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향(禪香)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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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향(禪香)이 머무는 곳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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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 국토를 찾아서, 양양군

때이른 첫눈이 내렸다는 설악산 대청봉 아래 양양을 찾았다. 눈뿐만이 아니라 가을도 제일 먼저 와 강렬하고도 고운 단풍 빛이 아프게 눈을 찌른다. 백두대간의 영봉들이 즐비즐비 이어진 이곳엔 산도 그냥 산이 아니다. 조화옹의 절묘와 신기가 더한 태고 이래의 작품이다. 이래서 휴가와 관광이라는 말이 보편화된 70년대 이래로 국민이 가장 아끼고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이곳에 대한 관광은 요즘뿐만 아니다. 송강의 관동별곡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음풍농월의 풍류를 아는 선인들은 이곳을 스쳐 지나며, 제 모습을 한번 그려볼 테면 그려보라는 듯한 이 수려한 산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였으니 남아 있는 시편의 양이 적지 않고, 보고 가면서도 차마 필설로 그리지 못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누적된 겸양은 오히려 산보다 높다.

명산에는 대찰이 있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선인들이 고르고 고른 자리마다에 하나하나 인연에 따른 절이 지어졌으니 예부터 절이 없는 산은 찾아보기 힘들다. 산 자체가 이미 절이요 온 국토가 인연 있는 불국토가 된 것이다.

양양은 불국토 가운데서도 유달이 첩첩히 얽힌 불연이 깊은 곳이다. 관세음 보살이 상주하는 낙산(보타낙가산)이 동해바다를 굽어보고 있으며 그곳에 족적을 남긴 당대의 두 고승, 의상과 원효 스님의 일화가 민간에 뿌리깊게 전해져 온다. 또한 우리 선불교사의 개조로 꼽히는 도의 선사께서 은거했던 진전사지가 있고 이밖에도 신흥사, 봉정암, 선림원지 등의 유서깊은 도량이 골골마다에서 먼 과거의 신심과 정진 열기를 오늘에까지 이어오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濊) 국의 영토였던 양양은 뒤에 고구려에 합병되었다가 다시 진흥왕 때 함경도까지 영토를 넓힌 신라에 복속되었다. 기온이 연중 온화하고 풍광이 빼어나며 인심이 후박하여 예로부터 살기 좋은 영동 땅이라 했는데 그 영동 가운데서도 강릉 다음으로 큰 고장이어서 조선시대 한때는 강릉과 원주에서 첫 글자를 딴 강원도라는 지명이 원양도, 강양도로 바뀌어 불리기도 했다.

양양에 가면 으레 둘러보는 불적이 낙산사이거나 설악동의 신흥사지만 이번에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물론 가볼수록 좋은 설악동 신흥사의 풍광이요, 낙산사 원통전 담장이나 홍예문은 일부러라도 또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오락가락하는 산중의 날씨에 비라도 내리면 귀한 시간을 하루라도 까먹을까 조급해서였다. 또, 그곳들은 유명세 때문에 사람들이 한두 번쯤은 찾아가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도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진전사지(陳田寺址)다. 784년 당나라로 건너가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와 백장회해(白丈懷海) 화상에게 은밀한 심인을 얻고 돌아와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가람인 가지산문을 개창했던 도의 선사께서 은신했던 곳. 도의 선사는 처음 장흥의 보림사에서 산문을 열고 선불교의 기치를 올렸으나 당시 신라는 화엄학을 위주로 한 교종이 세를 떨치고 있었다. 하여 도의 선사의 무위법(無爲法)을 마설(魔說)이라 비방하면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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