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보성 대원사 극락전 나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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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보성 대원사 극락전 나한도
  • 강호진
  • 승인 2018.10.0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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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추어 보는 나한이 본 것은 무엇일까?
사진 : 최배문

보성 대원사 극락전 벽에는 독특한 모습의 나한이 있다. 18세기 후반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나한도는 미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분명 아니다. 나한의 몸은 비례를 벗어나있고 괴석과 화초도 그리 대단치 않다. 극락전을 처음 방문한 이라면 이 그림보다는 동서 중앙 벽에 마주 그려진 관음도와 달마도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물로 지정된 두 점의 벽화를 젖혀두고 동측 구석의 나한도를 살펴보려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거울을 쥔 나한의 모습은 드물기도 하려니와 거울이 품은 여러 갈래의 의미는 진지하게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그림의 이해를 위해선 나한이 거울을 든 이유를 파헤치는 것이 첩경일 테니, 벽화의 이야기는 거울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다. 

 

거울은 하루에 한 번은 마주치는 생활용품이지만, 거울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거울은 문득 낯설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나는 시간을 안다. 그러나 시간이 무엇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시간을 모른다”라고 했듯, 거울도 시간과 다르지 않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진짜 나인가? 좌우가 뒤바뀐 거울 속 형상이 온전한 나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거울 속 존재, 아니 거울 속에서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저 존재는 누구란 말인가. 이상李箱이 「거울」이란 시에서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라고 말한 존재 말이다. 이쯤 되면 거울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영화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이 악당을 쫓아 들어간 거울방 씬scene에 이르러 관객의 긴장감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낯선 존재, 즉 자신과 타자가 거울 속에서 공존하는 무의식적 공포를 빼어나게 활용했다.  

그러나 거울에 맺힌 형상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은 유아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생후 3개월부터 18개월 사이의 유아는 뜻대로 움직이거나 가눌 수 없는 머리와 팔, 다리를 지니고 있지만, 거울 속 이미지를 통해 통합적인 운동능력을 지닌 신체로 자신을 인식한다. 즉 거울 속의 모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하면서 유아는 상상적 자아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이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mirror stage)이다. 만일 거울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유아들은 자아를 가지지 못하는가? 라캉의 거울이 꼭 사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유아들은 자신의 행위에 반응하는 엄마의 표정과 신체를 거울로 삼는다. 또한 아이가 보자기를 망토 삼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가 영화 속 슈퍼히어로와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거울단계의 특징은 허상에 대한 매혹으로 인해 실제 자신에 대한 소외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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