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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불교] 출발Departure, 2017“출발합니다. 이것은 죽음입니다”

종교와 철학의 이유는 인간 앞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은 결코 이해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과정이다. 죽음의 경로를 관통한 후 되돌아 와 그 내막을 낱낱이 경험하고 납득하여 다시 살아갈 수 없기에,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문이거나 망각의 강으로 묘사된다. 부처님은 죽음을 인간이 겪는 근본 고통이라 가르쳤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어간다. 

산 자에게나 죽어가는 이에게 죽음은 모두 두렵고 알 수 없는 사건이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라나 윌슨이 제작 연출한 ‘출발(Departure, 2017)’은 죽음과 삶에 관한 불교적인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44세의 일본 임제종 승려 이테츠 네모토. 그는 도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의 환락과 열정을 경험한 후 승려가 됐다. 일본 불교의 풍속대로 아내가 있고 2살 난 아들이 있다. 시골인 기후현岐阜県의 절에서 처자식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나이트클럽에서 춤과 파티를 즐긴다. 그는 10여 년 간 이루어낸 일로 유명해졌다. 자살방지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을 죽음에서 삶의 길로 되돌렸기 때문이다. 

라나 윌슨은 잡지에서 그의 기사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감독은 “일본말을 하나도 모르는데 일본어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달려들었으니 엄청난 도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2년 동안 일본어를 하나하나 배워가며 네모토를 이해하고 영화를 완성했다. 라나 윌슨이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네모토의 업적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한 가르침을 네모토를 통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즈음 네모토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한 개인으로써, 승려로써 위기를 느꼈다. 건강은 악화되고, 가족의 부양은 더 큰 압박으로 닥쳐왔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죽음 앞으로 내몰렸고, 그의 친척조차 자살을 택했다. 자신 또한 갑작스레 죽을지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는 타인에 대한 네모토의 조언이 위선이라고 이야기한다. 삶은 내면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화는 이런 복잡한 사정과 갈등, 네모토의 내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늘 벚꽃이 만발한 봄날의 정원이 아니며, 때로는 비온 뒤 떨어진 꽃잎으로 심란하게 어질러진 험한 길과 같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야하고 네모토는 갈림길에서 고심한다. 이 위태로운 삶 속에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는 극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정해서 만들 수 있는 결말도 없고, 훈계는 고답하며, 사실을 직시하는 고통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이 영화 또한 더러는 답답하고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이야기 내내 “죽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야하는 것인지” 묻는다. 어렵고 불편한 질문이지만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라나 윌슨의 전작은 ‘애프터 틸러(After Tiller, 2013)’이다. 미국에서 낙태시술을 공식적으로 밝힌 4명의 의사 앞에 쏟아지는 반대와 동조, 문제의 쓰라린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5년 에미상을 받았다. 삶과 죽음, 생의 윤리, 생명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그가 하는 작업의 바탕인 셈이다. 라나 윌슨은 가치가 충돌하는 예민한 문제를 끄집어  내지만 어느 한 편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 관객에게 현실을 보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고민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출발’인 것은 일본의 장례 풍습과도 관련이 있다. 장의사는 관 뚜껑을 닫기 전 망자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이것은 죽음입니다.” 지금 즉시 죽음을 향해 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매 순간 출발을 앞두고 있다. 다음 순간을 향해, 내일을 향해, 새로운 직업을 향해 생애의 한 페이지를 덮고 다음 장을 연다. 죽음 또한 금생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새로운 책의 첫 장을 열어 출발하는 것과 같다는 깨우침이 있다. 

‘출발’에서 다루는 죽음은 부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자살, 이미 우리에게도 흔하고 심각한 문제로 닥친 현실이다. 네모토는 묻는다. “사람들은 왜 죽음을 택하는 것일까?”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누군가 밥을 먹으며 대꾸한다. “기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타인의 죽음 앞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무엇 때문에 왜 죽음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떠난 자가 긴 유서를 남겼다 해도 그의 내면과 죽음의 실상을 추측할 수는 있을지언정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스스로 소통의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종교는 죽음에 대해 무수한 이야기를 하고 의식을 치루지만, 그 모두가 죽은 이 보다는 오히려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일 수 있다. 

영화 속의 네모토는 자살한 이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종교적 수행이나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자신 속에 감춰진 자기 파괴적이며 극단적인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죽은 이, 또는 죽음 앞에 선 이들에 대한 이해는 평가나 판단이 아니라 공감으로 가능한 일임을 네모토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슬픔, 절망과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네모토는 자신도 힘든 짐을 지고 있고, 위선이라 비난받지만 타인의 좌절에 귀 기울인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한다. 그의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위기의 동료들과 명상하고 몸을 움직이며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공동의 작업이다. 자신의 손을 잡아줄 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은 함께 소리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시 돌아와 세상과 융합이 가능한 새 출발의 순간이 온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는 관객을 위한 초대장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앞에 놓인 새롭고 경이로운 미래를 향해 ‘출발’하자고 초대했다는 것이다. ‘출발’은 죽음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세상은 연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지혜와, 타인의 슬픔을 깊이 이해하는 자비심을 갖도록 권한다. 내가 홀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고통의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네모토와 라나 윌슨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 
 

김천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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