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논산 쌍계사 대웅전 서왕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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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논산 쌍계사 대웅전 서왕모도
  • 강호진
  • 승인 2018.12.24 16: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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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 아는 것의 즐거움
사진=최배문

논산 쌍계사의 가을은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깊은 산 내음이 바스락거리는 낙엽에서 스며나왔다.

한 학인이 운문 선사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낙엽이 질 때는 어찌합니까?(樹凋葉落時如何)” 운문이 답했다. “가을 바람에 진면목이 드러나겠지.(體露金風)”

1738년에 지어진 쌍계사의 대웅전은 이상하리만치 기단만 남겨진 폐사지廢寺址처럼 보였다. 있으되 실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공空의 법문이 대웅전 앞 수조에 떨어지는 물소리보다 확연하게 들려왔다. 쌍계사는 황지우의 시구를 빌리자면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 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는 아름다운 폐인의 모습이었다. 쓸쓸해서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다시 쓸쓸해지는 풍광은 지난 어리석음과 앞으로 짓게 될 죄업을 양지바른 절 마당에 죄 묻어버리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단풍나무 숲으로 향해 난 작은 길로 사라지지 못하고 죄인처럼 어둑한 대웅전 안으로 몸을 숨겼다.

만약 모든 것을 떨치고 산그늘로 걸어들어갔다면 가장 상심했을 이는 한국장학재단(이라 쓰고 학자금대출재단이라 읽는다)이었을 것이다.

찾던 벽화는 대웅전 내부 오른편 구석에 있었다. 19세기 무렵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에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화면 왼편에는 오색구름을 탄채 고개를 돌린 여인과 선扇을 쥔 자그마한 시녀가 있고, 오른편에는 방금 딴 듯 잎사귀가 싱그러운 복숭아를 받쳐 든 여인이 그들을 쫓고 있다. 나부끼는 옷자락으로 보아 조금 늦게 출발해 급히 일행을 따라잡은 모양이다. 앞에 선 여인이 눈빛으로 시녀에게 묻는다. ‘복숭아는?’ ‘잘 오고 있습니다.’

이 벽화의 주인공은 왼편 가장자리 에 가장 크게 그려진 여인이다.

당신은 이 여인을 아는가? 어쩌면 이미 이 여인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고분古墳이나 옛 그림 에서 흘깃 보았거나 혹은 『서유기』나 『구운몽』에 서 그 이름을 듣기도 했을 것이다. 관심이 없어 지나쳤겠지만, 생면부지의 인물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림 속 여인은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기 너머 에서 당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미지의 목소리다. 물론 보험판매나 보이스피싱은 아니다. 당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기억의 장부를 열심히 뒤적거리겠지만 그리 간단히 떠오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을 도와줄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서왕모西王母는 중간에 앉아 그 옆에 반도蟠桃 를 쌓아두고 연회에 온 이들에게 하나씩만 나눠주었다. 옥황상제와 노자老子에게는 두 개, 오직 석가여래에게만 세 개를 주었다. 여래는 반도를 들어 게송을 읊었다.

천년 된 반도는 있어도

백년을 사는 사람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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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edward 2019-04-08 16:04:26
제 생각으로는 그림 제목이 서왕모도라기보다 마고헌수도 입니다. 반도를 들고 있는 신선이 마고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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