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501번째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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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501번째 나한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9.01.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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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 리뷰

춘천국립박물관이 창령사지에서 발굴한 오백나한 특별 전시로 이목을 모으고 있다. 전시된 나한상들은 오래전 폐사된 절터에서 발굴된 까닭에 역사적, 종교적 배경도 흐릿하지만, 꼭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그 순수하고 격의 없는 모습에 단번에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국적인 인기에 힘입어 박물관은 작년 11월까지로 예정되어 있던 전시 기간을 올해 3월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문화재 전시가 이렇게 인기 있었던 적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며, 그 뜨거운 현장에 다녀왔다.

|    땅에서 나투신 나한존자

2001년 강원도 영월 남면 창월리의 한 야산에서 토지 경지작업을 하던 주민 김병호 씨는 땅속에서 50cm 남짓한 크기의 큼지막한 돌을 발견했다. 그냥 돌이 아니었다. 어렴풋하지만 돌에 ‘표정’이 비쳤다. 토지 소유자의 신고로 발견문화재 긴급 수습 발굴이 시작되었다. 그 표정 있는 돌들의 정체는 나한상. 지금까지 총 317점의 나한상이 출토되었고, 숭령중보(1102~1106년에 주조된 송나라 화폐)와 고려청자, 배수로, 석축, 기우제 터와 함께 ‘창령蒼嶺’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나옴으로써 농사를 지으려던 이 야산이 고려 12세기 무렵 세워졌던 사찰 ‘창령사’의 터였음이 밝혀졌다. 막연히 절터였다고 전해오던 옛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발굴 당시 나한상들은 64점을 제외하고 모두 파손된 상태였다. 수년에 걸친 복원 끝에 13점이 추가로 본 모습을 찾아,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 됐다.

|    마음 속 정원에서 만나는 나한

나한전이 열리는 박물관 2층 특별전시관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 너머로 일제히 나를 향해 있는 수많은 나한상의 시선을 느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주로 정보를 나열하는 형식의 여느 박물관 전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다. 외부 공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어둑어둑한 전시실. 바닥에는 수천 장의 벽돌이 깔려 있고, 무어라 정의내릴 수 없는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전시실에 입장하자, 산란했던 마음이 ‘탁’ 하고 고요함으로 전환되는 듯했다. ‘관람’하기보다는 ‘산책’하듯 전시실을 거닐며 듬성듬성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한들과 인사를 나눠본다. 한 분씩 ‘안녕하세요’ 하며 눈을 맞추고, 다시 걸음을 옮겨 ‘안녕하세요’ 하고 잠시 바라본다. 이 초현실적 공간에서 관람자는 나한상을 보지 않고 ‘만난다’.

공간 설계는 설치미술가 김승영의 작품 ‘Are you free from yourself?’과 오윤석 작가의 사운드 작품을 더해 완성되었다. 바닥의 벽돌에는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등 사유를 촉발시키는 글귀가 이따금씩 새겨져 있다. 때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기도 하고, 깊은 사색을 끌어내기도 하는 나한상의 힘이 순간의 몰입을 극대화시키는 공간과 어우러져 드라마틱한 시간을 선사한다.

어느 것 하나, 같은 얼굴이 없는 수많은 나한상들. 그 표정 하나하나를 새기며 품었던 조각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한羅漢은 ‘arhan’이라는 범어를 음역한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서 모든 번뇌를 벗어나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가리킨다. 중생을 구제하고 불법을 수호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실천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변신술을 부리거나 수명을 연장시키는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전해지면서 나한을 숭배하는 ‘나한신앙’이 발전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특히 성행했다고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나한재를 지냈고, 나한을 봉안하는 영산전, 나한전 등이 건립되었던 것도 이때이다.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던 혼란스러운 시기. 아마 조각가는 고달픈 시기에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내 이웃, 내 가족의 얼굴을 새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501번째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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