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제자 이야기] 아내와의 약속을 기억하는 가섭
상태바
[10대제자 이야기] 아내와의 약속을 기억하는 가섭
  • 이미령
  • 승인 2018.04.05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아내 밧다와의 약속을 기억하는 성자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섭이란 분이 있습니다. 바라문 집안 출신으로, 부처님이 인정한 수행 으뜸인 가섭 존자입니다. 

이 가섭 존자는 출가하기 전, 아주 부유한 바라문 집안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는 외아들로서,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재산 전부가 그의 차지입니다. 부모의 바람은 딱 하나, 자신들의 가문에 잘 어울리는 뼈대 있는 바라문 집안의 곱고도 선량하고 현명한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후사를 잇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가장 자연스런 바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거스르지 않고 누구나 당연히 걸어가는 길이라 여기는 삶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핍팔라야나(가섭 존자가 출가하기 전 집에서 불리던 이름입니다)는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은 세속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속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세속에서 사는 일은 번거롭고 무의미하고 덧없고 눈물과 번민의 반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언제나 이 세속을 떠나 자유로운 출가자가 될 것인가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세속을 떠나려는 아들의 마음을 부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미 혼기를 넘겼는데 여성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짐작하는 핍팔라야나는 감히 집을 떠나 출가를 감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미녀상을 조각가에게 부탁하여 만들어서 부모에게 내밀고 말했습니다.

“이 미녀상과 꼭 닮은 여인을 만나지 않는다면 저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혼인할 생각이 있기는 있나 보다 하고 부모는 생각했습니다. 전혀 혼인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 않으니 그게 어디입니까? 서둘러 미녀상을 수레에 싣고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똑같이 생긴 처자를 찾아오라고 명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여인을 심부름꾼들은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아니, 미녀상의 빛이 바랠 정도로 미모는 더 뛰어났습니다.

결혼이란 제도는 한 사람을 이 인간사회에 아주 굳건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제도입니다. 독신의 신분으로 자유롭게 연애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의 인도 사회에서 바라문 집안의 혼사이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혼사는 취소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외아들 핍팔라야나의 성대한 혼례식이 끝나자 어느 사이 부모는 며느리의 임신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바라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며느리 밧다 역시 새신랑과 똑같이 세속의 가정생활에 아무런 애착도 기대도 품지 않은 여성입니다. 그녀 역시 이제나저제나 훌륭한 스승을 만나 죽을 때까지 수행하며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억지로 결혼을 ‘당한 것’이지요.

신랑신부가 이렇게 마음이 맞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속된 말로, 이보다 더 궁합이 맞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