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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명장면] 복종하지 않는 사람, 붓다비굴하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 붓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오대산의 문수보살께서 무착 선사에게 하신 말씀이다. 열이면 열 모두 지당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지당함에도 예외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 목적이 삿되면 아무리 온화한 표정을 짓고 고운 말씨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해도 끝내 부처님께 올리는 참된 공양이 될 수 없고,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의 향기를 풍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겉만 화려하고 속 내가 시커멓다면 똥오줌을 가득 담은 화병이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온화한 표정이 증명사진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랑살랑 늘 봄바람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타인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좋은 수단도 없으니,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이가 이런 덕성을 소유했다면 아마 발군의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수단이 좋다고 곧 훌륭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개중에 는 양의 탈을 쓴 늑대들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낯빛이 온화하다고 마냥 칭찬할 것도 아니고, 말씨가 부드럽다고 마냥 신뢰할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미소가 자신의 탐욕과 분노를 극복한 결과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개중에는 부와 명예를 향해 돌진하는 자들의 아양 떠는 시늉인 경우도 있으니, 보살의 미소와 아첨꾼의 미소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부드러운 말씨가 타인의 탐욕과 분노를 덜어주기 위한 의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개중에는 대동강 물도 프리미엄 붙여 팔아 먹을 자들의 공치사인 경우도 있으니, 보살의 변재와 사기꾼의 달변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겉모습만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힘든 아첨꾼과 사기꾼은 부처님 제자 중에도 여럿 있었다. 그대표적인 인물이 데바닷따이다. 『십송률』 제36권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데바닷따는 인물도 재력도 신체적인 능력도 출중한 자였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 속에서 출가한 그는 처음 12년 동안은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착실히 수행하였 다.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높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데바닷따는 신들의 세계를 맘대로 오가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자가 되 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래야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기 때문이었다. 데바닷따는 부처님을 찾아가 신통력을 얻는 방법을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부드러운 말씨로 데바닷따에게 권유하셨다.

“단념하라. 신통력을 얻어 무엇에 쓰겠느냐? 모든 것이 무상하고, 모든 것이 괴로움이고, 모든 것이 공하고, 모든 것이 나도 나의 것도 아님을 관찰하도록 하라.”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씨로 권유하였지만 데바닷따는 받아들이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리불을 찾아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신통력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리불 역시 부처님과 똑같이 권유하였다. 하지만 데바닷따의 가슴에서 피어오른 욕망의 불길은 꺾이지 않았다. 다시 목련존자를 비롯한 500 아라한을 차례로 찾아갔지만 그 누구도 데바닷따에게 신통력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데바닷따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동생인 아난을 찾아 갔다. 친족의 애정을 떨치지 못한 아난은 데바닷 따에게 신통력을 얻는 방법을 일러주고 말았다.

드디어 방법을 알게 된 데바닷따는 곧장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네 가지 선정을 닦았고, 이 선정으로 인해 신통력이 생겼다. 아득히 먼 곳으로 가 과일과 음식을 구해 오고, 하늘나라를 마음대로 오가면서 그곳의 음식도 맛보았다. 신비한 능력이 쌓이자 드디어 부와 명예를 향한 데바닷따의 야욕이 온전히 정체를 드러냈다.

데바닷따는 당시 부와 권력의 핵심이었던 마가다국의 왕궁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신비한 재주를 부린다 해도 부처님에게 이미 확고한 믿 음을 일으킨 빔비사라왕은 유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아사세를 목표로 삼았다. 아사세 왕자는 포악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데바닷따는 왕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짓을 마다 하지 않았다. 때로는 코끼리로, 때로는 말로, 때로는 장신구로 변신하여 왕자의 비위를 맞추었고, 왕자가 아무리짓궂게 굴어도 미소를 잃지 않고 어떤 험악한 말도 매끄럽게 받아주었다. 심지어 귀여운 어린아이로 변신해 왕자의 무릎에서 재롱을 떨기까지 하였다. 그러면 왕자가 즐거워하며 어린아이가 된 데바닷따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곤 하였다. 데바닷따의 신비한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모든 이들이 가까이 다가가기를 꺼려하고, 스스로도 사람들을 피하던 왕자가 데바닷따 만큼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스승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데바닷따가 아사세 왕자의 권세를 등에 업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익을 쫓는 수행자들이 삽시간에 그의 주위로 몰려 들었고, 그 수는 곧 500명에 다다랐다. 왕자는 옷과 의약품은 물론이고 매일 500대의 수레에 음식을 가득 싣고 데바닷따의 처소로 찾아가 그와 그의 제자들에게 손수 음식을 공양하였다.

비구들이 이 소식을 부처님께 전하자, 부처님께서 데바닷따를 부러워 말라면서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열매 맺은 파초는 시드네
대나무와 갈대도 그러하네
나귀는 새끼를 배면 죽나니
이익을 탐하는 소인배도 그러하네.

권세를 얻자, 데바닷따가 드디어 부처님을 찾아갔 다. 그는 특유의 미소를 흘리면서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세존께서는 이미 연로하십니다. 이제 승가의 일은 저에게 맡기시고 홀로 편안히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소서. 승가는 제가 잘 영도하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엄숙한 낯빛으로 단호하 게 말씀하셨다.

“사리불과 목련은 큰 지혜와 신통을 가진 이들 이다. 그런 이들에게도 나는 승가를 맡기지 않았다. 하물며 너처럼 남의 가래침이나 핥는 어리석은 자, 죽은 송장 같은 자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

자신의 야욕이 좌절되는 순간 데바닷따의 온화한 미소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앙심을 품은 데바닷따는 양미간을 찡그린 채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 데바닷따가 떠나자 부처님은 왕사성의 비구들을 모두 모이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계율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생활이 깨끗하지도 않으면서, 지견知見이 밝지도 않으면서, 단체를 법답게 운영하지도 못하면서, 청정한 가르침을 설하지도 못하면서도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있다. 또한 이 세상에는 그와 함께 지낸다는 이유로, 그 사람 덕분에 옷과 잠자리와 음식과 의약품을 얻는다는 이유로 그를 스승으로 삼아 편드는 제자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 여래 는 계율을 지키기에 ‘계율을 지킨다’고 말하고, ‘생활이 깨끗하기에 ’깨끗하게 산다‘고 말하고, 지견이 밝기에 ’지견이 밝다’고 말하고, 승가를 법답게 운영하기에 ‘승가를 법답게 운영한다’고 말하고, 청정한 가르침을 설하기에 ‘청정한 가르침을 설한다’고 말한다. 또한 나 여래는 그대들이 나의 제자 라는 이유로 나를 감싸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잠시 침묵한 부처님께서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나 여래는 오직 사실만을 말한다. 붓다는 남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고, 비굴하게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온화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고 다 부처님 제자일까? 그 속마음이 진실하지 않다면 욕망을 채울 속셈으로 비굴하게 복종하는 사람일 것이다. 마냥 나긋나긋하게 속삭인다고 다 부처님 제자일까? 그 속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면 부와 명예를 성취하기 위해 아부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

성재헌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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