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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파괴’와 ‘유신’의 “개혁론”만해 한용운의 불교개혁론
  • 김종인
  • 승인 2019.02.26 17:28
  • 호수 533
  • 댓글 0

한용운은 20세기 초에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당시에 한용운 외에도 불교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의 불교개혁론은 차원을 달리한다. 

한용운은 근대 최초로 불교개혁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1910년에 『조선불교유신론』을 썼는데 이는 근대 최초의 불교개혁론이다. 이후 1912년에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이 나오고, 1922년에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이 나온다. 

한용운의 불교개혁론이 주목받는 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불교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승려의 대처를 주장하는 매우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개혁론을 내세웠는데, 이것 때문에 그의 개혁론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또 절친한 백용성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의 반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파격적 개혁론은 승려의 대처만이 아니다. 그는 염불당을 없애고, 불상을 제외한 나한독성, 칠성, 시왕十王, 신중神衆 등의 소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불교의 각종 재 공양 의식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되었다면 한국의 사찰은 마치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기에 파괴된 중국 사찰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사찰은 사찰이 침탈한 외부세력에 의해 파괴된 반면에, 한국의 사찰을 지키는 승려들 자신들에 의해 파괴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불교개혁론의 이러한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더욱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근본적 동기다. 20세기 초는 한국사회에 근대 문명이 쇄도하던 시대였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1905년에 이미 경부선이 완성되어 기차가 서울과 부산을 왕래하던 시대로서 이제 서울을 가려면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기차라는 신문명의 이기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시대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차를 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기차를 만들고 철로를 건설하게 된 배후의 근대 문명의 근본적 구조에 대해서는 모른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피적 변화에 만족한다. 그러나 한용운의 개혁론은 표피적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 한용운 불교개혁론의 파격성과 급진성은 바로 이러한 근대 문명의 근본 구조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한용운의 불교개혁론에는 시대와 문명에 대한 철학적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용운 불교개혁론의 급진성은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식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라는 말로 표방되는데, 여기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표피적 개혁론과는 다른 철학적 통찰력이 내포되어 있다. 한용운 이전의 2,500년 불교 역사상 “파괴”와 “유신”이란 말을 쓴 불교인은 없다. “파괴”와 “유신”이란 용어 자체뿐 아니라 그러한 의미 자체가 불교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파괴와 유신이란 말은 서구에서 유입되어 한용운 당시의 동아시아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회진화론에 대한 한용운의 해석이다. 

“유신”과 “파괴”는 진화의 기본 원리이다. “파괴”란 기존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고 “유신”은 새로운 존재의 생성을 의미한다. “유신”과 “파괴”가 진화의 두 측면 즉,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국불교가 유신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단지 쇠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생성을 의미하는 유신은 모든 존재에 항상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의 세계는 과거의 세계가 아니며 미래의 세계도 아니요, 어디까지나 현재의 세계다.  천지 사이의 형이상 형이하의 문제치고 연구하여 유신하지 않음이 없어서…” 한용운은 이처럼 진화론의 연장선상에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고를 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근대 사유의 특징인 고정 불변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의 부정 즉, 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 불교의 제도 및 정책에 대한 개혁에 대해서만 말하는 다른 불교개혁론자들과 달리 한용운은 이러한 반형이상학적 사고에 기초해서 불법 자체도 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용운은 불교를 유일 절대의 진리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럼 만해에게서 불교는 무엇인가? 한용운은 불교를 가장 우수한 철학이라고 본다. 불교는 다른 여타의 철학 가운데 하나이며, 끊임없이 진화 변화 발전해 가는 문명의 한 요소이다.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불교의 성질을 논하다」라는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만 문명의 정도가 날로 향상되면 종교와 철학이 점차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야 그릇된 철학적 견해나 그릇된 신앙 같은 것이야 어찌 다시 눈에 뛸 줄이 있겠는가? 종교요 철학인 불교는 미래의 도덕 문명의 원료품 구실을 착실히 하게 될 것이다.

한용운은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종교와 철학도 발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종교는 더 이상 절대 진리에 기초한 믿음의 체계가 아니며, 불교 역시 더 나은 불교로 발전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제도와 정책이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변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를 유신해야 한다고 보는 한용운의 태도가 단지 외형적으로 쇠락한 한국 불교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상식적인 사고가 아니라, 근대 서양의 반형이상학적 철학적 전통과 결부되어 도출된 것이라는 것은 한국 불교에 대한 성철의 태도와 비교해 보면 더욱 더 잘 드러난다. 반세기 후의 성철 역시 한국 불교가 쇠락할 대로 쇠락하였다고 진단하는데, 이에 대한 처방으로 그는 “유신”과 “파괴”가 아니라 근본에의 “회귀”를 주장한다. 동일한 문제를 놓고 만해와 성철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다른 처방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이한 처방 배후에는 상이한 세계관이 깔려 있다. 성철은 불교의 진리는 유일절대의 가르침이라고 보기 때문에 현재의 불교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원래 가르침에의 “회귀”를 통해서 바로잡아질 수 있다고 본다. 

문명의 진보와 발전을 특정의 종교적 가르침보다 상위에 놓는 한용운은 불교 교리에 대한 탐구와 참선을 유일무이한 진리탐구 방법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승려의 교육을 논하다」라는 장에서 “조선 승려의 배우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여 노예의 경지로 들어가게 하였다”고 하면서 승려들의 폐쇄적인 공부 내용과 방법을 비판한다. 더 나아가 한용운은 근대적 지식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객관 세계에 대한 탐구까지 승려들의 공부 영역을 끌어들인다. 한용운은 승려들이 공부해야 할 교과목을 세 가지로 이야기 한다. 첫째는 보통학이요, 둘째는 사범학이요, 셋째는 외국유학이다. 만해가 말하는 보통학의 내용을 보면 대체로 근대적 시민 교육에 해당하고, 사범학은 근대적 고등교육을 가리키고 있다. 사범학은 다시 자연사범과 인사사범人事師範으로 나뉘는데 각기 근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에 해당한다. 한용운은 이러한 근대의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토대 위에 불교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해의 이러한 학과 분류에 따르면 결국 불교학은 근대 인문과학의 한 부분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불교학은 더 이상 종학宗學이 아닌 것이다.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 가운데서 가장 세간의 관심을 끌고 또 불교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승려들의 결혼 허용이다. 한용운은 승려들의 결혼을 금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고, 국가의 이익에 어긋나고, 포교에 장애가 되고, 교화에 장애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결혼 금지가 윤리에 어긋나고, 국가의 이익에 어긋난다는 것은 성리학자들이 통속적인 윤리관에 기초해서 불교를 비판하는 논리일 뿐이며 특별히 새로운 내용도 또 관심을 끌 만한 내용도 아니다. 특이한 것은 만해가 결혼 금지가 포교에 장애가 되고, 교화에 장애가 된다고 본다는 점이다. 한용운은 결혼을 금지하는 데서 오는 욕망의 부정 때문에 불교의 포교와 대중 교화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승려에게 독신 생활을 의무화하는 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이 승려가 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로 포교와 교화상의 한계로 연결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스긍하기 어렵다. 대처승과 비구승이 공존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 신도들은 대처승보다는 비구승들을 훨씬 더 선호하고 있다.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 한용운의 논리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 욕망을 긍정하는 자신의 근대적 인간관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육체를 세상에 타고 나서 식욕, 색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헛소리일 뿐이요 아첨하는 말일 따름이니 어찌 실천할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 실로 불교의 근본을 뒤엎는 말이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꾸로 쏟아지는 물은 막을수록 쏟아지고, 도망쳐 달리는 말은 조종하려 할수록 더욱 횡포하게 마련이다. 식욕, 색욕도 억제할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이니, 이는 보통 사람의 상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의 욕망이란 결코 소멸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억제되어서도 안 된다는 논리이다. 한용운은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에 일임할” 문제일 따름이라고 본다. 

불교 전통에서 보면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만해의 이러한 논리는 과히 혁명적이다.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혁명적인 발상이 아니라, 그 배후에 깔려 있는 인간 욕망의 긍정이 과히 혁명적인 발상인 것이다. 기존의 불교 전통에도 결혼 경험이 있는 무수한 승려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만해가 주장하는 것처럼 석가도 결혼을 하여 아들을 두었으며, 석가의 삶을 기본 모델로 하고 있는 경전 속의 다른 많은 부처들도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불교가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불교 계율들에서 성적 욕구를 부정하는 불사음계不邪淫戒가 가장 중시되고 있다. 

한용운은 완전한 근대인이다. 그는 근대문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근대시대의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근대 문명의 한 구성요소로서의 불교를 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여전히 전통적 종교인에 머물러 있는 다른 사람들의 불교개혁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불교개혁론을 전개한 것이다.                                                            

김종인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International Lay Buddhist Forum 창설, 조계종 국제교류위원 역임, 저서로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은 왜 몰락하는가 』,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 평설』, 『Philosophical Contexts for Wonhyo's Interpretation of Buddhism』등이 있다.

김종인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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