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부처님의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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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부처님의 아픈 손가락
  • 성재헌
  • 승인 2018.05.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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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의 결의, 사진제공 인터아트채널

누구에게나 아픈 손가락은 있다. 이렇게 저렇게 애써보아도 별로 신통치 않고, 그냥 두고 보자니 참 성가시고, 그렇다고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자니 속이 영 개운치 않은 그런 사람이 있다. 더러워진 신발이면 훌러덩 벗어 빡빡 문질러도 보고, 얼룩이 빠지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리겠지만 아픈 손가락은 이도저도 할 수가 없다. 

세상사 내 뜻대로 흘러갈 리 없고, 그가 내 맘 같을 리 없으니,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이 주변에 서성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손앓이로 끙끙거려본 사람이라면 그 불편함과 불쾌함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공감할 것이다. 부처님에게도 그런 아픈 손가락이 있었다. 그 사람은 찬나(Channa, 闡那)이다.

그는 부처님의 마부였다. 그는 노예와 왕자라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부처님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찬나와 국사의 아들 우다이(優陀夷)는 어려서부터 부처님과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은 밤 곤히 잠든 아내와 아들을 뒤로 하고 카필라 성을 빠져나올 때 말고삐를 잡았던 사람도 찬나였고, 아노마 강가에서 출가자 싯다르타의 첫걸음을 지켜본 사람도 찬나였고, 세속과 인연을 끊은 자식의 의복과 패물을 부모 손에 건네주고 온 카필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사람도 찬나였다. 

세월이 흐른 후 당신의 아들이 마가다국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추앙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숫도다나왕이 우다이와 함께 파견했던 사자도 찬나였고, 우다이와 함께 출가해 부처님들을 설득하고 고향땅을 다시 밟게 한 사람도 찬나였다. 찬나는 그렇게 평생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랐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게 부처님은 스승이 아니라 영원한 주인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성정이 매우 거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직 부처님에게만 복종할 뿐, 그 외에는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부처님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건방을 떨고, 수틀리면 험담과 조롱에다 욕설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 무뢰한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나는 주인께서 왕성을 떠나실 때 그분과 함께 숲으로 갔던 사람이야. 그때 주인님의 친구는 오직 나뿐이었지. 그분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니까. 그런데 지금 저 사리불과 목련은 자신들이 부처님의 최고 제자라도 되는 양 으스대면서 꼴값을 떤단 말이야.”

부처님께서는 그런 찬나를 불러 타일렀다.

“찬나야, 사리불과 목련은 지혜와 덕이 매우 높은 성자이고, 너의 훌륭한 친구이다. 너는 그들을 존경하고 가까이해야 한다.”

찬나는 부처님 앞에서는 늘 순한 양이었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곧바로 늑대로 돌변하였다. 그의 못된 습성은 평생 고쳐지지 않았다. 부처님이 정하신 계율을 어기는 건 다반사고, 동료 비구들이 “죄를 숨기지 말고 대중 앞에서 참회하라”고 다그치기라도 하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고함을 쳤다.

“내 당신들이 잘하건 못하건 입에 담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내가 잘하건 못하건 상관 마시오!”

서로를 다듬어줄 수 없다면 친구라 할 수 없고, 공동의 규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구성원이라 할 수 없다. 스스로 승가공동체의 일원이기를 거부한다면 시원하게 떠나면 좋으련만, 그는 만사에 제멋대로면서도 끝내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처님 곁에 계속 머물 생각이면 크게 마음을 고쳐먹으면 좋으련만, 그는 평생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쳤지만 늘 말썽쟁이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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