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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용성 스님과 친일 승려 이회광
  • 김택근
  • 승인 2019.02.26 16:48
  • 호수 533
  • 댓글 1

3·1독립선언 민족대표 백용성 스님이 환갑을 맞았다. 1924년 6월 9일(음력 5월 8일)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수연壽宴이 열렸다. 스님과 신도는 물론 각계 명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이종일, 나용환, 나인협 등 함께 수감됐던 동지들도 찾아와 축시를 짓고 용성의 손을 잡았다. 

이날 아주 뜻밖의 인물이 대각사 문턱을 넘어왔다. 바로 친일승 이회광이었다. 대각사의 초대를 받았는지, 아니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용성대종사 수연첩’에 적힌 이름을 보고 필자도 깜짝 놀랐다.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에서 매종역조賣宗易祖의 친일승으로 변한 회광이 절세의 선승이며 항일승인 용성을 찾아온 것은 아마도 사건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장안에 회자됐을 것이다.  

이회광이 누구인가. 그는 회광晦光이란 법호처럼 불교계의 어둠을 물리칠 ‘그믐의 빛’으로 각광을 받았다. 범해각안 스님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서 법랍이 한참 아래임에도 회광에게 합장하고 있다. 회광이 설법하면 전국의 학인들이 불조의 가풍을 우러러보며 무명의 숲을 헤치고 몰려들었다. 명성이 높을 대로 높아서 어찌 가릴 수가 없었다. 

‘스님이 하룻밤 자고 지나가면 마치 봄 동산에 사향노루가 지나가 풀이 절로 향기로운 것처럼 되었으며, 어떤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주면 흡사 밝은 달빛이 선정에 든 스님을 오래도록 비추는 것과 같았다.’ 『동사열전』 

성안에 왜인이 넘치고 마을마다 오랑캐들이 넘실거릴 때에도 회광은 게송을 지어 시류에 휩쓸리는 스님들을 깨웠다. 

“어느 곳엔들 무릎 하나 들어갈 토굴이 없을 것이며, 어느 산인들 하루 한 끼니 먹을 솔잎이 없겠는가.”

그러던 회광은 자신의 명성을 권세로 바꾸고 싶어졌다. 그 길은 바로 친일이었다. 원종을 설립하여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 합병하려 했다. 하지만 선승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19년 3·1독립선언이 있은 직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조일불교 연합을 획책했다. 다시 승려들과 신도들이 들고 일어나 수포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친일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비리에도 숱하게 연루되었다. 효용가치가 떨어지자 총독부도 그를 내쳤다.  

일본 승복을 입자고 날뛰던 회광이 청정비구 용성의 수연에 참석하여 말석에 자리했다. 그때는 세속의 모든 영화가 떠난 후였다. 회광은 진정 용성에게 꽃을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고난을 받아도 용성은 높임을 받았고, 한때 종권을 잡아 뒤흔들었지만 자신의 처지는 비루했다. 문자승 회광은 선승 용성에게 시를 지어 올렸다. 문장이 유려하기에 새삼 불가에서 문자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인간 세상에서 육십 세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생신을 경축하는 연회자리에서 
즐거움이 깊습니다
거리에서 보배구슬을 파는 오래된 
초라한 점포에는 
귀하게 거둔 향기 나는 과일과 쓸모없는 
가죽나무가 숲을 이루었구나. 
뒤섞어서 범벅이 되었으니 어찌 위신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오 
진실로 깨침의 법으로 합하였는데 하물며 
창생을 제도할 마음이야 
삼신산의 늙지 않는 주 다라니를 수연으로 
드리오니 
나반존자의 관문을 초월하여 다시 
나반의 수연시를 읊습니다.

‘불교계 이완용’ 회광의 축시는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용성은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그 길에는 사향노루가 지난 것처럼 향기가 났다. 회광은 비단 옷을 걸치고 근엄하게 육환장을 들었지만 그가 머문 곳마다 악취가 진동했다. 그날도 용성의 풍모는 회광이 묘사한대로 나반존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회광의 말년은 더없이 초라했다. 홀연 사라졌다가 한강변 작은 절에서 생을 마감했다.    

회광 이후에도 친일승들은 계속 솟아났다. ‘조선불교의 악마’라 불렸던 강대련, ‘전승戰勝이 성불이다’며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떠밀었던 권상노, 중일전쟁 이후 ‘친일의 총지휘자’ 이종욱 등이 우선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앉을 자리는 없다. 3·1독립선언 100년이다. 100년 동안의 기도에서 우러난 빛이 이들의 행적을 거세게, 또 섬세하게 비출 것이다. 그들은 숨을 곳이 없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김택근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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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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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희 2019-03-28 20:46:57

    문득 여우가 죽을 때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고사가 생각났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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