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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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박재현
  • 승인 2018.04.05 13: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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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은영

조각은 대개 붙여 나가며 형태가 완성된다. 뼈대를 만들어 놓고 진흙이나 석고를 조금씩 붙이거나 발라가며 작가는 세상에 없던 것을 구현해 낸다. 하지만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는 완성된 형태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떼어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그가 만든 작품의 표면은 먹다 남긴 사과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다.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세워 놓은 것처럼 과하게 길쭉한 형상에다 억지로 마구 쥐어 뜯어낸 것 같은 겉면은 보는 사람을 살 떨리게 한다. 긁어내거나, 후벼 파거나, 떼어 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일지는 아득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난 전등불을 켜 두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어쩌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덧없고 덧없음 …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리 개처럼 죽어버릴 수 있다니….”

청년 시절 자코메티는 우연히 죽음을 목격했던 심정을 훗날 이렇게 적었다. 그의 눈에 삶의 막막한 실존성은 단정하거나 매끈하게 표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보통 두 작품이 꼽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유작인 로타르상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한 남자의 흉상을 조각한 이 작품은, “화산에서 갓 태어난, 제대로 식지 않고 아직 용암이 흘러내리는 끈적한 괴물”처럼 보인다. 껍질이란 껍질은 몽땅 태워버리고 검은 숯처럼 앉아 있는 사내는, 커다란 두 눈으로 강렬하게 앞을 응시하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본적은 없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거나 상상해봤던 끔찍한 형상, 바로 등신불이다. 작가 김동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등신불의 모습이 로타르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나’는 등신불을 처음 목격했던 충격을 이렇게 전한다.

“그것은 전혀 내가 미리 예상했던 그러한 어떤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진,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이었다. …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悲願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일찍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

등신불은 부처이면서 중생이고, 벗어났으면서도 또 벗어나지 못했고, 세간과 출세간, 정위正位와 편위偏位, 이 양쪽에 걸쳐 있어서 어느 한쪽에도 자신을 모조리 내맡기지 못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삶이란 본래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겨우 가납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기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가까운 사례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鏡虛, 1846~1912) 선사에게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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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 2018-04-06 00:19:24
이제 우주에서 절대로 헛되지 않은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말은 절대로 헛되지 않네요. 개구즉착이요. 이 봐요 교수양반! 自性은 보셨소? 수십년 도를 닥고,팔만 대장경을 다 외워도 자성을 못보면 말짱 꽝이 올시다. 죽으면 전부 사라지지요. 오직 자성만 남아요. 자성이 불교의 시작이고 끝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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