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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통도사 영산전 견보탑품도진리가 진리일 수 있게 하는 조용히 바래가는 한 점의 벽화의 쓸쓸한 증명
사진 : 최배문

사람들의 언어습관을 들여다보면, 무심한 표현이 역설적으로 자긍심의 표출일 때가 있다. 경주에서 태어난 이가 왕릉을 ‘어릴 적 쌀 포대로 미끄럼 타던 언덕’이라 지칭한다든가, 전주에 사는 이가 유명 한정식점을 ‘쌔고 쌘 동네 밥집 중 하나’라고 눙치는 경우가 그것이다. 소위 불도佛都라 불리는 부산의 불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통도사에 대해 ‘쪼매 먼 절’이라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보사찰인 통도사에 대한 불자들의 사랑과 자부심은 형언키 어렵다. 통도사는 내게도 소중한 절이다. 통도사에 가면 늘 명절날 밥상 앞에 앉은 기분인데,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무엇을 먹더라도 실망한 적이 없다. 고아古雅한 건축물들과 그 안팎을 채우고 있는 불교미술 때문이다. 기도나 예참이 아닌 건축과 미술을 보기위해 사찰을 찾는다고 하면 한가한 취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은폐된 진리의 현전現前에 대해 생각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그리스 신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종의 건축작품, 즉 하나의 그리스 신전은 아무런 것도 모사하는 것이 없다. 그것은 갈라진 바위 계곡 한가운데에 단순히 서 있을 뿐이다. 그 건축작품은 신의 형상을 에워싸서, 그것을 은닉한 채로 열린 주랑들을 통해 성스러운 구역으로 내보낸다. 신전을 통해 신이 그 신전 안에 현전한다. (중략) 서 있는 가운데 비로소 신전은 사물들에게 그것들의 모습을, 인간들에게는 비로소 그들 자신에 대한 전망을 내어준다.”
 

사진 : 최배문


우리는 통도사의 창건이 신라의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진신사리를 가지고 옴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이데거에 따르면 정반대다. 금강계단의 불사리탑이 세워짐으로써 진신사리의 존재가 드러나고, 전각들이 들어서면서 그 안에 각양의 모습으로 중생들을 굽어 살피는 불보살들이 현현한다. 다시 말해 사리탑과 전각, 그림으로 인해 한국불교의 세계가 건립(aufstellen)되는 것이다. 이는 시방법계가 불국토이고 붓다의 법신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불자들이 왜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사로 몰려오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불자들이 절을 찾는 이유는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하근기 중생이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드러난 형상(佛像) 속에 은폐되어 있던 진리(法身)를 만나려는 열망에서 비롯한다.


   
통도사의 건축물들은 상, 중, 하 세 가지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일반적으로 금강계단이 있는 곳을 상로전上爐殿, 대광명전 주변을 중로전中爐殿, 영산전이 있는 곳은 하로전下爐殿이라 나누지만, 위계位階의 의미가 다분한 상, 중, 하라는 말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서로전西爐殿, 중로전中爐殿, 동로전東爐殿이라 부르고 싶다. 통도사는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가람구조이고, 그런 명칭이 통도通度라는 사찰명과도 부합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통通’은 개별적 실체들을 하나로 아우르려는 화해의 작업이 아니라, 애초에 실체나 차별이 없음을 드러내는 ‘공空’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만나야할 벽화는 하로전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받지 못하는 영산전 내부에 그려져 있다. 영산전에 들어가 왼쪽으로 몸을 틀면 허공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탑과 마주치게 된다. 11층으로 이루어진 탑은 옥개석마다 황금빛 기왓장을 올렸고, 몸체는 보배구슬로 엮어진 영락瓔珞과 풍경으로 장엄되어 있다. 탑의 각 층마다 호화로움을 상징하는 난간이 둘러져있고, 상륜부에서 뻗어 나온 장식엔 영락과 종들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어 마치 탑이 분수처럼 보물을 뿜어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아무래도 눈길을 가장 잡아끄는 부분은 탑의 3층이다. 열려진 문 안에는 오색의 서기瑞氣에 둘러싸인 두 명의 부처가 마주보고 있는데 정체를 알기 어렵다. 탑 좌우로는 네 명의 보살과 네 명의 성문聲聞이 구름 속에서 예배하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거대한 탑 속에 두 부처가 앉은 예사롭지 않은 이 장면에 고작 여덟 명의 대중만 참여하고 있다니. 그래서 화사는 양 옆의 벽을 이용해 등장인물의 숫자를 늘렸다. 좌측과 우측 벽에 보살, 성문, 신중 20위를 골고루 추가해서 모두 28명의 관객을 만들어놓았다. 벽화의 장엄한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분할된 세 벽면의 그림을 하나로 이어서 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한 것이다.

사진 : 최배문

그런데 탑 속에 있는 두 부처는 누구인가. 학계에선 이 벽화를 ‘견보탑품도見寶塔品圖’라 부른다. 『법화경』의 11번째 품인 「견보탑품」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변상도變相圖란 뜻이다. 「견보탑품」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자 갑자기 거대한 칠보탑七寶塔이 땅을 뚫고 솟아올라 허공에 머물더니 탑 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린다. 

“거룩하고 장하시도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법하셨구나. 석가모니 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진실이로다.” 

그때 대요설이란 보살이 나서서 어떤 연유로 탑이 솟아 음성이 들리는지를 석가모니에게 묻는다. 석가모니는 본디 탑에 여래의 모든 몸(全身)이 있고, 지금 탑 속에 있는 이는 오래전 동방의 보정이란 나라에 머물던 다보여래多寶如來로, 그가 보살도를 행할 때 “만일 내가 부처가 되어 열반한 뒤에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나의 탑이 이 경을 듣기 위하여 솟아나서 증명하고 찬탄하리라”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라 말한다. 대요설보살이 다보여래의 몸을 보기를 원하자 석가모니는 자신의 분신인 부처들을 불러 모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상의 많은 부처들이 빠짐없이 보탑 앞에 모여 경배하자 석가는 보탑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다보여래와 함께 자리를 나누어 앉는다. 이때 지켜보던 대중들은 석가의 신통력으로 허공에 머물게 되고 석가모니는 『법화경』을 세상에 잘 전해줄 것을 대중들에게 부탁하면서 「견보탑품」은 마무리된다.

사진 : 최배문

웅장한 보탑이 허공에 솟은 까닭은 『법화경』의 내용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탑 속의 두 부처는 현세의 석가여래와 과거세의 다보여래다. 이로써 우리는 벽화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일까? 「견보탑품」을 통해 얻은 지식은 도리어 벽화의 진실을 은폐한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변상도’라는 말엔 경전의 텍스트와 그림이 일대일로 치환될 것이란 전근대적 낭만성과 폭력성이 숨겨져 있다. 벽화의 근거가 경전이긴 하지만, 그림은 그림으로서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공간성이다. 이로 인해 벽화는 경전 내용의 시각적 재현이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공간의 맥락에 맞추어 재편한다. 벽화의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선 우선 그림이 그려진 영산전靈山殿이 어떤 곳인지 살펴야 한다.

영산靈山은 『법화경』에서 만년의 석가모니가 설법을 했다는 장소인 인도 왕사성 영축산靈鷲山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산은 붓다가 상주처이자 진리가 현현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이해되어왔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를 영산재靈山齋라 부른다든가,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사의 산 이름이 ‘영축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통도사 영산전 역시 법화신앙의 상징이 아니라 석가모니가 상주하는 진리의 성전으로서 의미가 도드라진다. 영산전의 중앙 벽을 차지하고 있는 팔상도와 전각의 창방과 포벽을 가득 메운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벽화들은 대승경전을 설하는 특수한 석가모니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붓다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벽화와 비슷한 시기, 같은 공간에 조성된 1734년 작 ‘통도사 영산전 영산회상도’에서도 석가모니는 『법화경』을 설하는 모습이 아닌 깨달음을 얻은 직후 항마촉지인을 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통도사 영산전이 특정 경전의 테두리를 벗어나 불교와 진리 자체를 표상하는 열린 공간임을 드러낸다. 

 

영산전의 성격은 당연히 ‘견보탑품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벽화는 더 이상 『법화경』을 설명하는 변상도에 머물지 않는다. 벽화는 자신이 속해있는 영산전이 상징하는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제 벽화는 석가모니의 존재와 교설 전체가 진리임을 입증하는 진리증명도眞理證明圖의 위상을 지닌다. 다시 말해 불교란 종교 전체에 대한 증명도가 되는 것이다. 벽화가 영산전에 봉안된 석가모니불상과 마주보는 위치에 그려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증명이 왜 중요한 것인가? 진리가 스스로 진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증명을 통해서만 비로소 감추어진 존재의 실상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붓다는 지신地神을 불러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케 했고, 다보여래는 먼 과거로부터 호출되어 『법화경』이 진리의 말임을 증명했다. 

오늘도 통도사를 찾은 사람들은 금강계단 주변을 서성이며 붓다가 전하는 진리를 엿보려 애쓸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모른다. 그 진리가 진리일 수 있게 한 것은 컴컴한 영산전 내부에서 조용히 바래가는 한 점의 벽화라는 사실을.   

          

강호진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삼천 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 일각 一角이란 불명을 받았다.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껏 별달리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심정으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를 썼다. 

강호진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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