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쟁국사 원효는 교·선을 회통하고 무애행을 실천
조석 예불 때마다 마음에 사무치는 구절이 있다. 서건동진 급아해동. 불법이 인도와 중국을 거쳐 이 땅의 나에게 도달했다는 기억이다. 전등傳燈을 이어가야 앞선 법사·조사들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 화쟁국사 원효(617~686), 생각의 혼미와 행동의 투쟁이 극심한 시대여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요즘 국가, 사회, 기업이 이전투구로 치닫는 것은 결국 화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효의 방대한 저술 곳곳에 화쟁사상이 녹아있다. 『십문화쟁론』이 쟁론들을 회통시킨 대표적 논서이다. 화和는 본각, 진여, 일심으로 돌아가 하나 됨, 쟁諍은 말의 다툼, 말이 씨가 되어 몸싸움(爭)과 칼부림(錚)을 초래한다. 원효는 화쟁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쟁이불이諍而不二로 풀었다. 쟁의 화가 아닌, 화와 쟁의 중도로 본 것이다. 화쟁은 법계가 작동하는 중도의 원리, 시공에 편재하는 중도의 에너지이다.
원효는 화쟁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해골 물에서 일체유심조를 깨달아 당나라 유학을 가지 않았다. 수행과 저술을 병행, 근본 마음의 바탕에서 대승 교학들을 통섭했다. 재야 승려로 서민들과 어울렸으며 파계로 승속을 넘나들었다. 삼국통일 전쟁의 와중에 평화를 설파하고 민중의 고통을 보듬었다. 신분 차별, 교단 패거리, 승속 구분, 전쟁 살육에 순응하거나 대립하지 않았다. 불립문자 가르침을 펴면서 무애·파격에 솔선했다.
부처님이 원류의 최고봉이라면 원효는 해동의 그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대승 교학이 절정이었고 조사선이 흥기하고 있었다. 화엄종 개조 의상의 생애와 61년, 남종선 시조 혜능과는 48년이 겹친다. 삼국통일 시점의 나이 51세, 전쟁의 잔혹함에 평생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부처님도 종교 열기가 뜨겁고 전쟁이 격렬했던 시대에 사셨다. 원효가 살았던 당시의 고통, 치열했던 정진·교화의 삶을 함께 보아야 화쟁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한국불교를 둘러싼 안팎의 상황이 너무 위급하다. 국제정세가 어지럽고 정치사회는 대립을 일삼으며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불교계는 대사회 발신과 영향력 행사는 고사하고 자기 앞가림조차 못하고 있다. 원효 같은 큰 인물이 나와야 하고 화쟁 정견을 공유·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화쟁은 자신을 바꾸면서 외부를 바른 방향으로 선도하는 일이다. 불교계부터 화쟁에 솔선해야 세속이 불국토로 나아간다.
| 지상의 불국토 부탄은 화쟁을 통해 행복국가 지향
부탄은 히말라야 험지에 자리한 인구 82만 명, 면적 4만 ㎢(남한의 40%)의 작은 국가이다. 국교는 티베트불교, 애국가 가사에 ‘부처님 법이 융성할 때’가 나온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노래하며 종교가 복잡한 우리와는 다르다. 수미산 자락에서 불교를 믿으며 행복하게 사는 지상의 불국토. 최근 들어 외국 문물 유입이 가속되고 사회 모순·불만이 점증하고 있다. 부탄 왕실은 변화 적응과 내부 혁신을 위해 화쟁을 실천하고 있다.
부탄은 외부환경 변화에 신중하게 대응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병합하자 인도와의 동맹을 강화했다. 국제 분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작은 나라들 중심으로 수교를 했다.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TV 방송을 시작했고 외국 관광객에게 비싼 체재비를 부과해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했다. 교육, 건축, 복장 등에서 전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인터넷이 미치는 충격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느린 성장을 택해서 부작용을 줄였다. 민둥산이 늘어나자 벌목을 축소했고 농사일에 피해를 주는 등반 관광을 금지했다. 소수력 발전으로 자연 보호와 에너지 생산의 조화를 도모한다. 의무교육 11년에 대학교육이 무상이며, 외국에서 치료받을 경우 비용을 지원한다. 정부는 산중 수행자를 위해서 오두막까지 전기를 끌어다 준다. 첫눈이 내리면 공휴일을 선포할 정도로 낭만적이기도 하다.
왕실이 변화를 주도했다. 3대 왕은 교육·의료를 확충하고 왕실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했다. 또한 행복국가 지향을 선언하면서 국민총행복(GNH) 개념을 제안했다. 4대 왕은 “왕보다 국가가 소중하다”는 신념에서 조기에 양위를 했다. 현 5대 왕은 국민들이 왕정 유지를 청원하는 가운데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궁궐을 국가에 헌납하고 작은 집에 살면서 격의 없이 민원인을 만나고 있다.
화쟁의 지향점은 중생이 행복한 불국토. 부탄은 정책 초점을 국민 행복에 맞춘다. 그래서 척박한 여건과 저소득 상황에서 국민 대다수가 행복하다고 여긴다. 불법 공덕의 바탕 위에 왕실과 정책이 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돈이 행복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가져도 행복하지 않고 못 가지면 불행하다. 이제 양극화와 성장둔화로 돈이 눈물의 씨앗이 되었다. 돈은 해골 물, 알면서도 마셔야 하니 더욱 불행하다.
화쟁은 외부 쟁의 도전에 내부의 화로 응전한다. 부처님은 국가 내부의 화합이 외부 위협을 이겨낸다고 말씀하셨다. 부탄은 무력압박, 물질유입, 문화충격에 내부결속과 정체성으로 맞서고 있다. 한국은 부탄보다 10배 잘 살지만 훨씬 불행하다. 저성장이 계속되면 내부 쟁과 외부 쟁이 충돌해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해골 물로 갈증이 가시지 않아 더 마시려고 다투는 꼴이다.
화쟁은 결과에 상관없이 실천할 뿐이다. 세속법에는 공짜가 없다. 고통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며, 무엇을 이루든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공짜는 공空 자字의 억센 발음. 세속은 공空하지 않아서 고통들이 연쇄 반응한다. 남북대치, 청년실업, 양극화, 저출산은 병의 증상, 수많은 원인들이 얽혀있어 웬만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불교의 목적은 불국토이며 과정은 화쟁이다. 목적은 뚜렷하지만 과정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화쟁은 시행착오를 양약 삼아 불국토로 나아가는 영원한 과정이다.
부탄은 지상의 마지막 남은 불국토이다. 있는 불국토를 지키지 못하면서 없는 불국토를 새로 만들 수 없다. 한국은 부탄에게 무주상 재보시하면서 행복 국가의 법을 보시 받아야 한다. 재가자와 출가자가 재보시·법보시를 주고받는 것과 같다. 남북교류·성장둔화·사회재편이 예상되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극히 미흡하다. 화쟁의 원료·처방을 알고 있지만 채취·제약·복용의 추가 노력이 요구된다. 부탄의 행복국가에서 목적을, 원효의 화쟁에서 과정을 보면 고통이 적고 성취가 원만하다.
| 불교와 세속이 따로 또 함께 화쟁해야
불교계의 무기력은 불법의 소극적 해석에 기인한다. 진리를 구름이 가리는 달,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에 비유하는 것이 한 예이다. 개인 체험이며 관념에 갇혀있고 정적이다. 불립문자에 빠지고 계율 형식에 집착하며 세속과 괴리된다. 불법을 우주의 성운星雲으로 비유하면 어떨까. 고통의 어둠을 배경으로 생멸·연기가 화쟁해서 빛 구름이 장엄한 모습. 국가사회의 발전이며 실용적·역동적이다. 불교는 화쟁을 방편으로 해서 승속 장벽을 뛰어넘어 불국토 실현을 이끌어야 한다.
불교계는 분심으로 스스로 화쟁해야 한다. 비방·불복·시위 등 말법 행태는 쟁, 좌선과 출세간에 머묾은 화이다. 쟁으로 버팀목들이 무너지고 있어, 거기에 매달리는 화는 잘못된 길이다. 종단의 화쟁위원회, 방송의 화쟁토론은 눈 속 티끌부터 먼저 없애야겠다. 불교 오계는 불살생,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는 살생유택이다. 유택有擇은 쌍차쌍조의 선택, 중도가 화쟁을 통해 세속화하는 접점이다. 불不·비非·무無·공空에서 뛰쳐나와 중도를 매개로 화쟁의 에너지를 퍼뜨려야 한다.
화쟁은 평상심의 일상사. 최근 농촌버스 운행을 줄이려 했다가 여론 악화로 시행이 보류되었다. 기사 근무시간 단축이 주민 생활 불편과 부딪친 탓이다. 화쟁은 주민 편의와 기사 복지를 모두 개선하는 것이다. 주민과 기사가 제대로 쟁해야 고차원의 화로 나아간다. 일자리, 교육, 복지 등 화쟁해야 풀리는 문제들이 널려있다. 생활·생업의 수처隨處에서 작주作主로 화쟁해야겠다.
화쟁을 양약으로 사회 모순들을 치유하자. 세속은 힘·돈의 쟁이 지나쳐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으며 강자가 약자를 부당하게 압박한다. 강자에의 상생 요구는 화의 일심을 깨우치는 것. 약자가 뭉쳐 강자에게 대항함은 화로 쟁을 극복하는 것. 운동장 기울기를 고침은 쟁을 유발해 화를 되찾는 것. 화쟁 약효가 탁월하니 가져다 쓰면 된다. 근본 마음은 돈오돈수, 중생 자각은 점오, 세상 변화는 점수이다. 관점을 바꾸어 해법을 찾아내고 끈질기게 실천해서 변화의 회오리를 일으켜야 한다.
화쟁지도자를 양성하자. 불법은 한 명의 화쟁 정견이 만 명을 일깨운다고 가르친다. 그 만 명이 각자 자리에서 화쟁을 실천하면 세상이 몰록 좋아진다. 명상지도자가 개인 수행의 뿌리를 심고, 화쟁지도자는 사회 보살행의 꽃을 피우도록 하자. 출가자도 재가자의 리더십 함양, 정책개발, 전략실행, 갈등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부처님 제자라면 마땅히 중생 고통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원효가 시장통에서 화쟁 바가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짜 법을 나누니 마음이 깨어나고 몸의 흥이 넘쳐난다. 나비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키니 엉킨 고통들이 멸하리라.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