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붓다의 관심사
상태바
[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붓다의 관심사
  • 성재헌
  • 승인 2018.08.26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벌써 30년이나 지난 일이다.

지식에 대한 탐욕이 왕성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프리초프 카프라가 지은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양자가 무엇인지, 중력장이 무엇인지,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과 절대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념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꼬박 밤을 새워 읽고는 꽤나 환희로웠다. 그래서 학교에 가자마자 친구들에게 그 책을 내보이며 호기롭게 말했다.

“야, 너희도 이런 책 좀 읽고, 절에도 좀 다녀!”
“뭐 대단한 거라도 있냐?”
“이 시대 최고의 천재들이라는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의 이론도 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이미 다 말씀한 것들이야. 너 공空이라는 말 들어는 봤냐?”
“부처님이 그렇게 똑똑해?”
“똑똑한 정도가 아니야. 부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셨던 분이야.”

그러자 한 친구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그럼 그 시절에 멋진 물리학 책을 내서 타임머신도 만들고 우주여행도 다니고 하지, 왜 그러지 않았냐? 모든 것을 알았다면 미래도 알았냐? 노스트라다무스보다 정확하고 치밀하게 예언한 책이라도 불교에 있냐? 부처님은 자비로운 분이라며? 정말 자비롭다면 후손들에게 닥칠 재앙을 미리 알려줘 대비하게 했어야지. 안 그래?”

남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을 나만 안 것처럼 뿌듯했던 자부심이 한순간에 흐릿해졌다. 그날 이후로 “부처님은 과연 모든 것을 아셨을까?”라는 의문이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해 경전을 배우면서 부처님 당시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중아함中阿含』 「전유경箭喩經」과 『맛지마니까야』 「말룽꺄뿟따에게 설한 짧은 경(Cūl.amālun.kyaputtasutta)」에 나온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 일이다. 어느 날 말룽꺄뿟따가 홀로 명상하다가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세계는 영원할까? 세계는 영원하지 않을까? 세계는 끝이 있을까? 세계는 끝이 없을까? 영혼과 육체는 같을까? 영혼과 육체는 다를까?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할까?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을까?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할까?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닐까?”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말룽꺄뿟따는 짜증이 났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면서 왜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말룽꺄뿟따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결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부처님, 이 세상은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이 세계는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혼과 육체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못마땅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확히 대답해 주시면 저는 부처님을 따라 계속 청정한 출가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대답해 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더 이상 부처님을 따라 배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룽꺄뿟따에게 물으셨다.

“내가 그대에게 ‘나를 따라 출가하면 그 질문의 답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부처님을 따라 출가할 테니 그 질문의 답을 알려주십시오’라고 요구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나도 그대에게 약속한 적이 없고, 그대도 나에게 요구한 적이 없다. 어리석은 자여, 어찌하여 그대는 마치 내가 그대에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가?”

말룽꺄뿟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처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달래듯 말씀하셨다.

“말룽꺄뿟따야, 어떤 사람이 전쟁터에서 독이 잔뜩 묻은 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아마 그의 동료와 친지들이 곧바로 달려와 그를 의사에게 데려갈 것이고, 의사는 곧바로 화살을 뽑으려 할 것이다. 그때 그가 ‘멈춰라. 먼저 이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겠다. 성이 뭐고, 이름이 뭐고, 신분이 뭔지, 키가 큰지 작은지, 피부가 흰지 검은지 알아야겠다. 이 화살이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활의 재질과 형태가 어떤지, 활줄의 재질과 형태가 어떤지, 살대의 재질과 형태가 어떤지, 활촉의 재질과 형태가 어떤지, 깃털의 재질과 형태가 어떤지 알아야겠다. 그것을 알기 전에는 이 화살을 뽑을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운다고 하자.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결국 죽고 말 것이다.   

말룽꺄뿟따야, 너도 마찬가지란다. 네가 제기한 의문의 답을 나에게서 찾는다면 너는 그 답을 알기 전에 죽고 말 것이다. 

말룽꺄뿟따야, 네가 ‘세상은 영원하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안다고 해도 너는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며, 너의 삶에서 슬픔과 비탄의 눈물이 가시지 않고 근심과 절망의 아우성 또한 그치지 않으리라. 네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안다고 해도 너는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며, 너의 삶에서 슬픔과 비탄의 눈물이 가시지 않고 근심과 절망의 아우성 또한 그치지 않으리라. 나는 그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들을 지금 여기서 파괴하라고 가르친다.

말룽꺄뿟따야, 네 질문에 나는 이것이 맞고 저것은 틀렸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익하지 않고, 청정한 삶과 관계가 없으며, 멀리 여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멈추고 삼매에 들고 올바로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룽꺄뿟따야, 나는 늘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발생(苦集)과 괴로움의 소멸(苦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익하고, 청정한 삶과 직결되고, 멀리 여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멈추고 삼매에 들고 올바로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룽꺄뿟따야,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것으로 기억하라.”

소위 난제難題라 불리는 질문들이 세상에 즐비하다.

“죽은 뒤 영혼이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붙잡고 궁구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종교宗敎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다른 종교라면 또 모르겠지만 불교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붓다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붓다의 관심사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창으로 찌르고 있는 사람, 둘 모두에게 내재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로 서로를 아프게 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어처구니없는 일상이었다.

“깨달으면 부자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될 방법도 알겠네? 다음 주 로또번호라도 알 수 있을까?”

30년 전에는 아무 말 못 하고 돌아섰지만 이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돈과 명예에 영혼을 저당 잡힌 삶에 행복은 끝내 깃들지 않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아는 건, 복권에 당첨되건 당첨되지 않건 다음 주에도 당신은 오늘처럼 불행할 것입니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