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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함께한 동물 식물]전단수栴檀樹와 염소
사진 : 심재관

전단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본래 석가모니와 아난 사이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한 때 아난은 부처님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꽃과 나무의 향들은 모두 바람이 불 때에만 향이 흩어진다고 하셨지요. 또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만 향이 날린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바람이 부는 것과 관계없이 그 본래의 냄새를 멀리 퍼트릴 수 있는 향이 있을까요.”

“아난아, 자연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면 그 향을 맡기가 힘들겠지. 하지만, 도시에 사는 저 사람들이 거짓과 도박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래서 오계를 잘 지킨다면 그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따르거나 바람을 거스를지라도 사방에 자신의 향기를 흩어지게 할 수 있단다.”

청정한 수행자에게 느껴지는 사람의 향기를 불교에서는 계향戒香이라고 불러왔다. 

이런 수행자의 향기에 미치지는 않지만, 자연을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향기는 전단향栴檀香과 침향沉香 등이 대신해왔다. 이 가운데 전단향은 흔히 석가모니의 육체를 싸고 감도는, 그의 털구멍에서 뿜어 나오는 향이라 말한다. 그가 설법을 시작했을 때 천신들은 언제나 전단향과 꽃들을 뿌렸으며, 사리불의 다비식 때나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도 전단향은 어김없이 그곳에 흩어졌다. 초기의 경전부터 후대의 위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전들은 전단수가 갖는 이 특별한 향기를 한없이 칭송하고 있다.

이 전설적인 불교의 향은 전단수(Santalum album)의 심재心材 부분만을 사용해 만든다. 전단栴檀이라는 한역 명칭뿐만 아니라, 샌달우드Sandalwood라는 영어도 본래 이 나무 이름을 가리켰던 산스크리트어 ‘찬다나Candana’에서 유래한다. 불경이나 인도의 고전을 찾아보면 통상 전단수의 심재 부분은 검은빛이 도는 붉은 색을 띠는 것으로 묘사된다. 백단白檀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유사한 품종이 전단수로 인식되면서 얻은 명칭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기원후 4-5백 년 이전에는 백단(śveta candana)이라는 명칭은 인도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백단향은 나중에 생긴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심재 부분을 제외한 전단수의 나머지 부분은 황갈색을 띠는데 이를 증류해서 기름을 추출하거나, 조각상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증일아함경』에 기록하고 있는 바처럼 우전優塡왕과 파사익波斯匿왕이 처음 불상을 만들 재료로 선택한 것도 붉은빛이 도는 전단수였다. 

이 전단수는 석가모니 당시에도 매우 값비싼 재목이었음이 분명하다. 팔리율장인 『출라박가Cullavagga』에는 어느 장자가 전단수로 만든 발우鉢盂를 초능력이 뛰어난 수행자들에게 보시하고자했던 일화가 그려지고 있다. 

석가모니가 왕사성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의 한 장자는 우연히 미묘한 향이 도는 전단수의 심재心材 부분을 손에 넣게 된다. 그는 자신의 밥그릇으로 쓸까 생각하다가 발우를 만들어 수행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 바치기로 한다. 그 장자는 누구에게 줄까를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수행이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줄 요량이었는지 완성된 발우에 끈을 달아 그것을 긴 대나무 장대 끝에 매달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 대나무를 다른 대나무 끝에 연결하였고, 또다시 다른 대나무 끝에 그것을 계속 이어, 발우가 하늘 높이 솟구치도록 만들었다. 웬만한 초능력을 가진 수행자가 아니고서야 그 귀한 전단수 발우를 손에도 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발우를 하늘에 매달고 그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통력이 있는 바라문들이나 아라한이 있다면 이 발우를 가질 능력이 있다오. 허공에서 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이 발우를 그에게 주지요.’ 장자는 어리석게도 허공 높이 매달린 전단수 발우로 수행자들의 신통력을 시험했던 것이다. 경전에 따르면 당대의 이름 높은 여러 수행자들은 이 발우를 갖기 위해 애를 썼으나 모두 실패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초능력 시험에 푸라나 카사파Pūran.a Kassapa와 마칼리 고살라Makkali Gosāla까지 참여한다. 공중을 날아서 전단수 발우를 얻고자 했던 수행자 무리 속에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이름들이 열거된다. 이것은 아마도 이 경전 창작자의 애교 있는 상상력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전단수 발우를 얻는 것에 실패하자, 뒤에 목건련目健蓮과 핀돌라 바라드바자(Pin.d.ola Bhāradvāja)가 나타난다. 때마침 두 사람은 탁발을 위해 성읍으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모두 신통력으로 이름난 이들이었기에, 서로에게 그 발우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기회를 미루었던 모양이다. 결국 바라드바자는 대중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의 하늘을 세 바퀴나 날아다녔다. 이 광경을 보던 장자는 바라드바자에게 자신의 집에 내려올 것을 부탁하고 그의 발우에 풍성한 공양을 올린다. 그 후 대중들은 바라드바자 존자의 초능력에 탄복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따라다녔다. 

대중들이 환호하며 그를 따라 다니자 사원의 분위기는 좋을 리가 없었다. 사원이 갑자기 시끄러워지자 석가모니는 아난에게 사연을 들은 후 바라드바자를 부른다. 그의 질책은 의외로 단호했다. 스승은 말한다. ‘네가 천박한 나무 그릇 하나 얻으려고 대중들에게 신통력을 보였단 말이냐? 그건 마치 거리의 여인이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어 치부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보잘 것없는 나무 그릇 때문에 신통술을 자랑하다니!’

석가모니는 수행자에게 걸맞지 않은 최고급 발우뿐만 아니라 그를 얻기 위한 신통력 대회도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당시의 고결한 수행자조차 현혹될 만큼 전단향 발우가 매우 희귀하고 값진 물건이었음을 말해준다. 『출라박가』의 일화가 보여주듯 그 옛날에 전단수가 이토록 귀하게 여겨졌다면, 이후 사람들은 코와 눈의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전단수를 베어냈겠는가. 

값진 것은 언제나 탐욕을 끌고 다닌다. 이 목재는 여전히 비싸고 인도정부에서 벌목과 수출을 통제하기 때문에 시중에는 가짜 전단수의 공예품이 난무한다. 심지어 어느 상점은 일반 목재에 합성 전단수 오일을 오래 먹여 전단수 제품인양 팔아치운다. 이제는 수십 년이나 백 년이 넘은 야생의 전단수는 거의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사진 : 심재관

염소

인도나 네팔에서 염소만큼 역설적인 운명을 가진 동물도 없을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 염소는 바라문의 계급과 권위를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면서, 동시에 축제나 제사를 위한 희생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지역의 빈번한 의례용 동물이며 흔한 음식으로 식탁에 오른다. 

염소는 인도에서 가장 먼저 인간이 길들였던 가축으로, 이미 기원전 5천 년경 초기 하랍파Harappa의 유적에서도 인간과 함께 매장된 염소의 뼈가 발견된다. 베다 경전들 속에는 인간을 대신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희생물이 염소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당시부터 염소가 대량으로 제사의 희생물로 올라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염소가 대표적인 제사의 희생물이라는 점은, 힌두교 신 가운데 제사장의 역할을 맡는 아그니Agni 신이 염소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당연히 힌두교의 동물희생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대 인도의 불교신자들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일에 점차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마하카바타 자타카Matakabhatta Jātaka』에 묘사되는 일화가 그러한 예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 재가자들이 동물을 죽여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일이 어떤 공덕이 있는가를 제자들이 묻고, 그 대답으로 석가모니가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도 제물로 희생될 동물은 염소다.   

옛날,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염소를 잡아야 했다. 제사용 염소는 깨끗이 씻어야 하므로 그는 아들을 시켜 염소를 강가로 데려가 목욕시켰다. 그런데, 목욕을 한 염소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마구 웃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는 다시 한참 동안 목놓아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당황하여 염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울고 웃기만을 반복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염소는 그 아들의 아버지인 바라문에게 가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겠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염소를 데려가자, 염소는 그제야 그 바라문에게 자신이 울고 웃기를 반복한 사연을 이야기했다. “오늘에야 알았지요. 오늘 저는 염소로서의 생을 마감할 겁니다. 그동안 저는 5백 번이나 염소로 태어나기를 거듭했어요. 그리고 염소로 태어나면 다시 제물로 바쳐지고, 다시 염소로 태어나면 또 제사의 제물이 되어 목이 날아갔지요. 저도 오백 번이나 태어나기 전에는 선생님과 같은 바라문이었어요. 그런데,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바람에 그다음 생이 이렇게 오랫동안 염소로 태어날 줄 몰랐던 거지요. 그런데 이번에 당신의 손에 죽게 되면 염소로 태어나는 일이 마지막이라는 걸 오늘 깨달았던 겁니다. 그래서, 오랜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목욕을 하면서 막 웃음이 났던 겁니다.” 

“그런데, 왜 다시 슬프게 울었던 것이냐?” 바라문이 묻자 염소가 다시 대답한다. “그건 선생님 때문이지요. 오늘 저는 죽을 것이 분명하지만 저를 제물로 바치게 되면서 선생님은 다음 생부터 5백 번이나 염소로 태어나 죽기를 반복할 테니까요. 당신이 저와 같은 운명을 반복할 생각에 그냥 슬픔이 복받쳐왔던 겁니다.” 

이 염소의 말에 감복한 바라문은 다시는 염소를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아들을 시켜 이 염소를 잘 돌보라고 부탁한다. 이날 염소는 자신의 예언처럼 바위에 목이 잘려 죽게 되지만 그것으로서 염소의 생은 마감된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석가모니의 제자들과 사람들은 윤회의 두려움에 떨었고, 염소뿐 아니라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일도 멀리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는 매번 제사 때마다 죽어야 하는 염소에 대한 연민이 가득 숨어있다. 그러나 이 염소는 고대 인도의 격언처럼,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동시에 모든 동물 그 자체다. 염소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죽는 모든 동물에 대한 자비의 감성이, 그들을 매일 죽음으로 내모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때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심재관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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