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불상도 번역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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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불상도 번역이 되나요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8.10.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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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전시 리뷰

사찰에 모셔진 불상은 주로 돌이나 철과 같은 영구적인 재료로 제작되어 있다. 영원토록 그 찬란함이 유지되기를 원하는 바람과는 달리 이 견고한 재료들도 시간의 풍파를 거치면 결국 변형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여기, 어차피 만물은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이치에 부응하듯, 아예 손쉽게 변해버리는 비누라는 재료로 신상神像을 만드는 조각가가 있다.

재영 조각가 신미경은 성곡미술관, 국제갤러리, 영국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베니스비엔날레, 난징트리엔날레 등 세계적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상’ 4인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는 9월 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사라지고도 존재하는>에 다녀왔다.

|    제행무상諸行無常의 향기

작가는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 도자기, 불상 등 박물관에나 있을 것 같은 유물의 형태를 비누로 완벽하게 재현한 작품들로 주목받아왔다. 어떻게 비누라는 재료로 화려한 중국풍 도자기의 문양이나 원본의 금 간 부분까지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실제와 똑같이 유물을 재현한 그의 비누조각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마치 박물관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공간에서 진동하는 비누의 향기 덕에 이 사물들이 박물관의 그것이 아니라 비누로 재현한 비누조각임을 잠시도 잊지 못한다. 이 조각들의 원본은 지금은 어느 박물관에 있을 것이고, 오래전에는 예배의 대상으로, 건축물을 장식하는 용도로, 음식을 담기 위해 실제로 사용되던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외형은 똑같은데, 대리석 대신 비누로, 박물관 대신 신미경의 개인전에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원리를 비누의 향기는 강렬하게 당부하고 있었다.

|    사라짐을 내포하는 조각

특히 작가가 2004년부터 해온 <화장실 프로젝트>는 제행무상의 실상實相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화장실 프로젝트>는 불상이나 미의 화신인 비너스와 같은 신상 모양의 비누조각을 화장실에 설치하여 손 씻는 사람들이 직접 작품을 사용해 손을 씻게 하고, 그로 인해 마모된 조각상을 전시하는 프로젝트이다.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탄 비누조각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변형되어 전시장으로 옮겨진다. 어떤 것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쪽 부분만 완전히 닳아 있기도 하다. 신상에서 비누로, 비누에서 현대미술 작품으로 변화하는 사물의 가치는 각양각색으로 변형된 비누조각의 모습처럼 무상無常함의 활력을 느끼게 한다. 

비누조각은 학창시절 작가가 유럽 여행 때 방문한 대영박물관에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하던 조각품들이 전시된 모습을 보고 느낀 불편함에서부터 출발했다. 기존의 용도나 역사적, 환경적 상황에서 벗어나 영국의 박물관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놓이게 된 조각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그 불편함이 촉발한 비누조각은 역으로 박물관의 조각품들을 그의 전시장으로 이주시키고 있다. 형태는 똑같아 보이지만 재료와 시공간적 상황의 변화에서 오는 ‘되어짐’에 주목하는 관점은, 사라짐을 내포하는 비누의 속성과 어우러져 더욱 강화된다.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만물의 이치처럼,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것들도 언젠가는 사라짐을 비누조각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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