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상을 가로지르는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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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상을 가로지르는 선禪
  • 박재현
  • 승인 2019.02.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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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수행정신

한 세기전 1919년 1월 21일,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였던 고종 황제가 세수 68세를 일기로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다. 시신은 불과 사흘 만에 완전히 부패했다. 치아가 입안에서 모두 빠져 있었고, 수의를 갈아입히는데 살점이 옷과 이불에 묻어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죽은 사람을 여럿 본 사람들은, 시체가 사흘 만에 그렇게 되는 일은 본 적이 없다고 수군거렸다. 황제가 승하하기 전날 밤에 이기용과 이완용이 입직했고, 수라를 담당했던 시녀 두 사람이 돌연히 죽었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독립선언은 3월 1일 오후 2시에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결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불과 하루 전에 장소가 바뀌었다. 2월 28일 해질 무렵에 오세창과 최린 등 6명이 김상규의 집에서 회합했다. 또 밤 10시경에 손병희의 집에서 다시 모였다. 학생들이 대거 파고다 공원에 모일 예정이어서 자칫 집단시위와 폭력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걱정이 오갔다. 그날 저녁 독립선언 장소는 명월관 지점인 태화관으로 변경되었다.

당일, 독립선언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의 만세 삼창이 끝나자 헌병대가 들이닥쳤다. 참석자들은 포승줄에 묶여 차에 실렸다. 차가 군중 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열두세 살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만해 한용운의 눈에 도드라졌다. 만세를 부르며 호송차를 향해 손을 흔들던 한 아이를 일경이 개천으로 밀어붙였다. 다른 아이는 일경에 의해 팔이 꺾이며 고꾸라졌다. 차량에 같이 탄 헌병이 머리를 숙이라고 고함치며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불교는 무지막지한 세상 속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만해는 답답했다.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도 막막했다. 전래의 선에 대한 그의 진단은 절박했다. “외로운 암자나 쇠잔한 절을 제외하고는 절치고 선실禪室이 없는 곳이 거의 없는 형편이니, 어찌나 그리도 선의 풍조가 떨치는 것이겠는가.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모두가 선을 일으키는 본의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혹은 선실로 절의 명예의 도구로 삼기도 하고 혹은 선실로 이익을 낚는 도구로 삼는 곳도 있어서, 이런 종류의 것이 함부로 나오는데 따라 선실이 차츰 많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진정한 선객이 아주 희귀한 현상을 빚어냈다. 그래서 형편상 부득불 신통치 않은 인간들을 몰아다가 수효를 채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선 수행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만해의 지적은 더 곡진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선객 총수 십분 중에 진정한 선객은 일분에 불과하고, 먹기 위해 들어온 자가 이분이요, 어리석고 게으른데다가 먹기 위해 들어온 자가 칠분이나 된다. 선의 취지의 본말을 모른 채 세월만 끌고, 다만 옛 조사들이 염롱(拈弄, 말을 희롱함)한 몇 마디 말로 구두선(口頭禪, 말로만 하는 선)을 닦아서 금시에 의원수마(意猿睡魔, 마음이 산란하고 잠만 자는 것)의 정다운 벗이 되어 혼침(昏沈, 마음이 답답함), 도거(掉擧, 마음이 산란함) 사이에서 청춘을 보내고 백발을 맞으니, 이는 과연 무엇을 하는 짓이라 하랴.”

세상일에 아랑곳하지 않는 선을 만해는 두고 보지 못했다. 선은 구세의 방편이 되지 못하고 독선과 염세의 변명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불타는 지옥이요 고통의 바다라는 불가의 세계관은, 불을 끄고 약을 줘야겠다는 자비심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나조차 불타거나 허우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해는 당시에 참선하는 사람들이 참 이상하다고 여겼다. 옛 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하게 가졌는데 비해서 처소處所만 고요하게 가지려고 했고, 옛 사람들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데 힘썼던데 비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면 염세가 될 뿐이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하면 독선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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