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불교, 영화를 만나다 : 이창재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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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불교, 영화를 만나다 : 이창재 감독 인터뷰
  • 유윤정
  • 승인 2018.04.0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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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불교문화는 확장된다” 영화 ‘길 위에서’ 이창재 감독 인터뷰

불교, 영화를 만나다

영화는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입니다. 최근 개봉한 ‘신과 함께’는 남녀노소 전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 산업은 활발합니다. 영화 관람은 이제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취미생활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영화제만도 영화진흥위원회 2018년 기준 136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교영화제는 없습니다. 불교영화도 그 수가 적습니다. 국내에서 제작된 불교영화의 수는 손에 꼽히며, 해외에서 제작된 불교영화가 소개되는 일도 드뭅니다. 시야를 넓혀보면 생각보다 더 다양한 불교영화들이 있습니다. 불교 코드가 녹아있는 영화도 다수입니다. 해외에는 불교영화제도 개최됩니다. 해외에는 어떤 불교영화제와 불교영화가 있을까요? 우리는 영화제를 만들 수 있을까요? 불교, 영화를 만나봅니다.

 

01  해외 불교영화제에는 어떤 영화가 있을까  김우진ㆍ유윤정
02  영화 ‘길 위에서’ 이창재 감독 인터뷰  유윤정
03  영화 속 불교 코드를 읽다  유응오
04  불교영화제를 위한 첫걸음  유윤정

영화를 계획하고서 이창재 감독은 비구니 선방 서른 곳의 문을 두들겼다. 겨우, 촬영 허락을 받은 백흥암에서 영화를 찍는 300일 동안 그는 네 번 쫓겨났다. 살얼음판 같은 여정, 그러면서도 스님들의 따스한 정을 느끼며 치열한 구도의 길을 영상으로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가 상영된 후 그는 연락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발심해 스님이 되겠다 절에 찾아온 이가 넷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창재 감독(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교수)의 영화 ‘길 위에서’가 상영된 후의 이야기다. 영화 ‘사이에서(2006)’, ‘길 위에서(2012)’, ‘목숨(2014)’, ‘노무현입니다(2017)’ 등을 연출한 이창재 감독에게 불교영화의 길을 물었다.

사진:최배문

|    영화 ‘길 위에서’

“어른스님께서는 ‘이 선방에서 지금 한 사람이라도 포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가 생활하는 것만 드러내 줘도, 이 사람이 수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데 무슨 이유로 문을 닫는단 말인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생전에 영화나 방송이 있으면 부처님께선 나오셨을 것’이라 하시면서요.”

이창재 감독은 당시 백흥암 회주 육문 스님의 말씀을 이렇게 회상했다. 영화를 찍을 당시 선방스님들이 촬영을 반대했고, 회주스님이 중재자로 나서 이렇게 설득하셨다 했다. 외부와 엄격히 단절된 수행도량 백흥암의 산문이 파격적으로 열렸고 그 치열한 구도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회주 육문 스님의 대범한 허락과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길 위에서’는 일반인의 출입도 촬영도 엄격히 통제된 비구니 수행 도량, 백흥암에서 정진 중인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불교계에서는 영화 ‘길 위에서’를 한국불교가 지향하는 수행의 가치를 불교계 안팎에 널리 알린 수작이라고 크게 주목했다. 영화는 일반인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본선진출, 제38회 서울 독립영화제 초청, 제6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버터플라이’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제13회 광주 국제영화제 힐링 시네마, 제8회 런던한국영화제 비평가 선택 등에서도 상영됐다.

이창재 감독은 수행자로서의 스님을 드러내고 싶었다. 수행자의 길을 걷는 스님들과 그 치열한 구도와 수행의 끝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찍는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어른스님의 허락은 있었지만 하루 10분 촬영도 허락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영화를 촬영하면서 겪은 그 어떤 경험보다도 어려웠다. 영화 ‘길 위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화는 큰 울림이 되었다. 영화가 개봉한 후, 영화를 보고 발심해 출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감독이 통도사에 갔을 때 한 행자는 맨발로 달려와 영화를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며 합장을 했다. 이 감독의 애제자도 영화를 본 후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이창재 감독은 육문 스님의 말씀을 다시 전했다.

“어른스님께서는 대중을 이렇게 설득하셨습니다. ‘수행자가 자기 수행만 하면 되는가, 우리는 길 가는 사람 붙들고 포교를 해야 한다. 당신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으면서 몇 명을 포교할 수 있는가.’ 큰스님은 정말로 전통을 중시하셨습니다. 하지만 포교에 대해서는 대단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    불교영화가 가야 할 길은 멀다

‘길 위에서’는 2012년 작이지만, 불교영화로는 최근작이다. 영화계에서 불교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계에는 선례가 있다고 했다. 

“임권택 감독의 ‘비구니(1984)’라는 영화가 제작될 때 엄청난 소동이 있었지요. 불교에 대해 왜곡된 모습이라고 판단한 스님들이 혈서까지 쓰면서 항의했었습니다. ‘만다라(1981)’도 논란이 컸지요. 그렇기에 엄두를 못 냅니다. 이후 영화계에서는 스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데 한계를 느낍니다. 불교를 조금만 잘못 비춘다면 폭발적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 당시 반발은 불교계에서 큰 이슈였습니다.

“예를 들어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는 스님이 희화화되어 있습니다. 스님들의 수행을 이해한다 하기 보다 오락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좋다고 하는 분들이 계세요. 희화화되는 것은 나쁘지 않은데 갈등을 드러내는 것에는 거부감이 큽니다. 절을 촬영한다고 하면 외피를 찍을 수 있지만 스님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는 검열의 벽이 둘러져 있습니다. 스님들이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와 속세에서 보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인지부조화가 강합니다.”

- 불교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앞서 말한 스님들의 빗장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불교가 현대문화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민속촌을 가듯, 도시에 있는 절까지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현대문화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있어요. 동시대와 같이 호흡해야 합니다. 탑만 하더라도 현대적 해석을 하는 시도보다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고 모방하는 데 멈춰있습니다. 몇 년 전, 정목 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정각사에서 미래탑을 세웠어요. 기존의 탑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입니다. 그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정각사의 그런 시도가 놀라웠습니다. 사실, 절, 불교, 스님이라는 아이템만 떠올리면 올드해 보입니다. 영화계 전체 주 관객층은 32세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불교문화가 필요합니다.”

- 시대 흐름을 읽는 불교, 문화 재해석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열쇠라는 말이군요.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우리 민족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앞으로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현재 문화적으로는 확장이 안 되고 있습니다. 과거 불교문화는 억불정책 등으로 억눌린 가운데에서도 발전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배부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적 확장이 약합니다. 영화만 단독으로 움직일 수는 없어요. 불교문화가 영화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문화에 대한 인식이 고전을 답습하고 보존하는 정도이며 동시대와 함께하는 데 있어 보수적이라면, 연령층도 점점 고령화되고 젊은 층의 수혈도 안 됩니다. 문화 자체를 재해석하고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미디어로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덧붙여 걸림돌 세 번째로 교단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 위에서’를 개봉했을 때, 당시 느꼈던 한계를 전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의 협조로 지역마다 개봉관을 열고자 했지만, 서울을 제외하고 겨우 전국 4곳에 개봉관을 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 ‘울지마 톤즈’를 개봉하면, 모든 교구가 ‘미사 때 보러 갑시다’ 하는 식으로 홍보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전체 개봉관 관객의 50% 이상이 서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총무원을 중심으로 한 봉은사 조계사 신도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통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통계로는 영화계에서는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투자대비 결과가 예상이 됩니다. 어떻게 해도 결과가 좋지 않다고 아는 것이지요. 개신교만 하더라도 매년 다큐멘터리 영화만 다섯 편 정도가 나옵니다. 그들은 항상, 일정하게 관객 확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 영화는 정착했어요. 저와 같은 시점에 다큐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쪽은 이제 20편 이상의 영화가 있습니다.”

 

|      길을 닦는 것은 따라가는 것보다 3배 힘들다

그는 종단이나 교구에서 책임감을 갖고 문화인들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도 그저 한 편을 만든 입장이긴 하지만, 사례가 쌓여야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눈 내린 산을 갈 때는 처음에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길 닦는 것을 러셀russel이라 해요. 러셀이 뒤따라가는 것보다 3배쯤 힘듭니다. 보통 작품보다 훨씬 더 어렵게 시작해야 하니까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반복되죠. 지원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 문제를 지원해줘야 합니다.”

대화 중, 이 감독은 ‘길 위에서’를 상영하면서 생겼던 어려운 점을 전했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불교 발전을 위해 보시하라며 무료로 달라고 한 단체도 있었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절에 와서 상영해달라고 한 사찰도 있었다. 그날 대웅전에는 600명이 모였다. 흰 천을 걸고 스피커 두 대를 놓고서 열악하게 영화 상영을 했다. 공동체 상영을 하면 인당 1.5배를 받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거마비 100만원을 받았다. 수요가 없어 DVD도 제작하지 못했다. 영화를 만들지 않을 이유도 있구나, 느낄 만큼의 일들이 있었다. 이 감독은 이런 부분의 성찰이 없으면 불교 콘텐츠를 만들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활자에서 영상 시대로 바뀌었으니, 큰 규모 영화까지 투자하기는 어렵더라도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있으니까 오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찾아가서 포교하기 어렵습니다. 문화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단청 하나 올리는데 몇억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서 문화 저작에 대한 지원은 낮습니다. 종단차원의 지원은 큰 틀입니다. 각 교구나 절에서 가지고 있는 사찰 특성이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 감독에게 앞으로 불교영화를 찍을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하고 싶은 불교 아이템이 몇 가지 있지만, 촬영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소재를 생각할 때마다 ‘이게 가능할까?’ 하는 마음이 들 만큼 조심스러운 느낌이 들어, 지켜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계속 영화를 찍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가. 그는 별을 이야기했다.

“우리 머리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대낮에는 별이 안보입니다. 해에 가려서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별을 부정할 수 없지요. 영성은 저한테는 중요한 숙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현실사회는 그의 확장입니다. 내가 영성을 온전히 추구하려면 사회가 제대로 서 있어야 합니다.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지만, 범인들은 진흙탕에서 고통만 느낍니다. 정화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접근이 제게도 똑같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알게 하는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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