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제주 원명선원 대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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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제주 원명선원 대효 스님
  • 김성동
  • 승인 2018.08.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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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구족해 부족함이 없다
사진 : 최배문

어려운 인터뷰다. 첫 질문부터, 그 질문 자체를 친다. 몇 번의 질문이 이어지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느끼게 한다. 필요 없는 질문만 준비한 듯했다. 언어와 문자를 벗어나는 것이 참선 수행의 기본 태도인데, 그것을 전제로 질문한 셈이다. 대효 스님은 “지식 습득으로 질문하는데, 흥미를 유발할 뿐이다”며 지식 습득은 수행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자꾸 경책했다. 20여 개 항목의 질문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의 참선 경험자에게는 이런 상황이 곤혹스럽다. 스님의 표현처럼 “산에 가서 물고기를 찾으려고 하거나, 바다에서 호랑이를 잡으려는 것”과 같았다. ‘문자’로 밥 먹는 이의 한계인 듯했다. 스님은 꾸짖듯 이야기한다. “지금 다들 병들어 있는데, 문자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그러거든. 다들 문자가 부족해서 지금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라. 다들.” 

|    몸 성한 사람이 왜 약을 먹나

- 화두 참구는 중학생 정도만 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대할 때 색안경을 끼고 보며 사물을 이해하려면 아주 어려워. 근데 색안경 벗고 보면 있는 그대로라. 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색안경을 끼니까 접근을 못 하는 것이지.”

- 색안경은 무엇인가요?

“지식이지. 임제 스님은 ‘살불살조殺佛殺祖’라고 말씀하셨어. 또 ‘살부살모殺父殺母’라고 하지. 앞은 불법적 관념과 사상을 벗어나는 것이고, 뒤는 사회윤리적 관념과 사상을 다 벗어나는 것이지. 그게 다 색안경이야. 색안경을 고수하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노란 색안경을 아무리 닦아도 노란색이지. 그냥 색안경을 벗어버리면 간단하지.”

- 색안경을 벗고 싶어도 벗는 방법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 지금 많은 스님들이 참선을 하는데, 왜 각자覺者가 나오지 않을까. 그것은 너무나 쉬운 길을 등지니까 그래. 이를테면 바다에 가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못 잡지. 또 바다에 수레를 끌고 가면 갈 수 없지. 반대로 배를 육지에서 띄우려면 되겠어? 육지에서 고기를 잡으려면 못 잡지. 선은 두 가지 길이 있어. 바로 실천하는 길이 있고, 또 이해를 한 후 이해를 버리고 실천에 들어가는 것이지. 결국은 두 가지 다 실천이야. 실천이나 체험은 언어가 아니야. ‘화두를 어떻게 해야 하죠?’ 묻는 것은 이해를 구하는 것이지. 길을 가는 것은 걸어서 가는 것인데 뻔한 일을 ‘어떻게 가나요?’ 이렇게 자꾸 물으면 이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 이런 태도는 버려야 해. 임제 스님이 할이나 방을 했던 것은 바로 이론이나 논리를 벗어난 실천이지. 바로 실천을 보여준 것을 실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면 어긋나. 밥상 차려준 것을 먹으면 밥 차린 목적을 이룬 것인데, 이건 무엇으로 요리했어요? 어디에 좋아요? 단백질이 들어있나요? 등등 이렇게 이야기만 한다고 몸이 좋아지고 배가 부르는 것은 아닌 것과 같아.” 

- 이해가 되어야 실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 이해가 더 어려워. 색안경 끼고 알려는 것이니 어렵지. 때 묻기 전에 참선을 해야 해.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 불교를 이해한 후 참선하려면 지적 유희로 놀다가 끝나. 말 천 마디보다 필feel 한 번이 중요하지. 실천을 통해서 필이 조금이라도 오면 달라져. 물 한 방울이 항아리 물 전체를 바꿀 수 있어. 살불살조, 살부살모가 다 그런 이야기지.”      

- 참선에서 교리적 지식은 오히려 방해가 되나요?

“참선하는데 교리가 왜 필요한데? 교리는 방편이잖아. 방편은 병이 있을 때 쓰는 게 방편이지. 병도 없는데 왜 약을 먹어야 하냐고. 방편은 약과 같아. 몸 성한 사람이 왜 약을 먹어. 되레 병이 나지. 아프지 않은데 왜 약을 먹어. 참선을 자꾸 어렵게 보니까 그래.”  

|    업이 아니라, 작용이다

대효 스님은 1966년 문경 김룡사에서 출가해 당대 선지식인 서옹, 서암, 성철, 향곡, 경봉 스님께 선을 배웠다. 김룡사에서 금선대로 수행처를 옮긴 후 스님의 표현으로 “불교가 정리됐다.” 이후 원적사, 심원사, 홍제사, 백련암 등에서 정진했고, 1976년부터 제주에 원명선원을 열어 참선의 대중화를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는 안성에 활인선원을 개원해 참선 전파에 매진하고 있다.   

“한번은 이곳에 노스님 두 분이 찾아오셨어. 한 스님이 참선하다 안 돼서 염불로 돌렸대. 자기는 업業이 두터워서 참선이 안 되어 염불한다고 해. 업이란 말은 한국불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것을 업으로 보면 안 된다. 모든 것을 업으로 몰아가면 업만 남게 된다. 술 먹은 사람은 갈지자 걸음도 하고, 발음도 시원찮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런다. 그것은 작용으로 봐야 한다. 작용으로. 술을 먹었으니, 술 먹은 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얻어맞으면 통증의 작용이 생기지. 바다의 파도도 물이 업이니까 파도가 친다고 하면 안 돼. 작용으로 봐야지, 이 세상의 각기 다 다른 현상을 하나로 몰아붙이면 안 돼. 눈은 눈의 작용을 하고, 귀는 귀 작용을 하고, 밥 많이 먹으면 배부르고. 다 작용으로 봐야지, 그걸 업에 가두어서 업에 꼼짝 못 하게 하면 되겠느냐. 그랬지.”

- 많은 사람들이 그 노스님처럼 봅니다. 

“업이 블랙홀이 돼서 전부 업으로 빨려 들어가. 가급적이면 업에서 벗어난 표현을 써야지. 업이 아닌 것도 업으로 사용해. 전부 업으로 봐.”

- 스승 없이 참선 수행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선방에서도 점검하는 것이 많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있을 수가 없어. 길 안내가 없는데 어떻게 길을 나갈 수 있어. 병자가 약방문보고 약을 짓는 꼴이지.” 

- 병자가 약을 스스로 짓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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