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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과 동물이야기] 새 부처, 나무 부처, 풀 부처 …자연에서 가르침을 듣다
  • 양민호
  • 승인 2019.02.26 15:34
  • 호수 533
  • 댓글 0

도연암(度淵庵)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안내석을 따라 길을 꺾어 들어 암자로 오르기까지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간중간 서 있는 작은 표지판만이 지금 가는 길이 목적지로 제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가 닿은 도연암. 그곳엔 절이라기엔 다소 초라해 보이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 세 동이 나지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 : 봉현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멀리 오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마중 나온 도연 스님 인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서로 합장을 하고 악수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친근함이 물씬 느껴졌다. 산중에 홀로 사는 스님이 이렇게 따뜻하고 사교성 좋다니 조금 의외였지만, 그런들 어떠랴. 의외의 상황이 기분 좋은 쪽이라면 그저 기분 좋게 어울리면 될 일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스님 안내에 따라 도연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쪽이 법당, 저쪽이 생태학교, 그 아래가 숙소…. 특별할 것 없다며 간단히 소개를 마친 스님. 하지만 낯선 이가 보기에 스님 말씀은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았다. 이곳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건물 외벽과 나무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새집과 모이통. 한눈에 봐도 ‘이 스님은 새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알 수 있을 만큼 수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환경이 익숙한 듯 다양한 종류의 산새들이 분주히 오가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떤 새들이 오느냐 묻는 말에 박새, 곤줄박이, 직박구리, 동고비 등 자연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들어볼 법한 이름들이 스님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 나왔다.

“일 년에 약 120종의 새가 이곳을 찾는답니다. 놀랍죠? 그런데 사실 어디나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뿐입니다. ”

도연 스님의 새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스스로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오랫동안 새를 연구해 왔고, 그런 활동이 여러 번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자연주의자, 생태활동가, 황새지킴이, 철새 사진가 등 스님에게 붙은 다양한 수식어의 첫 출발점이 된 것도 새와의 만남이었다. 말하자면 도연 스님에게 새는 새로운 수행의 길을 함께한 도반이자 스승이다. 이날 도연암을 찾은 것도 그런 이야기가 궁금해서였다. 도연 스님과 산새의 네츄럴 러브스토리. 그런데 웬걸, 소박한 기대와 달리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저 알콩달콩한 새 사랑 로맨스가 아니었다. 어떻게 부처님 가르침을 오롯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를 쉼 없이 고뇌해온 수행자의 웅숭깊은 말들이었다.

공유과 공존의 이치를 설하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짧은 암자 탐방을 마치고 ‘곤줄박이 산새학교’, ‘자연의벗연구소자연학교’, ‘한탄강 생태연구소’라는 푯말이 붙은 ‘저쪽’ 생태학교에 마주 앉아 도연 스님과 이야기 나누었다. 도연 스님이 이곳에 정착한 지 20여 년. 처음에는 컨테이너 하나 덜렁 놓고 생활하셨다고 한다. 점차 스님의 생태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포천시에서 암자로 오르는 도로도 포장해주고 전기와 수도도 들여 주었지만, 당시만 해도 자연인 생활에 가까웠다고. 그 삶이 얼마나 궁핍하고 고단했을지 묻지 않아도 짐작할 만했다. 안온한 대중생활을 마다하고 구태여 척박한 이곳에 홀로 터를 잡은 사연이 궁금했다.

“큰 절에서 부전(사찰에서 예불 등 의식을 집전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생활도 해보고, 여러 선방을 돌아다니면서 수행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갈수록 세상은 살기 힘들어지고 사람들 형편은 각박해지는데 종교인으로서 더 적극적으로 회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을 하다가 여기에 이르게 됐습니다. 처음 출가할 때 큰 뜻을 품고 공부해 보겠다는 것이 화두였다면, 출가한 뒤로는 어떻게 회향할 것인가가 두 번째 화두가 된 것이죠.”

그렇게 시작한 산중 생활에서 자연스레 마주하게 된 것이 자연이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나무며 새며 곤충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발견했다. 한데 그 많은 것들 가운데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라곤 달랑 몇 개뿐. 해서 그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책을 사보고 사진을 찍고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생태 전문가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는 게 스님 말씀이다. 더불어 스님은 그들 삶을 따라가는 동안 그 안에 부처님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 관계없는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조화롭게 한데 얽혀 공존할 때 그곳이 바로 부처의 세계요, 극락이라는 가르침을 말이다.

“나무를 심어 열매가 열리면 거기에 기대어 곤충이 살아가고, 곤충이 생겨남으로 인해 새들이 날아들고… 그렇게 공유하고 공존하면서 자연이 이뤄지는 겁니다. 여기에 부처님 가르침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이죠. 그걸 깨닫고 난 후 지금까지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살아 숨 쉬는 자연을 통해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얘기를 계속 반복하기보다 자연의 이치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더 생생하게 와 닿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살아있는 배움이야말로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매년 많은 생태활동가들과 자연에 관심 많은 이들이 이곳 도연암을 찾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스님은 굳이 불교가 어떻고 부처님이 어떻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게 곧 부처님 가르침이고, 세상의 이치가 담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니까.

좋아하기(Like)보다 사랑(Love)하라

어릴 적 방송에서 봤던 내용 중에 이런 게 있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땅속에 열심히 묻어두는데, 나중에 자기가 어디다 묻어두었는지 몰라서 찾아 먹지 못한다는 얘기. 그 얘길 듣고 자란 아이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심어졌을까. 고백하면 이렇다. ‘다람쥐라는 동물은 참 멍청하네. 자기가 묻어둔 위치도 모르고 말이야.’ 비단 이렇게 생각하며 자란 이가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렇게 평가절하한 동물이 다람쥐만도 아니었을 테고. 도연 스님은 이런 관점이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비록 자연의 동식물이 인간보다 지능지수가 낮을지 몰라도, 인간보다 훨씬 더 원대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는 게 스님 말씀이다.

“꽃이든 나무든 새든, 모든 생명에게는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심히 들여다보고 관찰하면 알 수 있어요. 미물이라고 여기는 건 인간의 기준이죠. 예를 들어 여기 오는 새들이 모이를 물고 가서 저장을 해두면 그것이 때와 조건이 맞아 나무가 되어 자랍니다. 그렇게 새 한 마리가 일 년에 심는 씨앗이 1200개 정도 된다고 해요. 그중 몇 퍼센트가 나무가 되고요. 멍청한 새들이 모이 묻어둔 곳을 까먹고 찾아 먹지 못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시나요?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쟤들도 알고 있어요. 자기들이 숨겨놓은 씨가 나무가 된다는 걸. 그게 훗날 자신들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는 것을요.”

도연 스님은 자신이 전국을 다니며 생태 관련 강의를 하고 책을 펴내고 하는 모든 활동이 사람들에게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알려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생명의 이치를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자연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일이 작은 행동 하나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일종의 나비효과라는 것. 어쩌면 스님이 하는 일 또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작지만 의미 있는 날갯짓. 한때 스님이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두루미를 쫓아 철원 비무장지대(DMZ)를 누비고, 일본에서 날아온 황새를 따라 제주도로 날아간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두루미 몇 마리, 황새 몇 마리가 날아온 게 뭐 큰 대수라고 그랬을까. 거기에는 새와 자연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무언가를 되살리려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공존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 스님만의 만행萬行이랄까.

“사는 게 재밌고 행복하려면 혼자서는 안 돼요.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세상을 이루고 사는 것이 그런 까닭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와 상대방이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Love)은 좋아하는(Like) 것과는 달라요. 희생과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이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제대로 살아가는 방식이죠. 어릴 때 시소를 타고 널뛰기를 하던 걸 떠올려 보세요. 서로 박자를 맞추고 함께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고 더 높이 뛸 수 있잖아요. 유치해 보이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림 : 봉현

도연 스님이 말하는 행복으로 가는 길

분주하게 오가던 새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짧은 겨울 해가 서쪽 산등성이를 기웃댔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속도를 따라 도연 스님의 이야기도 조금씩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새, 자연, 인간, 공존으로 이어지던 스님 이야기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잘 보살피지 못하는 종교(인)에 대한 경책으로 갈무리되었다.

“‘자연으로의 회귀.’ 제가 생각하는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연으로 회귀하는 게 어렵냐고요? 아니에요. 꼭 필요한 것만 하고 나머지는 안 하면 됩니다. 흔한 예로, 건강하게 먹고 살려면 고기도 먹어야겠죠. 드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생명을 잡아먹고 노는 축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얘기하면 싫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저는 욕도 많이 먹어요. 하지만 종교인이, 특히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른다는 스님이라면 당연히 이를 문제시 여기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도연 스님은 우리나라 사찰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과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럴 때 비로소, 지금처럼 세상이 절과 스님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스님들이 세상을 걱정하고 그들을 보살피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3년 뒤면 제 나이가 일흔입니다. 더 늙기 전에, 더 많은 젊은 스님들이 자연생태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가는 데 힘써주셨으면 합니다. 사찰에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요.” 

나무, 새, 풀, 곤충…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는 도연 스님.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모두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에 그렇단다. 또한 사람도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다는 게 스님 지론이다. 그러니 서로를 다르게 볼 일이 전혀 없다고. 사람도 부처님, 저들도 부처님이니까.
 

좋은 만남 뒤에 오는 헤어짐은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도연 스님과 함께한 시간도 그랬다.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워 차 한 잔 더 얻어 마시기로 했다. 그럴 목적으로 들어선 법당 안에서 예상치 못한 분을 만났다. 우리시대 불교를 대표하는 큰 스승이셨고, 종교를 넘어 많은 이들 가슴에 감동과 가르침을 전해주었던 법정 스님. 법정 스님의 사진이 불단 오른쪽에 모셔져 있었다.

“생전에 법정 스님과 좀 인연이 있었어요. 법정 스님께서 평생 살아가신 모습도 그렇고, 그 말씀도 그렇고, 제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얘길 듣고 보니 도연 스님 사는 모습이 퍽 법정 스님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민호  21c-grhapa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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