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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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도
  • 강호진
  • 승인 2018.05.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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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진리일 수 있게 하는 조용히 바래가는 한 점의 벽화의 쓸쓸한 증명
사진 : 최배문

사람들의 언어습관을 들여다보면, 무심한 표현이 역설적으로 자긍심의 표출일 때가 있다. 경주에서 태어난 이가 왕릉을 ‘어릴 적 쌀 포대로 미끄럼 타던 언덕’이라 지칭한다든가, 전주에 사는 이가 유명 한정식점을 ‘쌔고 쌘 동네 밥집 중 하나’라고 눙치는 경우가 그것이다. 소위 불도佛都라 불리는 부산의 불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통도사에 대해 ‘쪼매 먼 절’이라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보사찰인 통도사에 대한 불자들의 사랑과 자부심은 형언키 어렵다. 통도사는 내게도 소중한 절이다. 통도사에 가면 늘 명절날 밥상 앞에 앉은 기분인데,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무엇을 먹더라도 실망한 적이 없다. 고아古雅한 건축물들과 그 안팎을 채우고 있는 불교미술 때문이다. 기도나 예참이 아닌 건축과 미술을 보기위해 사찰을 찾는다고 하면 한가한 취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은폐된 진리의 현전現前에 대해 생각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그리스 신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종의 건축작품, 즉 하나의 그리스 신전은 아무런 것도 모사하는 것이 없다. 그것은 갈라진 바위 계곡 한가운데에 단순히 서 있을 뿐이다. 그 건축작품은 신의 형상을 에워싸서, 그것을 은닉한 채로 열린 주랑들을 통해 성스러운 구역으로 내보낸다. 신전을 통해 신이 그 신전 안에 현전한다. (중략) 서 있는 가운데 비로소 신전은 사물들에게 그것들의 모습을, 인간들에게는 비로소 그들 자신에 대한 전망을 내어준다.”

 

우리는 통도사의 창건이 신라의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진신사리를 가지고 옴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이데거에 따르면 정반대다. 금강계단의 불사리탑이 세워짐으로써 진신사리의 존재가 드러나고, 전각들이 들어서면서 그 안에 각양의 모습으로 중생들을 굽어 살피는 불보살들이 현현한다. 다시 말해 사리탑과 전각, 그림으로 인해 한국불교의 세계가 건립(aufstellen)되는 것이다. 이는 시방법계가 불국토이고 붓다의 법신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불자들이 왜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사로 몰려오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불자들이 절을 찾는 이유는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하근기 중생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드러난 형상(佛像) 속에 은폐되어 있던 진리(法身)를 만나려는 열망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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