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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으면 허물을 부른다”[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으면 허물을 부른다”
그림 : 이은영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으면 허물을 부른다(交淺而言深 招尤之道也).’ 나와 그대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이 경전으로 나에게 인증認證받고 만세에 유포하여 중생들에게 부처의 종자를 심으려 하니 이것은 제일 좋은 일입니다.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을 인증받기에 적합한 인물로 생각하고, 진실한 소식으로 형식을 벗어나기를 기대하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혜 선사의 『서장書狀』이라고 하면 흔히 미묘한 선禪의 도리를 어려운 말로 남긴 편지글 정도로 생각한다. 게다가 출가수행자가 배우는 주요 교재이고, 간화선을 정통 수행법으로 하는 한국불교의 상황에서 『서장』의 위상은 가히 절대적이다. 이런 책이지만 너무 무겁고 어렵게만 대하면 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남의 편지를 살짝 들춰보듯 좀 가벼운 마음으로 살펴보면, 또 다른 맛깔이 느껴진다.

앞의 내용은 『서장』 가운데 손지현이라는 인물에게 보낸 답장의 첫머리다. 경박하다고 욕먹을지 모르지만, 이 편지는 『서장』 가운데 킥킥거리고 웃으며 읽어도 좋을 만한 편지다. 이름 같아 보이만 ‘지현’은 관직명이다. 손지현의 이름은 여與이다. 지현이라는 관직은 중국 송나라와 청나라 때 지방 행정구역인 현縣의 수장首長이니, 손여는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쯤 되는 사람이었다. 사대부로서 학문적 역량도 상당했을 것이고 지방 정부 최고수장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자부심도 강했을 것이다.

그는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모양이다. 당시에 유통되는 『금강경』의 여러 판본을 가다듬고 고쳐 편지와 함께 대혜 선사에게 보냈다. 손여는 대혜 선사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사이는 아니었다. 당시 대혜 선사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수정 보완한 『금강경』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서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 선사가 답장에서 “사귐이 얕은데…”라고 옛말을 인용하여 말문을 연 것이다.

손여는 내심 훌륭하다는 평가를 기대하며 보냈을 것이지만 선사로서는 좀 뜬금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손여는 함께 보낸 편지에서 당시 이름난 고승들의 『금강경』 번역을 두고, “참됨을 잊었고, 근본 진실을 어지럽혔으며, 문장과 글귀를 더하거나 덜어내어 부처의 뜻에도 어긋난다”고 야박하게 평가했다. 그리고 이런 잘못을 교정하여 새로운 『금강경』 번역을 완성했다고 적어 보냈다.

얼떨결에 사대부가 번역한 『금강경』을 받아든 선사는 일단 고마움을 표하는 말로 입을 열었다. 

편지로 보내주신 직접 수정하신 『금강경』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보았습니다. 근래 사대부가 좌우에 즐비하지만, 그대와 같이 불경佛經에 마음을 둔 사람은 사실 드뭅니다. 불경에서 나름의 의미를 얻지 못했다면 이처럼 믿어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불경을 보는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면 깊고 오묘한 뜻을 헤아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불꽃 속에 피어난 연꽃 같으십니다.

이렇게 인사를 다 하고 나서, 선사는 손여의 숨겨진 욕망을 까발리며 질책한다. 한마디로 까불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자세히 오래 되새겨보니 의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 범본梵本이 없는데도 자기 혼자만의 견해를 가지고 성인聖人의 뜻을 지워버리고 있으니, 원인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결과에 꿰어 맞추는[招因帶果] 꼴입니다. 이것은 성인의 가르침을 훼방 놓는 짓이니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일임을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알 만한 사람들이 그대의 『금강경』을 본다면, 그대가 앞서 불가佛家의 여러 스승에게 했던 지적이 똑같이 그대에게도 들이닥칠 것이니 걱정입니다.”

손여는 유학자로서 그리고 관리로서 수장首長의 자리에 올랐다. 수장의 자리는 위태로운 자리다. 그 자리는 고립된 자리이고, 자신의 허물을 돌이켜보기 어려운 자리이고, 아집과 욕망을 더 두텁게 쌓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위태롭다. 제동 장치가 없는 그의 욕망은 급기야 출세간으로까지 뻗쳐나갔다.

그는 『금강경』 번역을 뒤적거려 보고 시답잖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직접 번역판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출세간에까지 닿는 자신의 안목과 경지를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지당하시다고 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당대 최고의 선승이며 학승으로 알려져 있던 대혜 선사에게 원고를 보내 나 이런 사람이요 하고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안목에 못을 박아두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손여가 『금강경』 출판을 도모하게 된 욕망의 정체이고, 생면부지의 대혜 선사에게

불쑥 자신이 개편한 『금강경』을 보낸 이유일 것이다. 
대혜는 답장에서 번역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 것으로 손여의 숨은 욕망을 되돌아보도록 유도한다.

“번역에 있어서 말을 번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뜻을 번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글을 다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범어梵語에 비추어 증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뜻을 바로잡는데 치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국말과 범어를 서로 비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성인의 뜻을 잘못 번역했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범어본 경전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함부로 수정해 놓고서는 뒷사람들에게 자신의 번역만 믿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대혜는 손여가 『금강경』 번역을 수정 개편한 의도와 취지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모든 경전 번역에는 번역자의 결이 있다. 그 결은 저마다의 안목과 깨침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별다른 근거도 없이 남들은 틀렸고 자신의 번역만 옳다고 여기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선사는 묻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금강경』에 대한 사무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발로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선사의 지적은 날카롭다. 만약 『금강경』에 사무침이 있었다면, 스스로 깨우친 대로 이해하고 번역하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남들이 번역한 것을 시시콜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성인의 뜻에 어긋난다며 목소리를 높여 비판할 이유가 없다. 또 평소 안면도 없었던 선사에게 『금강경』 번역을 보낸 그 마음도 의심스럽다. 스스로 자부하는 번역이라면 굳이 누군가의 인가를 바랄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 높은 선사의 인가를 바라며 책을 보내온 것은 이미 남의 이목을 신경 쓴다는 것이고, 대혜의 명성을 빌어 남들의 의심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욕망이다. 그렇다면 손여의 『금강경』 해석 작업은 『금강경』을 읽고 심오한 이치를 깨닫고 그것이 흘러넘쳐 나와 번역 작업에 돌입한 것인지, 아니면 불교에 대한 안목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인지 그 첫 동기부터 되돌아보게 된다. 

대혜 선사는 편지의 끝부분에서 손여로 하여금 스스로 돌이켜 보기를 권한다.

“그대가 나의 이런 말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인다면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해서 끝내 경의 내용을 바꾸고 고치려 한다면, 그렇게 출간하는 책은 온전히 그대의 몫입니다. 공께서는 일부러 나에게 사람을 보내어 경經으로 인가印可를 구해왔습니다. 비록 서로 안면은 없지만, 불법佛法이 가깝기에 나도 모르게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어 거슬리는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의 진정성을 믿기에 더 마음 쓰지 않겠습니다. … ”

대혜 선사와 사귐이 얕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금강경』과 사귐이 얕았기 때문이었을까. 손여는 결국 허물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손여 뿐만 아니다. 선문의 안쪽을 넘겨다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경계해야 할 허물이기에, 더운 날 정신이 번쩍 들도록 스스로 경책한다.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

박재현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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