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용연사 극락전 불구니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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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용연사 극락전 불구니건도
  • 강호진
  • 승인 2018.04.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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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통神通한 당신
사진:최배문

“공수부대 애들은 삼천 배 같은 건 선 자리에서 다 해버린다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 몇 사람이 삼천 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매부리코에 눈매가 찢어진 사내가 끼어든다. 그러자 머리가 반백半白인 중년이 나선다.

“성철 스님은 한 자리에서 만 배도 하실 거요.”

서울에서 온 얼굴이 새까만 사내가 재빨리 말을 받는다.   

“그것보다 스님은 가야산 봉우리를 뛰어넘는 축지법 같은 게 있지 않겠어요? 깨달은 도인道人이시니까요.”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좁아터진 방안에서 원치 않게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이들은 공감하는 눈치다. 대화는 종국에 실전싸움에 가장 유용한 기술이 복싱인가, 유도인가 따위의 객쩍은 이야기로 흐지부지되었지만, 우리는 이들을 너무 비웃지 않는 편이 좋겠다. 과거에 한 말을 녹음해서 다시 들려줄 때,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느낄 이가 한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만은 아니다. 이 대화는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최초로 ‘아비라 기도’를 하러 갔을 당시에 어른들에게서 들은 것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십 수 명이 3박 4일 동안 한 방에서 기도하고 서로의 발을 얼굴 맡에 두고 포개어 자야 했던 불편함보다는 이 우주의 먼지 같은 대화가 선명하게 남은 걸 보면 허망한 세상에서 이야기보다 오래가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여기에도 한 이야기가 있다. 불교가 지닌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만나러 영하 17도의 혹한에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비슬산 용연사에 도착했을 땐 정오를 훌쩍 지나있었지만 추위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극락전에 들어서니 빙판 위에 맨발로 선 느낌이다. 발가락이 아리는 것을 넘어 감각이 사라져 가는데 찾는 벽화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극락전 내부에는 1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70여 점의 벽화가 사방에 장엄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화의 다양함과 그 수에 있어서 독보적인 통도사를 논외로 하면, 용연사는 벽화로 유명한 제천 신륵사나 양산 신흥사와 나란히 세워도 좋을 사찰이다. 나는 극락전을 한 바퀴 돌고 난 후에야 중앙에서 오른편으로 빗겨 난 벽에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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