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부처, 마애불] 서산 마애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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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부처, 마애불] 서산 마애삼존불
  • 이성도
  • 승인 2018.12.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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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백제 미소로 각인된 그리운 서산 마애삼존불을 만나다
사진=최배문

1,600년이 넘는 한국불교의 역사 속에 만들어진 많은 불상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과 모습을 가장 잘 닮은 불상을 꼽으라면 서산마애삼존불을 들겠다. 서산마애삼존불은 그만큼 인간적이기도 하고 밝고 해맑은 모습이 우리들의 부모형제와 이웃을 닮아 있으면서 종교적 성상聖像으로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것도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 오랜 시간이 지난 때가 아닌 삼국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데 경이로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리운 이와 오랜 시간 헤어져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삶에서 그 사람을 부르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갖는 정한情恨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운 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까운 시간 안에 실현되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삶 은 고되고 어렵기도 하다.

많은 사람에겐 그리운 이와 오랜만의 해후를 꿈꾸는 것도 설레는 일이지만, 멀리서 생각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한켠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형상을 그리고 만들어 그를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산마애불을 보면 그리운 이가 산기슭 바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불상으로 형상화한 듯하다. 서산마애불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 계곡 위 한쪽 절벽에서 천 년을 넘는 시간동안 티 없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리운 가족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산중턱 절벽의 마애삼존불은 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보살상은 자세와 크기가 다르지만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가슴에 영원히 각인된 그리운 이의 사진처럼 말이다.

불상은 종교적 성상이다. 매일 예경하는 상으로 모셔진 존상이기에 여기에는 우리가 어떤 공간 을 배경으로 찍은 인물사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종교적 도상으로 일정한 규범을 가지고 있다. 자세에서 손짓 하나까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모습을 32상 80종호 로 규정하면서 이를 부처가 갖는 특상特相이라 말 한다. 이 규범에 따라 상을 만들다 보면 인간의 모 습과 다른 특별함을 강조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들은 인간다움이 없는 관념된 종교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부처는 불교에서 수행으로 도달하는 궁극적으로 완성된 모습이다. 부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선행공덕과 수행 속에 인간이 갖는 탐· 진·치의 속기를 제거하거나 넘어서 인간 본원의 청정한 모습으로 존재의 궁극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종교적 형상으로 표현된 것은 어쩐지 인간다움과 거리가 있는 존엄한 황금빛의 모습이다.

이곳 서산마애불의 주존과 양협시보살상은 지극 히 인간적인 따뜻함과 함께 종교적인 평정함과 청정함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불신 전체에서도 느껴지지만 특히 삼존의 상호에서 확연히 느껴 진다.

주존과 양 협시보살이 가지는 웃음은 차별이 있지만 그것은 인위적으로 웃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천진한 본래의 웃음으로 참으로 인간다움을 가진다. 주존의 따뜻하고 넉넉한 상호에 서 보이는 다정한 눈길과 미소는 자애로움이 가득 해 만중생의 모든 걱정과 슬픔을 다 받아주실 듯 하다. 또한 우협시 봉주보살상의 볼륨 넘치는 얼굴에 수줍은 듯한 상호, 반개한 눈과 살짝 짓는 천진스런 미소는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보주와 함께 신비롭기 그지없다. 또 다른 왼쪽 반가사유상의 얼굴은 통통한 볼에 장난기 넘치는 앳된 소년의 얼굴로 미소 또한 천진스럽다. 이러한 자연스럽고 인간미 넘치는 불상은 백제 특유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참으로 인간적이고 따뜻함을 간직한 자애로운 모습이지만 이상적인 비례나 균형을 갖 춘 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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