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운문사 비로전 관음·달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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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운문사 비로전 관음·달마도
  • 강호진
  • 승인 2018.07.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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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발견
사진 : 최배문

운문사 비로전의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초가을 새벽공기 같은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덮친다. 나는 텅 빈 법당으로 들어가 중앙에 있는 불상을 향해 삼배를 한 후 천천히 법당을 한 바퀴 돌아본다. 눈에 띄게 정비된 사찰 진입로와는 달리 법당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서쪽 대들보에 묶어놓은 반야용선 모양의 용가龍架도 그대로다. 반야용선 아래로 늘어뜨려 진 줄에는 아이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반야용선에 매달린 저 아이는 누군가요?” 

“저분은 악착 보살이에요. 악착같이 줄을 꼭 붙잡고 극락으로 간다고 해서요.”

오래전 법당청소를 하고 있던 승려와 나누었던 대화도 어제 일인 양 귓가에서 되살아난다. 과거 운문사를 찾은 것은 낯선 곳에 대한 충동적 열망 때문이었다. 무작정 청도 행 열차를 끊었지만 막상 청도에 내리니 할 일이 없었고, 다시 버스로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운문사에 도착했다. 그때 전각을 빠짐없이 둘러봤지만 십수 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승려들이 막걸리를 부어주던 처진 소나무와 비로전의 서늘한 아름다움, 그리고 악착 보살이었다. 그때 빠트린 것이 있다.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한 점의 벽화. 관음과 달마를 한 화면에 그린, 전례를 찾기 힘든 벽화를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여기에 섰다.

대개 사찰의 후불벽 뒤편 공간은 좁다랗고 어두컴컴한 데다 잡다한 기물들까지 쌓여있어서 일없이 들어서기엔 심리적 저항감이 만만치 않은 곳이다. 게다가 후불벽 뒷면 벽화는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 머리를 꺾어서 보아야 하는 높이에 위치해 있어서 제 존재를 쉽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특히 세로 3m에 가로는 5m를 훌쩍 넘는 운문사 비로전 벽화는 협소한 공간과 부족한 빛 때문에 그림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없다. 결국 벽화를 보기 위해선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면서 관음과 달마 각각의 도상을 올려다본 후 전체 이미지를 머릿속에 짜 맞춰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요구된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 다시 말해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처럼 성당벽화를 보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을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이들은 환하고 널찍한 만세루로 가서 우리의 세금으로 조성한 벽화의 모사본을 보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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