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코쿠 영장의 남겨진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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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코쿠 영장의 남겨진 모습들
  • 지미령
  • 승인 2018.05.0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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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디에 어떤 영장들을 조성했나?

앞서 목포 유달산에 시코쿠(四國) 영장이 조성된 시기와 그 연유를 소개했다. 이번에는 영장의 구체적 흔적들과 목포 유달산 이외에 남아 있는 영장의 흔적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유달산 전체가 영장화되었지만, 많은 이들은 ‘유달산’하면 홍법 대사와 부동명왕만을 상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유달산에 시코쿠 영장이 조성되었을 때에는 조그마한 석불들이 산 전체를 뒤덮었겠지만, 구체적으로 몇 기가 제작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몇 기가 온전히 남아있는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시코쿠 영장은 일반적으로 88불이 조성되지만, 근세 이후 확장된 형태로 100기가 넘는 불상들이 제작되기도 한다. 또 당시의 자료를 찾기가 어렵고, 전쟁과 일제의 잔존을 버리고 우리 문화를 찾는다는 지난 시절의 흐름에 의해, 파손하거나 방치해 이들 석불의 이동형태를 알기 어렵다. 여기서 소개하는 유달산 영장 역시 훼손된 모습인 경우가 많으나, 가능한 상태가 양호한 것 위주로 설명하겠다.     

 

|    유달산 영장의 흔적들

영장의 모습은 보통 높이 65~80센티, 폭 35~40센티 크기의 소형석불이다. 신체와 광배가 붙은 일체형으로 광배 안쪽에는 각 석불의 번호와 불상 이름이, 좌대에는 시주자의 이름을 새긴다. 사이고쿠(西國) 영장의 경우, 석불들은 화현한 관음보살의 여러 모습들이 제작되지만 시코쿠는 홍법 대사, 대일여래, 부동명왕 등 다양한 모습의 불상들이 제작된다. 목포문화원 소장 여래상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좌대에 22번이라는 번호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불상의 수인과 구체적 내용을 새겼을 것으로 보이는 광배 오른쪽을 훼손시켜 그 이상의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 시코쿠 영장의 22번 절과 목포 유달산 22번의 불상은 일치할까. 시코쿠의 22번 절은 하쿠스이잔 뵤도지(白水山 平等寺)로 본존은 약사여래상이다. 홍법 대사가 뵤도지에서 수행할 때 오색구름이 일어났고 구름 속에서 황금의 범자梵字가 나타났다고 한다. 또 약사여래가 나타나 사방을 환히 비추었고, 대사는 우물을 파서 얻은 신령한 물로 몸을 씻고 100일을 수행한 후에 약사여래를 조각하여 뵤도지에 안치했다고 전하고 있다. 목포문화원 22번 불상이 약사여래인지에 대해서는 손이 파손돼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대부분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목포문화원을 나와 구동본원사 목포별원에서 옛 일본인들 거주 지역으로 이어지는 거리가 있다. 이 구거리의 조그만 골목 끝에 약사사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암자에는 홍법 대사상 1기와 당시에 제작된 지물과 대좌를 볼 수 있다. 이것들이 약사사로 오게 된 연유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해방 이후 유달산 영장이 훼손되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안착된 것으로 보인다. 좌대 위에는 지장보살을 안치시켰는데 서로 짝이 다른 임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좌대와 지물에는 시주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달성동에 위치한 유달포교원에도 10번, 14번, 19번, 38번, 54번 총 5구의 석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석불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나 시주자명은 확인하기 어렵다. 유달산의 석불들은 개인소장뿐 아니라 목포와 그 주변 지역 암자들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나아가 최근에는 유사한 형태로 제작한 불상들이 혼재되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유달산 초입에 위치한 정광 정혜원에서도 일제강점기 시기에 제작된 석불들이 확인된다. 정혜원은 1917년 일본승려 도현 화상이 흥선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로 해방 후 만암 큰스님이 정광 정혜원으로 사찰명을 바꿨다. 이곳은 만암 큰스님과 서옹 큰스님이 주석한 곳으로 현재는 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로 등록되어 있다. 정혜원 마당 한쪽에 1931년 이즈미 기헤이(泉喜平)의 시주로 조성된 일본풍 보현보살상과 5층 석탑이 놓여 있다. 유달산 영장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지만, 유달산 석불들과는 그 성격이 달라 시코쿠 영장으로 보기 어렵다.

유달산 시코쿠 영장에는 석불들만 조성된 것이 아니다. 신의 영역이 존재한다. 일등바위 부근에 ‘산왕대성전’터가 남아 있다. 암벽에는 ‘이곳에 항상 머물러 계시는 산왕 대성인’이라는 글귀와 함께 동물의 머리에 사람 형상을 한 의문의 인물이 암각되어 있다. 바위 곳곳에 의문의 암각화들이 새겨졌고, 산왕대성전 아래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향천정이라는 샘터가 있다. 모두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신을 모셨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 일등바위에서 이등바위로 향하다 보면 같은 시기에 조성한 신사가 나뭇잎들 사이로 가려져 있다. 비문에 ‘○○대명신大明神’이 새겨져 있고 비문 양옆으로 두 마리의 여우가 지키고 있다. 이 신사를 여우와 관련 있는 이나리 신사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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