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강의실 357호]열반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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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강의실 357호]열반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 홍창성
  • 승인 2018.05.30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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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깨달아서 궁극의 열반에 들지 못한다면 무시無始로부터 거듭된 생사고락의 윤회가 미래에도 끝없이 진행된다는 가르침은 참으로 가혹하다. 불자들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참혹함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미국 학생들은 곧 그래도 우리가 열반으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주목하며 또 질문한다.

“고뇌의 바다에서 벗어나려면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열반이란 무엇입니까? 열반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이 평안하고 환희에 가득 찬 어떤 의식의 상태를 말합니까? 열반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해야 합니까?”

당연히 물어져야 할 질문이지만, ‘열반’을 정의하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나는 좀 장황하게 설교조로 강의를 하게 되곤 한다. ‘열반’을 말로 정의하기가 일반 상식적 방법으로는 어렵고 또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열반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어 와서 그런 오해들을 모두 불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도유럽어 계통의 영어를 사용하는 내 학생들은 실은 ‘열반’을 개념적으로 쉽게 이해하는데, 오히려 동아시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개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래서 나는 이번호에서는 내 미국학생들이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열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미국식 강의를 해 보겠다.   

 

|    정의定義하기 어려운 개념 ‘열반’

우리는 ‘열반’이라는 단어로 다양한 표현을 한다. ‘열반을 얻다’, ‘열반을 성취하다’, ‘열반에 이르다’, ‘열반에 들다’ 등등. 열반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이 모든 경우에 공통된 무엇을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이 작업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열반을 얻다’라고 하면 열반이 마치 무슨 대상이어서 가질 수 있는 어떤 것 같은데, ‘열반을 성취하다’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열반이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표가 되는 것 같다. 또 ‘열반에 이르다’라는 표현은 열반을 마치 다가가야 할 어떤 목적지로 생각하게 하고, 한편 ‘열반에 들다’라는 말은 열반이 우리가 들어가기 원하는 어떤 마음 또는 의식의 상태로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가 평소 쓰고 있는 이런 표현들로부터 그 표현들의 의미가 가진 공통점을 찾아 열반의 의미를 추적해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위에서 든 네 경우에조차 어떤 공통된 특성을 찾기가 어렵다. 

혹시 우리가 열반에 대해 개념적으로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채 이런저런 표현들을 쓰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책상 앞에 정좌하고 숨을 고르며 이 문제를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면 답이 나올까. 어떤 개념 또는 가르침에 대한 논리적 접근이 언제나 가장 적절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열반에 관한 한 그 특성(?)을 논리적으로 파악해야만 원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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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a 2018-06-19 13:42:53
잘 읽었습니다.
다만 히피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왜 불편한 것인지,
히피의 환각이 열락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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