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파괴’와 ‘유신’의 “개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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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파괴’와 ‘유신’의 “개혁론”
  • 김종인
  • 승인 2019.02.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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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불교개혁론

한용운은 20세기 초에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당시에 한용운 외에도 불교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의 불교개혁론은 차원을 달리한다. 

한용운은 근대 최초로 불교개혁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1910년에 『조선불교유신론』을 썼는데 이는 근대 최초의 불교개혁론이다. 이후 1912년에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이 나오고, 1922년에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이 나온다. 

한용운의 불교개혁론이 주목받는 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불교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승려의 대처를 주장하는 매우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개혁론을 내세웠는데, 이것 때문에 그의 개혁론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또 절친한 백용성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의 반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파격적 개혁론은 승려의 대처만이 아니다. 그는 염불당을 없애고, 불상을 제외한 나한독성, 칠성, 시왕十王, 신중神衆 등의 소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불교의 각종 재 공양 의식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되었다면 한국의 사찰은 마치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기에 파괴된 중국 사찰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사찰은 사찰이 침탈한 외부세력에 의해 파괴된 반면에, 한국의 사찰을 지키는 승려들 자신들에 의해 파괴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불교개혁론의 이러한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더욱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근본적 동기다. 20세기 초는 한국사회에 근대 문명이 쇄도하던 시대였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1905년에 이미 경부선이 완성되어 기차가 서울과 부산을 왕래하던 시대로서 이제 서울을 가려면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기차라는 신문명의 이기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시대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차를 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기차를 만들고 철로를 건설하게 된 배후의 근대 문명의 근본적 구조에 대해서는 모른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피적 변화에 만족한다. 그러나 한용운의 개혁론은 표피적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 한용운 불교개혁론의 파격성과 급진성은 바로 이러한 근대 문명의 근본 구조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한용운의 불교개혁론에는 시대와 문명에 대한 철학적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용운 불교개혁론의 급진성은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식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라는 말로 표방되는데, 여기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표피적 개혁론과는 다른 철학적 통찰력이 내포되어 있다. 한용운 이전의 2,500년 불교 역사상 “파괴”와 “유신”이란 말을 쓴 불교인은 없다. “파괴”와 “유신”이란 용어 자체뿐 아니라 그러한 의미 자체가 불교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파괴와 유신이란 말은 서구에서 유입되어 한용운 당시의 동아시아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회진화론에 대한 한용운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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