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강의실 357호] 연기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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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강의실 357호] 연기의 패러독스
  • 홍창성
  • 승인 2018.12.24 18: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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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는 실체(實體 substance)가 독립적 존재를 말하는데, 연기를 받아들이 는 불교에서는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사물事物이 조 건에 의해서만 생성 지속 소멸하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연기의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만물이 자성自性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空의 통찰로 이끈다. 어떤 사물이 스스로 존재하지도 못한다면 그 스스로를 스스 로 이게끔 해 주는 본질적 속성 즉 자성自性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 서 사물이 조건에 의해서만 생멸한다는 연기가 만물에 자성이 없다는 공空 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그래서 연기는 공이다.

그런데 철학전공 학생도 여럿 내 불교철학강의를 수강하는데, 이 가운 데 몇이 꼭 연기나 무상無常의 가르침이 가지는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질문하곤 한다.

고대 희랍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주장했습니 다. 그렇다면 만물이 변한다는 주장 또한 변하므로 결국 그것이 영구불 변한 진리가 아니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붓다의 무상無常의 가르침도 마 찬가지입니다. 무상 또한 무상하니까 결국 무상하지 않게 되어 만물이 무상하다는 가르침이 틀리게 되지 않습니까? 연기도 사물이 스스로 생 성 지속 소멸하지 못한다는 주장인데, 연기가 스스로 존재하지도 못한 다면 우리가 그 주장을 믿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 아닐까요?

논리적으로 철저히 비판해 이치에 맞는 주장만을 받아들이겠다는 미국대학 철학전공 학생들다운 질문이다. 철학자들은 ‘둥근 사각형’이나 ‘결혼한 총각’ 처럼 그 자체가 모순을 포함하는 개념에 해당하는 사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 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가 논리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논리 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연기나 공空의 개 념이 만약 패러독스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 개념 자체가 모순이라고 증명된 다면 부처의 연기법을 진리의 가르침이라고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연기법 자체도 연기하니까 그것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닐 것이라는 문제 에 대해 여러 각도의 논의가 가능하다. 먼저 연기가 공空이라는 통찰로부터 시작해 수행론과 관련지어 논의해 보자면,

(1) 연기는 공이다.

(2) 공에도 집착 말라. 공도 공이다. (공공) (3) 공이 공인 것도 공이다. (공공공)

(4) 공공공공, 공공공공공, .....

이와 같이 다른 사물뿐만 아니라 공空에조차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끊 임없는 부정(否定 negation)의 과정이 깨달음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사람 도 있다. 이것은 연기의 법칙 자체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으로서 수행과 관 련된 가르침이다.

그런데 논리적 관점에서 제기된 질문을 수행의 관점에서 답변하는 것 은, 불자들의 수행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론을 다 루는 철학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내 미국학생들도 의심의 눈초리 를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서서 연기론 자체를 논리적으로 공격 해 보며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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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성 2019-03-06 00:42:10
감사합니다. 2월말에 불광출판사에 단행본 최종 원고를 보냈습니다. 5월말까지는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격려 말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갑사합니다 2019-01-19 06:43:08
칼럼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단향본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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