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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제자 이야기] 부처님의 아들, 침묵의 성자 라훌라부처님이 아들이자 제자였던 라훌라에게 상속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구미 수다사 영산회상도(보물 제1638호).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깨 위로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있다.ⓒ직지사 성보박물관

“아버지! 저는 라훌라입니다. 제게 유산을 물려주세요.”

어머니 야소다라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 말을 한 라훌라 이야기를 지난 호에 들려드렸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을 찾아온 아들에게 손을 내밀어 승가로 데리고 갔고, 그 길로 사리풋타를 불러 머리를 깎게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경전에서 만날 때마다 출가를 당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출가가, 수행이, 깨달음이, 번뇌가, 탐욕이, 괴로움이, 즐거움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제 어머니와 헤어져 머리카락을 깎이게 된 것입니다.

짐작하건대, 아들이 자기 생부를 아버지라 소리 내어 부른 것이 바로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합니다. 진리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더할 수 없는 거룩한 법연法緣이겠지만, 물보다 진한 혈연의 정리情理로 보자면 참으로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 일곱 살 아들에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것은, 라훌라를 전적으로 돌봐준 사람이 사리풋타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리풋타 존자는 지혜롭기가 으뜸가는 분일뿐만 아니라 도반들을 세심하게 챙겨주며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갓 출가한 라훌라는 하루아침에 달라진 자신의 처지에 어리둥절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의 친아들이자 승가에서 가장 어린 수행자인 그를 특별대우 해주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경전을 뒤적여 봐도 부처님 스스로도 라훌라를 가리켜서 ‘내 아들’이라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부처님과 승가야 어찌됐든 라훌라에게는 왕손으로서의 그 도도하고 거침없는 태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승가에서 더 어깃장을 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리고 안하무인인 라훌라에게 부처님이 찾아와서 들려준 법문이 있습니다.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에 담긴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에게 들려준 경」에 그 내용이 있는데, 『맛지마 니까야』의 주석서에 따르면 이 법문은 라훌라가 일곱 살이었을 때 들려준 법문이라고 합니다. 어린 아들에게 들려준 아버지 붓다의 가르침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둘째는,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는,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함부로 다루어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넷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살피고 또 살펴서 잘못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아예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실수와 잘못을 통해 뭔가를 배우게 마련입니다. 경전에서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이르지만,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당부를 참으로 많이 하십니다.

승가의 입장에서 보면 부처님의 친아들인 라훌라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을 것입니다. 비록 나이가 어렸을지라도 라훌라는 그런 자신의 입장을 아마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수행자와 신자들 사이에서 함부로 행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라훌라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을 테니 그에게 어떠한 충고도, 제지도 쉽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라훌라에게 아버지 붓다가 당부한 것이 바로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여 그리했다 하더라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붓다가 어린 아들 수행자에게 들려준 법문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슴이 알싸해집니다. 비록 라훌라가 전생의 연이 있어서 출가했다고 해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아버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한 사람의 반듯한 수행자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이요, 그래서 아버지가 깨달은 이치를 아들 역시 그대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그 간절한 마음이 처음 드러난 것이 바로 암발라티까에서 당부한 법문입니다. 라훌라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경전에서는 끝맺습니다.

 

| 열여덟 살 아들에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라훌라는 수행자의 자세를 갖춰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부처님은 라훌라를 데리고 아침 탁발에 나섰습니다. 라훌라 나이가 어느 사이 열여덟 살이 됐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태가 완연합니다.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부처님만큼이나 의젓해졌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발우 하나씩 들고 탁발에 나서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한 나라의 왕위를 물려주고 왕가의 곳간에 가득 찬 재물과 보석, 그리고 넓디넓은 영토와 농지를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아버지가 발우 하나만 달랑 든 채 역시나 가진 것이라고는 발우 하나뿐인 아들과 탁발에 나섭니다. 하루의 끼니를 얻기 위해 마을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부처님은 천천히 마을로 향한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 뒤를 라훌라가 조용히 따르고 있습니다. 문득 부처님께서 고개를 돌려 라훌라에게 말씀하십니다.

“라훌라여, 그 어떤 것이라도, 물질적인 것이거나 비물질적인 것이거나 그것은 내가 아니요, 내 것이 아니라고 살펴야 한다.”

라훌라는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이제 마을로 들어선다면 온갖 것들이 그의 오감을 자극할 것입니다. 열여덟 청년 수행자에게 그 자극들은 유혹으로, 혐오로, 위험으로, 달콤한 위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바깥의 온갖 것들에 대해서 ‘나’와 ‘내 것’이라는 생각을 품은 채 다가간다면, 그 자극들은 그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것입니다. 라훌라는 왜 이른 아침,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의중을 꿰뚫었습니다.

발걸음을 멈춘 라훌라는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세존에게서 친히 이런 가르침을 받았는데, 어찌 그대로 탁발에 나설 수 있을까?’

부처님의 뒤를 따르던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나무 아래로 다가가서 두 발을 맺고 앉았습니다. 등을 곧게 펴고 몸을 바로 세우고 시선을 조금 앞에 고정시킨 채 가만히 생각을 모았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사리풋타는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라훌라여,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시오. 거듭거듭 그대의 호흡을 관찰하자면 아주 큰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오.”

라훌라는 자신의 또 한 분의 스승인 사리풋타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하루 한 끼의 식사도 거른 채 스승 두 분의 가르침을 따라 명상에 잠겼습니다. 그는 해 질 녘, 선선한 기운이 대기의 열기를 식힐 무렵 명상에서 일어나 세존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종일 생각하고 몸으로 체험한 그 명상의 경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호흡관에 관한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정(慈)과 연민(悲)과 기쁨(喜)과 평정(捨)에 대한 명상을 닦을 것을 일러주고, 탐욕을 없애기 위해 부정관을, 자만을 없애기 위해 무상관을 닦으라고 가르쳤습니다.

해 질 녘, 대지에는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고, 새들은 보금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날아들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도란도란 하루의 안부를 주고받는 그 시각, 숲속 수행처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라훌라는 기쁨으로 가득 차서 아버지 부처님 앞을 물러났습니다. 

열여덟 살 청년 수행자의 하루는 그렇게 흘렀습니다. 배움을 향한 열의로 하루를 보낸 청년은 분명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지나가며 라훌라는 완성되어 갔습니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수행을 이어간 그는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침묵의 성자, 밀행제일 라훌라는 그렇게 탄생합니다. 

붓다가 되셨더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십니다. 어린 라훌라가 아장아장 걸어와서 “제게 유산을 물려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아버지 붓다가 숲속 수행처에서 아들에게 물려준 재산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무소유의 부자지간이었지만, 그 어떤 부자富者도 흉내 내지 못할 재산상속은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

이미령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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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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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경식 2018-11-03 08:48:44

    생활속의 깨달음을위해 공부를하고 명상도하고
    기도도 하고 법문도고 얼심히 살게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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