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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현대시인 만해 다시보기극락을 가랴거든 지옥을 피치마랴
  • 이경철
  • 승인 2019.02.26 17:26
  • 호수 533
  • 댓글 0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만해 한용운의 유일한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나룻배와 행인行人」 전문이다. 사랑할 임이 떠난 침묵의 궁핍한 시대지만 침묵하지 않고 시로서 사랑을 일깨우고 우리네 본래 마음자리를 잃게 하지 않은 사람. 독립투사로, 사회혁명가로, 승려와 시인으로 일본 식민지 아래 우리민족을 해방된 나라로 건네주고 깨끗이 산화散華한 그런 전인적인 ‘임’이 만해다.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만해는 향리에서 전통적인 서당교육을 받으며 18세에 이미 학생들을 가르치는 훈장 노릇을 한 신동이다. 동학혁명에 가담했다 설악산으로 몸을 숨긴 만해는 백담사 등에 머물다 좀 더 넓은 세계를 알고자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 떠나기도 했다. 

“남아는 가는 곳이 곧 고향인 것을 / 객수客愁 속에 오래 빠진 사람들 그 몇일 것인가 / 한 소리 크게 질러 삼천세계 깨뜨리니 / 눈 속에 복사꽃 조각조각 붉구나”. 1905년 백담사로 출가한 만해가 1917년 12월 3일 밤 백담사 오세암에서 참선 끝에 크게 깨닫고 지은 오도송悟道頌이다. 

넘치는 남아의 기개와 함께 깨달음이 빛나는 이 시를 보고 만화萬化스님은 “한 입으로 온 바닷물을 다 길어 마셔버렸구나(一口汲盡萬海水)”라며 그 깨달음을 증명하고 가사와 발우를 전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민족사를 빛낸 ‘만해萬海’라는 호가 내려진 것이다. 만해는 이 오도송을 쓰고 난 후 세상으로 나와 1918년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했다. 

“심心은 심心이니라. / 심만 심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심이니 심외心外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 생生도 심이오 사死도 심이니라. / 무궁화도 심이오 장미화도 심이니라. / (중략) / 심은 하시라도 하사하물何事何物에라도 심 자체自體뿐이니라. / 심은 절대며 자유며 만능이니라.”

창간호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따온 잡지 제호 ‘유심’의 뜻을 알기 쉽게 전하기 위해 직접 써서 실은 시 「심心」 부분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낳고 거두니 삶과 죽음도 하나고 유와 무도 하나다.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고 마음 본디 자리로 돌아가 절대자유를 얻으라는 시다.

“부텨님이 되랴거든 / 중생을 여의지 마라 / 극락을 가랴거든 / 지옥을 피치마라/성불과 왕생의 길은 / 중생과 지옥”. 

동국대 전신인 불교전수학교 교우회지 『일광一光』 창간호에 권두시로 실린 만해의 시 「성불成佛과 왕생往生」 전문이다. 대승적, 실천적 불교정신에 입각해 일제하 절대자유를 위한 독립과 민족운동을 일깨우고 있는 시다. 

만해는 독립선언서 공약삼장을 기초했으며 33인의 대표로 만세삼창을 선창하는 등 3.1독립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다. “이제 내 나라에서 죽으니 여한이 없다”며 감옥에 당당히 잡혀 들어갔다. 일제의 석방 회유에도 불구하고 감옥 안에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 독립의 지당함을 더욱 선명히 알리고 마지막으로 철창을 나선 꼿꼿한 투사가 만해다. 

3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백담사로 다시 들어가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며 1926년 펴낸 시집이 『님의 침묵』이다. 이 시집 한 권으로 만해는 우리 시의 주체와 자존을 지키며 현대시사에 우뚝 섰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 (중략)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고 있는 시 「님의 침묵」 부분이다. 시집표제작이며 시집 맨 앞에 실린 권두시이기도 하다. 이별로 시작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듯 시 88편이 기승전결起承轉結 구성의 순서로 이루어진 연작 연애시집으로 읽힐 수 있는 게 『님의 침묵』이다. 도심 안국동에 선학원을 지어 불교와 선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만해가 선적 깨달음을 연애시 형식으로 쉽고도 절절하게 전하고 있어 오늘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가 조선어의 운율과 구사를 성공적으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시로서 충분한 공감과 호소력을 우리에게 발휘하고 있다.” 『님의 침묵』이 출간된 직후에 주요한 시인이 1926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쓴 「애愛의 기도, 기도의 애-한용운 근작 ‘님의 침묵’ 독후감」 한 대목이다. 자유시의 효시로 평가받는 「불노리」를 발표한 ‘전문 시인’ 주요한이 자유시에는 문외한에 다름없는 만해의 『님의 침묵』을 읽고 그 현대시성을 높이 산 것이다. 

주요한은 자신의 시 창작동기를 서양의 현대시가 마음에 들어 한글로 그런 시를 써보고 싶어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 솔직한 고백처럼 우리 현대시는 서양시의 모방과 추종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문학연구가 김용직은 “한용운의 출현은 이런 유의 터무니없는 해외지향열에 부정의 쐐기를 박은 가장 최초의 그리고 매우 힘 있는 사례”라고 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도 “한용운은 한국 최초의 근대시인이요 3.1운동이 낳은 최대의 시민시인”이라고 추앙했다. 그렇다. 만해의 시에는 누가 뭐래도 우리민족 전통의 혼과 운율과 가락이 배있어 이념이나 경향을 뛰어넘어 우리 현대시사 전반에서 이렇듯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혁명가와 선승禪僧과 시인의 일체화-이것이 한용운 선생의 진면목이요, 선생이 지닌바 이 세 가지 성격은 마치 정삼각형과 같아서 어느 것이나 다 다른 양자兩者를 저변으로 한 정점을 이루었으니, 그것들은 각기 독립한 면에서도 후세의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 

일제 말 지인들의 십시일반으로 지은 성북동 집 심우장으로 만해를 자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던 조지훈 시인의 만해에 대한 평가다. 이후 만해는 그렇게 세 측면서 각기 일가를 이룬 인물로 평가돼오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과 우리 민족의 주체와 존엄을 위해 극락이 아니라 지옥을 택한 만인의 임이자 애인이 만해다.                            

 

이경철
문학평론가.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 『미당 서정주 평전』 등과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 등이 있다. 현대불교문학상, 질마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경철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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