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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 금강경영불굴의 의지와 번뜩이는 지혜로 난관을 돌파

|    금강경은 불법의 진수를 담은 가장 대중적인 경전 

불경에는 우열이 없지만 단 하나를 꼽는다면 『금강경』이다. 경의 명칭도 보석의 왕인 금강석에서 따왔다. 금강석은 강한 지혜인 공空을 상징한다. 강함으로 번뇌를 타파하고 지혜로 무명을 밝힌다는 뜻이다. 불법 최전성기의 진수를 담았으며 육조 이후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중시되었다. 분량이 적당하고 서술이 명쾌한 탓에 승속이 널리 수지독송해 왔다. 

금강석은 가장 단단한 물질이면서 영롱한 빛을 낸다. 탄소 성분이 극도의 고압·고열로 다져지고 변질되어 만들어진다. 입자들이 나노 수준에서 인력·척력의 완전 균형을 이루고 있다. 원석은 강하기만 하고 불투명하며 볼품이 없다. 각을 잡고 면을 연마해야 모습과 색깔이 아름다워진다. 시련에 맞서야 강해지고 정진해야 지혜를 깨닫는 이치이다. 

금강경은 강함·지혜의 불이를 가르친다. 강하면서 어리석은 포악함, 약하면서 헛똑똑한 알음알이를 경계한다. 불不, 비非, 무無의 부정어법을 구사해 공을 체득토록 한다. 금강석도 원석을 깎고 갈아서 알짜만 남겨야 진공묘유가 드러난다. 다른 물질과 부딪쳐 강함을 증명하며 외부 빛을 받아서 자신이 빛난다. 다른 물질과 외부 빛이 있어서 금강석이 돌덩어리와 구분된다. 

불자라면 『금강경』 구절 몇 개는 외울 줄 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삼세심불가득, 응무소주 이생기심, 무주상보시 등. 근본 진리는 불립문자의 공空이어서 실체가 없고 이해하기 어렵다. 화두 타파는 희귀한 사건이어서 웬 만해서는 엄두를 못 낸다. 이에 비해 『금강경』 구절은 보통 사람에게 생각의 중심, 행동의 기준이 되어준다. 벽에 붙여둔 수험생의 경구처럼 다짐하고 실천토록 격려한다. 경의 사구게는 실천해서 효과를 입증해야 사구게死句偈로 전락하지 않는다.

『반야심경』은 『금강경』의 한 페이지 압축판이다. 공空을 색공, 생멸, 증감의 쌍차쌍조로 풀어냈다. 금강석의 강함은 쌍차, 빛 굴절·반사는 쌍조이다. 『금강경』 진리와 금강석 물성이 쌍차쌍조로 통하니 절묘하다. 깨닫지 못해 불교식 다빈치 코드를 해독하지 못할 뿐이다. 『반야심경』을 매일 암송하면서도 『금강경』 진리에 어둡고 금강석 물성과 다르게 살아간다.  

 

|    기업은 강함과 지혜를 겸비해야 난관을 돌파하고 기회를 선점  

우리 역사에서 활기가 넘쳤던 시기가 몇 번 있었다. 멀리는 고구려의 동북아 제패, 가장 최근은 산업화 성취가 대표적이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1915~2001년)은 고구려의 유목 기질을 이어받은 강골로서 산업화 주역으로 활약했다. 불굴의 의지와 번뜩이는 지혜의 금강경영으로 ‘할 수 있다(Can Do)’시대를 주도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현대 계열사에 금강이 있으며 대북사업은 금강산관광이었다.  

정 회장은 북한 통천 출신으로 일찍부터 농사일을 도왔다. 소학교 학력에 독학해서 일어·영어에 숙달한 걸 보면 머리가 좋았던 듯하다. 열일곱 살에 사업을 하고 싶어서 부친의 소 판 돈을 훔쳐 가출했다. 막노동 합숙소의 경험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 빈대들을 피해 밥상 위에서 잠을 잤더니 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랐다. 물을 채운 그릇에 상다리를 담갔는데 이번에는 빈대들이 천장에서 낙하를 했다. 빈대도 지독하지만 거기서 강함과 지혜를 배운 정 회장이 정말 대단하다.  

정 회장의 자서전 제목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자주 했던 말은 “해 봤어?”였다. 안 되는 이유를 대면 화를 냈으며 어려운 일일수록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선객의 활달한 기풍, 방과 할을 연상시킨다. 건설, 조선, 자동차 등 모두 불모지에서 도전해 성공한 사업들이다. 예사로 건설현장에서 숙식하며 밤샘 돌관공사를 독려했다. 직원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며 사내 식당은 무료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정 회장이 나이 들어 신입사원들과 씨름을 겨뤘던 것도 강인한 문화의 단면이다. 

정 회장은 번뜩이는 지혜로 난관들을 돌파했다. 1953년 겨울, 귀빈들의 UN묘지 방문을 앞두고 몇 일만에 보리를 옮겨 심어 푸르게 만들었다. 1967년 소양강댐 건설 소식을 듣고 압구정동 일대 땅을 구입했다. 한강 홍수 조절과 강남 개발을 예견해서였다. 1971년 조선소 부지만 조성해놓고 선박수주와 차관도입을 동시에 성사시켰다.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발명한 민족임을 내세운 덕이다. 1984년 폐유조선을 침몰시켜 서산 간척사업의 물막이를 마무리했다. 1998년에는 수백 마리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가 남북경협 물꼬를 텄다. 

기업 경영은 고난의 연속이다. 창업하기 어려우며 잘 나가다가 허망하게 무너진다. 기업은 이익을 위한 임시 조직이어서 보기보다 결집력이 약하다. 시장 독점, 권력 연줄, 금전 보상 등은 허장성세. 안팎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난관을 돌파하고 기회를 선점한다. 기업이 강해서 외부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 솔선과 구성원 호응이 합쳐져 시련에 맞설 때 강하게 보이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밀어내고 핍박하는 중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명량 해전에서 보듯이 짧은 시간에 좁은 공간에서 필사의 각오로 대들어야 한다. 금강석도 다른 광석의 틈새를 파고들어 순간에 깨뜨린다. 약자들이 힘을 합쳐야 덩치 큰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지혜를 모아 공동 전략을 구사하되 더 빠르고 유연해야 가능한 일이다. 고통 치유를 목적으로 강한 지혜의 방편을 함께 구사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기업은 시련 속에서 지혜가 단련된다. 고통을 겪으며 터득한 지혜라야 기업문화로 자리 잡는다. 현대의 “해 봤어?”처럼 신화가 경구로 정제되어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구성원은 모두 금강석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살아서 고뇌하고 깨닫고 발전하는 존재인 것이다. 기업은 구성원을 원석으로 보고서 자극하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구성원은 자신의 금강석을 인지하고 스스로 다듬는 정진을 계속해야 한다. 

창업자들은 과감하게 도전해서 산업화 신화를 만들었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해보려고 리더십을 발휘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신은 동족상잔에 괴로워하는 제자에게 “전쟁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각자 저지르는 작은 악이 우주의 큰 조화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금강석의 강한 지혜로 경쟁에 나서고 직원·소비자 행복에 노력할 뿐이다. 진정 강한 지혜라면 기업은 자비 공덕을 쌓고 세상이 존속과 수익을 보장한다. 

 

|    불법의 금강석으로 세속 결석을 깨뜨리고 녹여야 

세속은 삼독이 결석으로 굳었다. 생각을 씨앗으로 기술·제도·시설이 엉켜 붙었다. 보수·진보 이념, 정부권력, 기업조직은 일종의 결석이다. 어리석음이 뭉쳐서 고통을 주는데, 제거하려는 의지가 없고 방법에 무지하다. 독화살은 뽑으면 되지만, 결석은 부수고 녹여서 배출해야 한다. 부수면 가루가 남고 녹이면 성분이 섞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불법은 세속 결석들을 제거할 수 있는 강한 지혜의 무기이다.  

부처님 금강석은 완전해서 세속 고통을 치유하는데 위력적이었다. 후세가 방일한 탓에 그 금강석이 무뎌지고 때가 끼었다. 지금은 금강석과 같은 강한 지혜가 필요한 난세이다. 교敎는 금강석에 대한 해석, 선禪은 원석의 발견·생성이다. 원석이 세속 고통과 충돌·교류해야 금강석이 된다. 불법과 세속 지식이 충돌하고 비추어야 함께 깨닫는다. 불교 마음공부와 세속 인공지능이 상호 학습과 공동 작업에 나서야겠다. 불법의 텅 빈 지혜가 인공의 꽉 찬 지식을 이끌어야 바른 길로 나아간다.  

기독교 십자가는 피와 죽음을 떠올리는 상징물이다. 유일신에 대한 비이성적 신앙이 사랑의 실천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불교가 해解에 갇혀있다면 기독교는 신信과 행行이 강하다. 둘 다 고통 치유의 증證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금강경의 강한 지혜는 신·해·행·증을 아우른다. 불교와 세상이 벼랑 끝에 있으니 금강지혜를 닦고 실천하기에 얼마나 좋은 여건인가. 집에 숨겨둔 금강석을 포교당에 대여 전시하면 어떨까. 탐욕 대상이 아닌 불법의 상징으로 관하기 위해서이다. 금강석 판매 대금으로 전법 불사를 벌이고, 그 자리를 비워서 공을 관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요즘 불교와 사회의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 정치나 경제의 “해 봤어?”로는 불완전하다. 권력·돈의 쏠림과 다툼만 낳는다. 불교가 보시, 정진, 계율의 “해 봤어?”에 나설 때이다. 불교부터 말을 앞세우지 말고 행동한 다음 말해야 한다. 

그냥 알면 상근기, 고생해서 깨치면 중근기, 고통 겪고도 모르면 하근기라 한다. 부처님도 다생多生 고행의 중근기인데, 우리는 하근기이면서 상근기인 척 한다. 사회혼란기에 소천 스님은 『금강경』 독송 운동을 벌였었다. 독송 운동이 계속되고 방식이 진화했더라면 불교와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사자死者가 천국의 문에서 받는 질문. 삶에서 기쁨을 찾았나와 남을 기쁘게 해주었나. 『금강경』은 묻는다. 삶의 지혜를 깨달았나, 그리고 서로를 지혜로 비추었나.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 

이언오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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