떠났던 바가 있다. “불교를 알고 싶었는데,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됐다는 사실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인도로 갔지만 아무 데서도 불교를 만날 수 없었다. 어쩌다 들른 티베트 난민촌에서 불교를 만났다.” 그는 스승에게 귀의하고 16년 동안 강원을 다니고 다시 2년 이상 더 공부하고 시험을 통과하여 불교 교학 박사에 해당하는 게쉐가 됐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게쉐 마이클의 예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불교를 접하는 경로이다. 인도에 가면 붉은 승복의 티베트 스님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이 전하는 대승 논서들을 배울 수 있다.

달라이 라마에게 티베트불교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스님은 “티베트불교라는 지역적 특수성보다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공감한다고 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라마 불교라는 명칭에서 비롯되는데, 라마는 산스크리트 구루 즉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 말이다. 그러니 라마 불교란 스승들에 의해 전승된 불교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티베트불교는 나란다 대학의 전통이 대승의 논사들과 위대한 스승들에 의해 전해지고 계승된 대승불교라는 것이다.

800여 년 전 인도 땅에서 대승불교를 꽃 피웠던 나란다 대학이 파괴되고 경전이 불탔을 때, 뛰어난 학승들과 경전이 히말라야 일대로 난리를 피했던 일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티베트 고원의 특성상 그 땅에 전해진 불법은 세상과 고립된 채 타임캡슐처럼 감춰져 이어질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 중국 공산당의 침공 이후 티베트인들은 뜻하지 않게 고향을 떠나야 했다. 달라이 라마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고독한 망명의 길을 나서야 했다. “티베트인들은 나라를 잃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티베트불교는 고향의 둥지를 떠나야 했지만 세계로 불법을 전하게 됐다.”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설명이다.

망명지에서 달라이 라마가 처음 했던 것은 독립운동도 무장투쟁도 아니었다. 티베트 문화의 보전과 승가의 복원에 전력을 다했다. 특히 고등교육기관인 강원의 복원은 처절한 희생과 노력 끝에 이룬 것이다. 티베트 망명자를 위한 정착촌을 건설한 후 인도 정부에 강원을 세울 땅을 달라고 요청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땅’을 원한다는 말에 인도에서 내어 준 곳은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의 황무지. 악어와 맹수가 사는 땅을 티베트 스님들은 낮에는 늪을 메우고 밤에는 경전을 외우며 티베트 3대 강원 세라, 간덴, 데붕을 고스란히 복원했다. 비로소 자기 땅에 전해진 나란다 대학의 전통을 그대로 배우고 수행할 바탕을 만든 것이다. 지금도 강원마다 수천 명의 승려가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간다.

티베트 본토에서 사원이 파괴되고 불교가 금지되고 인민이 처형될 때도 인도 땅에 세워진 강원은 꺼지지 않는 희망이 됐다. 배우기 위해 히말라야를 넘고 16년 동안 강원을 다닌 후, 더러는 세계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떠나고, 누군가는 자기 땅에서 사라진 불교의 싹을 심기 위해 다시 히말라야를 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한때 티베트 땅에 불교가 용인됐을 때, 사라진 줄 알았던 불교가 찰나지간에 회복된 것은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강원에서 철저히 영어를 배운 스님들은 세계로 나아가 나란다 대학 특유의 논리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대승 교학을 전했다. 마음에 깨달음의 씨앗을 심어 세상의 공성을 확연히 이해하는 지혜를 갖고 두려움 없이 생명을 사랑하는 자비심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신비도 우연도 행운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며 보살로서 살아가라는 대승의 가르침은 서구인들이나 젊은 세대, 이교도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르침이다.

서구 사회에서 불교는 전통적인 해석의 굴레가 없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신비를 강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이나 전통적인 규범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 불가사해하고 혼란스러우며 위태로운 삶을 해석할 합리적인 답변을 구하며 의지할 만한 삶의 방식을 원하는 것이다. 많은 서구인들이 티베트의 수행자들로부터, 교육센터에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그 해답을 찾았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에게 “자신의 종교적 배경을 한꺼번에 바꾸지 말라. 유대교인이건 기독교인이건 종교를 버리지 않고도 세상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불교적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설득한다. 개종할 필요 없이 십자가 고상 앞에서도 자비심을 실천하겠다고 서원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교적 배타성을 떠나서 혼란 없이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점도 서구 지성인들에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렛대가 됐다.

달라이 라마는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과거 학승들 특히 비구들에게만 허용됐던 대론(對論)법을 여승뿐 아니라 일반인, 어린이들에게까지 가르치고 있다. 인종과 국적, 사상을 넘어 불교를 배우고 싶은 모든 이들이 불교 논리학인 인명학(因明學)과 대론법을 배울 수 있다. 한마디로 승가 교육의 특권을 개방했다. 누구나 가장 수승한 방식의 불교 학습법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 조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승은 세상에 가르침의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고, 티베트 승가는 그 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현대사회, 특히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의 정점에 선 서구 사회에 불교의 가르침이 파고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승가가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 영향력은 하루아침에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수행자의 확신과 고난 속에서 굴복하지 않는 진실의 힘이 세상을 설득했기에 가능했다. 승가의 교육을 지키고, 교육한 내용을 전해 함께 나누는 노력, 그것이 티베트인들이 망명의 처지에서도 세상에 돌려준 축원이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 

 

김천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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