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침묵의 성자 라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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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제자 이야기] 침묵의 성자 라훌라
  • 이미령
  • 승인 2018.10.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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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훌라(1)

라훌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아들입니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싯달타 태자는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성을 나가버렸습니다. 갓 태어난 아들에게 ‘장애’라는 뜻이 담긴, 그다지 길상스럽지 못한 이름 하나만을 안겨준 것이 아버지가 해준 전부입니다.

부처님 앞에 다가가는 어린 라훌라와 야소다라. 아잔타 석굴. Ⓒ불광미디어

|    아들이 태어났음에도 출가를 감행하다

여러 불교문헌들에서 라훌라의 탄생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데, 특히 『본생경』의 서문에 해당하는 『니다나카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시간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싯다르타 태자가 북쪽 성문으로 나가서 ‘출가수행자’를 만났다. 그리하여 태자는 ‘출가’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② 앞서 세 번의 성문 밖 행차에서는 늙음과 병과 죽음을 목격한 순간 마음이 무거워서 그냥 되돌아왔지만 이날은 ‘출가’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기뻐서 유원지에서 왕자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즐거움을 누렸다.

③ 이때 왕궁에서 사신이 달려 나와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④ ‘출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식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싯다르타 태자의 첫 마디는 “라훌라가 태어났구나. 속박이 생겼다”라는 말이었다.

⑤ 슛도다나왕은 자식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제일 처음 태자가 한 말을 사신으로부터 전해 듣고 손자의 이름을 ‘라훌라’로 정했다.

⑥ 한편 유원지로부터 돌아오던 싯다르타 태자 일행의 화려한 마차 행렬을 보고 키사고타미라는 귀족 여인이 이렇게 감탄을 했다.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

⑦ 그때 이 여인의 ‘행복’이라는 말을 들은 싯다르타 태자는 “무엇이 편안하면 정말로 행복해질까”를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지는구나”라고 깨달았다.

⑧ 이 ‘행복’이란 말이 ‘니르바나’ 즉 열반과 같은 뜻인데, 싯다르타는 이로써 앞서는 ‘출가’를, 지금은 ‘행복(니르바나)’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⑨ 싯다르타는 궁전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 이때 궁중 무희들이 왕자를 위해 또다시 화려한 연회를 베풀지만 싯다르타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깊은 잠에 빠졌다. 무희들도 실망해서 그 주변에 쓰러져 잠들었다.

⑩ 그날 밤, 한밤중에 잠에서 깬 싯다르타 태자는 무희들의 모습을 보고, 쾌락의 민낯에 마지막 미련을 버렸다. 

⑪ 마부를 불러 채비를 차리게 하고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려고 태자비의 침소로 향했다.

⑫ 그러나 문지방에 발을 들이고 멀리서 태자비가 아기를 안고 깊이 잠든 모습을 본 순간 아내가 깨어나면 자신을 붙잡을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해서 그냥 돌아서서 출가를 감행한다.

⑬ 그때 돌아서면서 싯다르타 태자는 생각했다. 
    “붓다가 되어서 만나리라.”(『니다나카타』)

출가한 날이 라훌라가 태어난 지 7일째가 되었다는 다른 문헌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정황을 꼼꼼하게 정리해보는 이유는 라훌라의 심정이 되어보기 위해서입니다.

 

|    아버지 부재를 절감하지 않았을 라훌라

오로지 집을 떠나 수행해서 완전한 행복을 얻으려는 남자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속박일 뿐입니다. 라훌라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구도행 앞에 드리운 장애물일 뿐입니다. 이쯤 되면 라훌라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축복 받지 못한, 서러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막 출산을 한 아내에게는 남편의 위로와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향긋한 기름 등잔불이 어둠을 밝히고 온갖 꽃으로 둘러싸인 침상에서 곤히 잠든 야소다라는 출산한 그날 밤, 남편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종교적 차원에서야 훗날 남편이 부처님이 되어서 아내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지만 속가인의 입장에서는 이 대목을 만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부부의 정이 이렇게 식어도 괜찮은지 못내 속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라훌라는 태어난 그 날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린 바람에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카메라가 발달한 시절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인도 땅에 초상화가 그려졌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으니 틀림없이 라훌라는 아버지 얼굴을 보려야 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움이 자리 잡을 여지가 전혀 없었겠다 싶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시절 인도는 지금처럼 핵가족 제도가 아니었고 석가족은 그 어떤 부족보다 핏줄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왕족이기에 라훌라 주변에는 할아버지 슛도다나왕을 비롯해서 석가족 남성들이 곁을 지켜주었을 테고, 따라서 아버지 부재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라훌라는 그럭저럭 왕족들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잘 살았을 테지요.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왔습니다. 가족들은 그리움을 맘껏 풀어내지도 못했으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밥 한 끼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붓다는 자신이 출가한 존재요, 세상의 스승임을 천명하였고, 자신을 바라문 신보다 더 높이 우러르는 제자들에게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라훌라가 몇 살 때 벌어진 일일까요? 문헌마다 내용이 달라서 정확하게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가장 적게는 나이 일곱 살 쯤 때, 그렇지 않으면 열 살 즈음입니다. 아직은 어리기만 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왕족의 위엄은 충분히 익히고 있었을 왕손이기도 합니다. 

그런 라훌라가 아버지와 첫상봉을 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슛도다나왕의 거처에서 아침 공양을 하려고 자리했을 때, 어머니 야소다라는 어린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라훌라야, 저 분은 네 아버지시다. 가서 네 몫의 유산을 달라고 하거라.”

불교문헌에 따르면 야소다라는 무척 총명한 여성입니다. 그런데 6년도 훌쩍 지나서 붓다가 되어 돌아온 옛 남편을 아들과 첫 대면시키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 좀 격이 떨어집니다. ‘유산을 물려 달라!’라니요. 많은 전문가들은 이 말을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결국 정신적 차원의 유산을 아버지 붓다로부터 물려받게 된다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    유산을 요구한 어린 라훌라

그런데 관점을 조금 달리해보자면, 초기경전인 『디가니까야』 「싱갈라에게 주는 가르침의 경」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는 재산 상속이 일종의 의무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아들이 없으면 집안 재산을 왕가에 압수당한다는 내용도 경전에서 심심찮게 만납니다. 그렇다면 재산을 상속하는 행위에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짐작해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내가 바로 당신의 자식(아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밝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야소다라의 ‘유산을 달라’는 말은 재물 자체를 말하기 보다는 “저 사람이 네 아버지”라는 사실을 왕가 앞에 밝히라는 뜻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라훌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입니다. 속된 말로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인 남자입니다. 그리고 겉모습이 왕궁 석가족 남성들과 너무나 다릅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어린 라훌라를 바라보는 부처님 심정은 어땠을까요? 

부처님에게 아들이라…. 

성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달음의 성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던 시기였을 텐데 말이지요. 그렇지만 라훌라가 그런 걸 헤아릴 리 만무입니다. 아이는 아버지 앞에 서서 그 작은 입술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라훌라입니다. 제게 유산을 물려주세요.”

부처님은 담담하게 곁에 있는 사리풋타 존자를 향해서 “라훌라를 출가시켜라”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태어나서 이날까지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라훌라는, 이제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출가를 ‘당하게’ 됩니다. 그 인생, 참 딱하다고 해야 할지, 특별하다고 해야 할지….(계속)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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