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거사의 시대를 열다 |
지혜를 실천하는 우바새, 거사居士. 우리는 절에서 만난 남성 불자를 거사라 부릅니다. 이제는 거사들이 활약할 때입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서, 사중에서 오랜 시간 기운차게 활약하고 있는 거사들의 모임을 찾아가 봅니다. 이들은 사찰에서 만난, 법으로 맺어진 형제들이었습니다. 거사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사중의 울력을 도맡기도 하고, 손이 필요한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며, 자신의 신행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형제 도반과 속 깊은 신행 이야기를 나눕니다. 거사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멋진 거사들을 만났습니다. 01 한마음선원 법형제회 조혜영 |
“우리에게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일요일 오전이다. 군포의 도심 포교당 정각사(주지 정엄 스님)로 향했다. 8월의 여름. 거리는 한산했다. 몇몇 식당 안에서는 아침을 챙기는 사람들이 보였고, 거리의 상가들은 조금씩 오픈을 준비했다. 상가 엘리베이터 6층에 내려 정각사로 들어섰다. 법당 안에 사람들이 모인다. 한 거사가 각 맞춰 가지런히 좌복을 놓는다. 법회 시작 전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다. 보례진언. 목탁이 울리고 일요법회가 시작되었다. 부처님의 왼쪽 무릎 앞, 거사들이 나란히 앉았다.
| 공부 공부 공부
정각사 거사회는 2003년 12월 창립했다. 계획도시인 군포시 산본동에 정각사 포교당이 생긴 지 2년 만이다. 현재는 매주 30명 정도의 거사들이 참여해 법회를 보고 있다. 법회 인원의 절반 정도다.
“산본동은 상가 밀집 지역 주변으로 아파트 등의 주거 시설이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정각사는 도심 한가운데서 부처님 법을 전하고 있으니 눈에도 잘 들어와요. 거사회 회원들 중에도 가까이 있기에 한 번 찾아 왔다가 계속 나오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정각사 거사회 권오종 회장은 “인근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정각사가 위치한 중심 상가지에서 약속을 정한다”며 지리적 장점을 말하면서도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법회 예불과 함께 경전 공부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불자들은 공부에 목마르다. 주지스님이 직접 설명해주는 경전 구절에 눈이 반짝인다. 공부가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간에 대한 고민이 생겼는데 혼자서는 그 고민을 해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상가 건물들 사이에서 정각사 현판이 눈에 뜨였습니다. 마음을 잡고 방문한 그날은 마치 어서와 앉으라는 듯, 인연처럼 기초교리를 알려주는 첫날이더라고요.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고 몇 차례 절에 나오면서 스님께서 경전 해석하는 것을 듣는데, 이렇게 기가 막힌 법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정각사와 인연이 된 권 회장은 사찰에 어떤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 거사회에 가입했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 법을 배우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봉사를 통해 선행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경전 공부를 하면서 하심이 절로 되었다. 함께하는 거사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퇴임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부터 현재 교직에 있는 선생님, 경찰서장, 서예 지도자 등 각자 분야에서 잘 나갔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한곳으로 모였다. 부처님 법 따라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거사회 모임은 늘 화목하다.
“공부를 하면서 저희가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는데 어떻게 회향하면 좋을지 생각했습니다. 거창하게 보여줄 것이 없더라고요. 그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삶을 사는 것뿐이었습니다.”
김춘식 부회장은 거사회 활동은 특별할 게 없다고 말했다. 법회가 있는 날이면 조금 일찍 도착해 좌복을 가지런히 놓으며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다. 다른 거사는 스님이 만들어 준 그날의 경전 공부 프린트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또 어떤 이는 먼지를 쓸고, 공양간에 도움을 주기도 하며, 하다못해 문 앞에서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 “이제 절에 안 나가면 아내가 걱정해요”
거사회 활동은 특별한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법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별할 게 없다는 김 부회장의 말처럼 법회 또한 특별할 것이 없다. 순서에 따라 경을 외고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부처님을 향한다. 함께 법회에 참석한 이들은 주지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다. 그것이 특별하다. 매일이 가르침으로 깨어나는 새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경전 공부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일부다. 스님이 첫 구절을 강조하며 설명한다. 한 거사가 옆에 앉은 거사의 펜을 빌려 자신의 경전집에 밑줄을 그으며 메모한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잠깐 미소가 오가고, 눈은 다시 법문하는 스님에게 향한다.
“성불하십시오”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법회는 끝이 났다. 거사회의 공식 일정도 그게 다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다. 거사회 회원들은 사찰의 신도이자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다. 다만 조금 더 마음을 모으고, 조금 더 부처님 가까이 가기 위해 그들끼리 노력한다. 티내지 않을 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선다. 남보다 먼저 힘든 일을 자처한다. 그럼에도 거사회 회원들은 “어려운 일이라고 해봐야 1년에 몇 없어요”라며 말을 아꼈다.
정각사 거사회는 일손이 필요할 때는 먼저 나서서 봉사하고, 함께하는 회원들의 애경사를 함께 보듬으며 돈독한 관계들을 맺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한 달 내내 정각사 포교당이 있는 신도시 상가 거리 곳곳에 등을 달고, 도심 상가에 부처님 도량이 있는 것을 알리며 함께 불법을 전했다.
“혼자 하면 힘들고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저희를 이끌어주는 스님이 계시고 같이 부처님 공부를 하는 도반들이 계셔서 활동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특별할 것 없다는 정각사 거사회는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살아가는 데 집중한다. “이제는 절에 안 나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한다”는 권 회장의 말처럼 그들에게 사찰에 나와 함께하는 활동은 일상이 되었다. 거사회는 또 한 주 부처님 법문을 배우며 자신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