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영화감독 임순례
상태바
[만남, 인터뷰] 영화감독 임순례
  • 김성동
  • 승인 2018.05.04 14:4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공과 무아의 삶
사진 : 최배문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공空과 무아無我. 임순례(59) 감독이 말한 단어다. 불자로서 어떤 것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가. 어쩌면 의례적인 질문일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재가자를 인터뷰했지만, 불교를 전문으로 학습하지 않은 이들에게 ‘공과 무아’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다. 불교를 공부했던 이들은 알 것이다. 이 단어를 자신의 삶과 견주어 말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런 상황이면 인터뷰는 불교로 조금 더 들어가 볼 수 있다. 이번 인터뷰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불보살님들의 가피”로 가능했다. 인터뷰 요청의 회신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터뷰를 너무 많이 해서 인터뷰는 어느 선에서 끊었는데, 불광 인터뷰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네요. 불자라고 내세우기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 인터뷰에 응해보려 합니다.” 이제 막 개봉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리틀 포레스트’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였기에 이 인터뷰는 ‘불보살님들의 가피’로 시작할 수 있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 불자 임순례

그를 만난 곳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다. 그는 이곳의 대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다. 그가 기르던 백구를 잃어버리면서 만나게 된 분이 “유명한 감독님이니 이곳의 명예이사를 맡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거절하였다가 달라이 라마 존자님이 “깨달음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란 말씀을 듣고 2009년부터 대표직을 맡게 됐다. 3층 도서관 문을 열자 고양이 두 마리가 임순례 감독과 함께 반겼다. 이미 오래된 친구인 듯 고양이들이 임 감독의 몸에 머리를 비볐다. 손님이 온 것을 알고 있는 듯 가까이 와 한 번의 손길을 허락한 뒤 무심하게 저 멀리 떨어져 우리를 바라본다. 

- 고양이들 포스가 예사롭지 않습니다.(웃음)

“예, 얘들은 좀 달라요. 특별합니다. 독립심도 있고, 품위가 있습니다. 둘이도 친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잘 지냅니다.”    

- 불교와 인연은 언제였나요. 집안이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집안이 천주교 4대째입니다. 당연히 집안에 수녀님, 신부님이 많으세요. 저도 유아영세를 받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자아가 싹트면서, 절대자에게 용서해달라는 것이 어린 마음에 뭔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또 신부님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인정하기 힘들었어요.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갖고 있던 체계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뭔가 아직 잘 모르고, 반항심이 싹트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산에 가면 절이 있잖아요. 절에 가면 마음이 아주 편한데, 가톨릭 교도로 오랜 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에 가면 법당에는 들어가지 않고, 당연히 절도 하지는 않았어요. 그때가 20대 초반인데, 나중에 언젠가는 저 법당문을 열고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20대에 절에서 두 달 동안 살았는데, 스님들과 대화도 많이 했지만, 법당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 그럼 불교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97년에 해인사 인근 대학에서 1년 반 정도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산과 절을 좋아해서 해인사 사하촌에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가야산과 해인사를 들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법당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해 사월초파일에 주인집 할머니께서 해인사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해서 모시고 갔습니다. 그때 주차장에서 법당까지 만장을 들고 가는 행사가 있었는데, 주인집 할머니 따라 자연스럽게 행사에 참여하면서 법당에 들어가 당시 종정이셨던 혜암 스님 법문도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법당에 들어가서, 절하고, 법문도 듣고, 법당 안에서 조용히 앉아있기도 하고, 또 약수암에 100일 동안 108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불교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    티베트에서 만난 불교

임순례 감독은 달라이 라마 존자를 스승으로 삼고 있다. 스승이 계신 다람살라를 찾아가 멀리서 달라이 라마 존자의 법문을 들었을 때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도, 작년 일본에서 열린 달라이 라마 법회 때에도 그에 대한 존경심은 이어갔다. 인터뷰 장소인 카라 3층 도서관 벽에도 달라이 라마 존자의 말씀이 걸려있었다. “삶은 말하지 못하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다.”

- 감독님은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존경한다는 것을 밝히고, 티베트 불교를 자주 언급하십니다. 

“10여 년 전에 티베트에 후배가 살고 있어 다람살라로 갔습니다. 제가 한국의 스님들에게 받은 인상은 굉장히 권위적이었고, 가부장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또 신도들이 불살생이나 자비 등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채식하는 분들도 별로 없었고. 근데, 티베트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 어떤 점에서 그런 모습을 느꼈죠? 

“촌로 한 분도 자기 생활에서 불교의 교리를 완전히 습득해서 일상에서 실천하고 계셨어요. 아침에 사원에서 할머니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염주 하나 들고, ‘꼬라(Kora, 우리나라의 탑돌이와 비슷하다)’를 하는데, 그때 꼭 소에게 보시할 야채를 들고나옵니다. 또 거기는 유기견이 많습니다. 근데 개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사람과 동물이 차별 없이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도로에 동물이 있으면 경적을 울리는 그런 것이 없어요. 제가 제일 감동받은 것은 달라이 라마 법회 때입니다. 그 좁은 운동장에 사람들이 엉덩이 하나 붙일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 개들도 와요. 거리의 개들이 더럽잖아요. 근데 누구 하나, 자리가 좁으니, 너는 사람이 아니니 저리 가라고 하지 않아요. 또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대하는 것이 너무나 소탈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인사를 나눕니다.” 

- 한국불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많이 보셨군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담련 2018-05-17 13:21:31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선허 2018-05-19 02:14:55
인터뷰 잘 봤습니다. 지혜와 자비에 대해 다시끔 생각하게 해주네요 ㅎㅎ ^-^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