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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저작·역자 한승원 지음, 김선두 그림 정가 16000원
출간일 2018-03-09 분야 문학, 에세이
책정보

판형_143*215mm|두께_2.2cm|352쪽|4도 | ISBN_978-89-7479-389-0(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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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한국문학의 거목, 한승원 작가의 자전적 산문집

22년 전, 서울에서 고향 장흥으로 내려간 작가는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해산토굴’이라 이름 짓는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을 가둔 채 오롯이 인간 성찰의 도구로써 글을 써왔다. 안과 밖, 세상과 자연의 경계에서 작가는 소박한 일상과 우주적인 사유를 오가며 겸허한 인간론을 펼쳐왔다. 이제 땅의 끝이자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다다른 작가는 인생의 말년을 냉철하게 목도하며 지난 삶을 반추,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그의 현재적 고뇌는 죽음마저도 삶으로써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며, 그 치열한 능동적 삶의 태도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부록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는 바로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치열한 삶으로의 권유, 바로 그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희망 사진관》,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까마》 《시인의 잠》 《우리들의 돌탑》 《연꽃바다》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화사》 《멍텅구리배》 《초의》 《흑산도 하늘길》 《추사》 《다산》 《원효》 《보리 닷 되》 《피플 붓다》 《항항포포》 《겨울잠, 봄꿈》 《사랑아, 피를 토하라》 《사람의 맨발》, 《달개비꽃 엄마》, 산문집 《허무의 바다에 외로운 등불 하나》 《키 작은 인간의 마을에서》 《푸른 산 흰 구름》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 《바닷가 학교》 《차 한 잔의 깨달음》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시집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 《달 긷는 집》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이별 연습하는 시간》 등이 있다.

그림 김선두
화가. 그의 고향은 광화문에서 정남쪽인 장흥 정남진 바닷가. 그곳의 대지와 바다와 하늘과 바람, 꽃과 새 그리고 사람…, 천지간(天地間) 생명의 숨결을 화폭에 담고 있다. 표지의 꽃 같은 별들은 어둠 벽에 뚫린 작은 숨구멍이자 염원이며, 우리 모두 언젠가는 돌아갈 바로 그 집이다.

목차 위로

작가의 말 : 내가 하늘을 보는 까닭은
서문 : 늙은 감나무와의 대담

1 나의 눈빛이 하늘의 별을 만든다

어둠 속에 나를 묻어놓는 것도, 거기에서 나를 꺼내는 것도 나이다
수방청 당숙의 바보 같은 마음
시인의 얼굴
나를 늘 강하게 만드는 슬픈 음화 같은 기억
절대자의 사랑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과거 혹은 고정관념이라는 감옥에서 졸업하기
물은 도전적으로 흐르고 꽃은 공격적으로 핀다
겨울 나목 앞에서 옷깃을 가다듬다
삶은 산보다 무겁고 사랑은 새털보다 가볍다

2 모래의 시간을 생각하다

파도를 보고 모래의 시간을 생각한다
나의 삶은 지금 어느 계절인가
봄꽃은 순간이고 여름은 길게 출렁거린다
친구여,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말해주겠다
내 얼굴은 하나의 새콤한 관념이다
여신의 영육과의 깊은 만남
신화적인 바다의 실제 상황 중개하는 리포터

3 꽃향기를 귀로 듣다

꽃들의 사업
철없는 나의 몸은 봄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
한 마리의 벌이 되어
향기를 귀로 듣다
나 멀리 떠나고 난 뒤 토굴 마당에는
사랑하는 나의 여름신부
바람이 불자 여신의 달빛 옷자락이 날리고

4 태양은 언제나 문 밖에 있다

마음에 거울 하나 지니고 살아간다
해야, 김칫국에 밥 말아 묵고 얼릉얼릉 나오너라
섣달 그믐밤에 잠자면 굼벵이가 된다
새 아침의 기도
우리는 모두 한 개 한 개의 섬이다
행운과 액운은 동전의 양면
경계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5 풀 베고 책 읽고 글 쓰고 명상하고

하늘의 마음을 가지고 살다
갇혀 살기와 자기 풀어놓기의 묘
그 오솔길 양쪽에 전혀 다른 향기로운 삶이 놓여 있다
꽃샘바람 속에서 세한도를 읽다
차와 깨달음의 색깔
흐물흐물해진 삶을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
모두 취해 있지만 나 혼자 깨어 있네

6 차는 식었지만 맛은 달다

늙어가지만 낡아지지 않는다
생각의 가지치기
오는 님을 숨어서 반기는 여인처럼_산유화처럼 사는 ㄱ스님에게
우리 집 꾀꼬리는 장흥 안양의 사투리로 운다
흰, 그게 시(詩)이다
꽃 지면 열매 있고 달 지면 흔적 없어라
백팔 톤 바위로 백팔번뇌 눌러놓고

7 내 콧구멍 속 어둠 밝히기

그냥 웃지만 마음은 한가롭네
콧구멍 속의 어둠에 대하여
바다를 심호흡하다
개의 눈에는 바람은 보이는데 눈〔雪〕은 보이지 않는다
내 피 속에 시끄러움이 들어 있다
손은 부처님 손인데 왜 다리는 나귀 다리인가
강아지풀, 얼마나 대단한 경전인가
도끼문자
어버이나 선생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야 한다

8 빈 그릇 흔들기

검은 구름장이 하얀 흰 눈을 토해내듯
스님의 사업(事業)과 소설가의 사업
매화 향을 먹고 살다
나의 낙화시기를 점쳐보다
꽃을 쳐내고 먼 산을 보네
‘달 긷는 집’에서
사람들은 속이 텅 빈 그릇 하나를 흔들고 있다
순백으로 돌아가기

9 내 영혼에 드리운 그윽한 그림자들

절하고 싶어 절에 갑니다
부처님의 맨발
파란 허공을 쳐다보며 _열반에 든 법정 스님께
바보 성자, 혹은 이 땅의 빛과 소금 _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
새벽 바람벽을 기어가는 화사와 마주치다
여가수의 아버지 찾기
나를 기다리는 두 여인

부록 병상일기 _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

상세소개 위로

혹독한 겨울을 지나 피어나는
새봄의 꽃 같은 산문들

한국문단에서 문인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는, ‘작가들의 스승’ 한승원. 그를 향한 존경은 등단 52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치열함과 스스로를 냉혹하게 다스리며 변화하는 자기 갱신에 있다. 해마다 한 권 꼴로 장편소설 ․ 중단편집 ․ 시집 ․ 산문집을 펴내는 놀라운 생산력(生産力)은 바로 그러한 한승원 특유의 작가 정신에서 비롯된다.
2018년 새봄과 함께 찾아온 신작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역시 작가의 성실함과 치열함이 꼿꼿하게 살아있다. 이번 산문들은 ‘아버지의 의지와 상반되는 쪽으로 황소처럼 나아가던 아들’의 나날에서 자꾸만 ‘슬픈 눈이 되어버리는 늙은 아비’의 시간까지 작가가 통과해 온 세월을 아우르고 있다. ‘풀 베고 책 읽고 글 쓰고 명상하고……’ ‘땅끝 바닷가 토굴’의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노라면 ‘이쯤해서 자신을 성찰해보라’는 작가의 은근한 권유를 받기에 이른다.

“나의 호 ‘해산(海山)’은 바닷가에 있는 가시적인 산이 아니다. 짙푸른 심해 속에 암초처럼 발달한 숨어 있는 산이다. 바다 속에 내(산)가 있고, 나는 날마다 꾸준히 그 나(산)를 탐색하며 오르곤 하는 것인데, 그 등산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사리 같은 각성이 나의 모래밭에 깔리고 나는 그것들을 헤아리며 삶을 엮는다.” (227쪽)

등단 52년, 어느덧 작가는 생의 말년을 지나고 있다. 문득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부스스한 반백의 늙은’ 얼굴에 놀라고, 이유 없이 몸살을 자주 앓고, ‘하느님이 나를 솎아내려고 한다’고 직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유와 성찰의 습(習)을 익힌 작가는 곧 ‘하느님이 솎는 대로 솎아지지 않겠다’며 ‘아직은 버팅기겠다’, ‘폴 발레리처럼 살려고 분투하겠다’고 다짐한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이지만 분명하게 존재해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최선을 다해 살아내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온전하게 살지 못하도록 이끄는 수많은 ‘유혹’과의 싸움이 아닐는지!

살기 위해 글을 쓰다
유혹을 이기고 버티는 힘에 관하여

작가는 22년 전 서울에서 땅의 끝, 고향 장흥으로 내려왔다. 포기하고, 버리고, 안에서 밖으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벗어나겠다는 선택이었다. 덜컹거리는 심장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하기 위해 벽을 쌓고 스스로를 유폐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돌아보면 그의 삶은 수많은 벽 쌓기였다. 가령, 친일 이력이 있는 재벌회장의 전기를 써주면 3억 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거나, 유‘약하고 게으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아내와 자녀들에게 “이번 방학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반드시 읽을 거야!” “올해 장편 하나와 단편 2개를 꼭 쓸 거야!” 선언하고 기필코 해낸 일 등. ‘무력한 목’에 스스로 ‘멍에’를 걸었다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소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치열함, 작가의 글쓰기와 삶의 동력이 여기 있다. 그에게 ‘글쓰기’는 곧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무엇에 매달려 있고 과연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를.

“모든 공격적인 현상들을 차단해주는 것이 벽이다. 요염한 여인이 유혹했을 때 그 유혹을 뿌리치는 마음의 장치가 벽이고, 돈과 벼슬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것을 뿌리치는 강단이 벽이다. 바람벽을 향해 좌선하는 것이 면벽참선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벽은 사실 네 마음속에도 있고 마음 밖에도 있다.” (16쪽)

“바닷가에 섬세하지도 정교하지도 못한 작가실을 짓고 ‘토굴’이라 명명한 것은 스님들처럼 수도하듯이 살겠다는 것이다. 수도하듯이 산다는 것은 나를 그 토굴 속에 가두고 바깥바람으로부터 격리시키겠다는 것이다. 가둔다는 것은 그 속에서 나를 양생한다는 것이다. 양생은 노자적인 순리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하면서만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글쓰기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 (213쪽)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내 콧구멍 속의 어둠 밝히기

인간의 여린 심성은 쉽게 세상 탓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가는 ‘내 콧구멍 속의 어둠’이 가장 무섭다고 말한다. ‘손톱만한 콧구멍 속 어둠을 타고 들어가면 광맥처럼 끝도 없이 깊고 넓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길 아닌 길을 따라 사방팔방 나돌기도 하는,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하고 사악과 광기를 만들기도 하는 콧구멍 속의 어둠.’ 그 어둠을 깊이 읽은 유마거사는 해탈했고 추사 김정희는 명작을 남겼다. 콧구멍 속 어둠은 나를 흔들어대는 내면의 어두운 구석이다. 그 ‘어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분석하는 성찰이다. 작가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세계는 여기서 또 한 번 단련된다. 날마다 규칙적으로 정해진 만큼 글을 쓰고, 수시로 바다에 눈길을 주고, 걷고 산책 하고, 차를 마시며 마음속 어둠을 누그러뜨린다. 꾸준한 반복과 마음 다짐이다.

“차를 마시면서 생각의 가지치기를 한다. 어떤 생각은 잘라 없애고 어떤 생각은 남길까?” (190쪽)

“마음을 비우는 순간은 탐욕이 그친다〔止〕는 것이고, 텅 빈 마음이 흰색으로 되는 순간은 진리를 바라보는〔觀〕 상태이다. 마음을 하얀 색깔로 만들기 위하여 차를 마신다.” (200쪽)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고 다그치는 치열한 작가의 삶은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 죽음에 빠트리는 바다 마녀 사이렌.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정작 자신은 사이렌의 노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듣고 싶어 한다. 귀를 막지 않은 오디세우스는 몸을 돛대에 묶고는 바다를 지나 무사히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삶을 방해하는 수많은 위기와 유혹을 이겨낸, ‘귀는 열고 몸을 결박한’ 오디세우스의 현명한 지혜가 오늘 장흥 바닷가의 작은 토굴에 살아있다.

“해님!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쓰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시방 아침 산책길에 해님을 향해 가면서 기도하는 것은 먼저 저의 건강을 더 풋풋하게 하려는 것이고, 건강을 풋풋하게 하려는 것은 소설을 쓰는 데 몸을 활용하려는 것입니다. 해님, 당신의 기를 넉넉하게 받음으로 말미암아, 저로 하여금, 대범하되 교만하지 않고, 섬세하되 조잡스럽지 않고 검소하되 인색하지 않고, 소탈하고 질박하되 천박하지 않도록 길러주십시오. 해님, 저의 토굴 속에 저를 가두어 저로 하여금 글의 노예가 되게 하되 당신의 깨달음과 자유자재를 향유하게 하도록 늘 풀어놓아주시고, 바다와 들판을 건너와서 제 토굴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간지럼 먹여 진저리치며 웃게 하는 바람을 제 속에 담아주시고, 그 바람과 놀고 당신의 황금빛살과 노는 나뭇잎과 풀잎사귀와 모든 꽃들을 부러움 없는 마음으로 축복하며 살게 하시고, 그것들이 제 속에서도 넉넉하게 피어나게 하여주십시오. 해님, 전라도 장흥 안양의 바닷가 해산토굴 속에 묻혀 사는 제가 쓰는 이 글을 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는 모든 사람들도 내내, 당신의 다사로운 빛살과 다이아몬드 같은 기(氣)와 지혜를 가슴 가득 품고 살게 하시고, 그들의 하는 일에 행운만 깃들게 하십시오.” (137쪽)


한승원 작가가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보내는 편지

- 너희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녀라. 그 눈빛으로 너희만의 풍경을 창조하라.
- 촛불에게서 배워라. 제 몸을 태운 불로 어둠을 살라먹는 그의 정신과 의지!
- 이념이나 정의를 위해 글을 쓰지 말고 진리를 위해 써라.
- 우주의 사방팔방으로 뻗은 감각 안테나를 높여라.
- 변하기는 하되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을 찾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하고 다짐하며 즐겁게 놀이하듯 살아라.
- 무엇이 삶을 답답하게 하는가. 주범은 과거의 영광으로 인한 환상이고 탐욕이다.
- 시를 읽거나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그것은 삶을 긍정적 낙관적으로 사는 것이다
-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것도 나이고,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나이다. 나를 어둠 밖으로 끌어내려고 분투하라.

책속으로 위로

별빛만 흘러내리는 어두운 바다 저쪽으로 숙부의 볏짐 가득 실은 목선이 사라진 뒤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 광막하게 펼쳐진 바다의 거칠게 출렁거리는 물너울 위에는 신도 악마도 없었다. 오직 나와 들썽거리며 출렁거리는 마녀 같은 밤바다와 별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참담한 실존을 알아차렸다. 거기에서 내 목선의 노를 저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노를 젓기 힘들다고 잠시도 노 젓기를 멈추고 쉴 수도 없었다. 팔이 뻐드러지더라도 계속 저어야 했다. -27쪽

‘코는 두 개의 구멍 벙긋 열어, 새까만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끔찍해라, 그대 지하 동굴, 노회(老獪)의 털 부숭부숭한 미망(迷妄). 목탁 구멍 속의 어둠 같은.’ 콧구멍은 나의 내면에 들어 있는 어둠 한 자락을 늘 나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내 악마의 모습이기도 하고, 간사한 탐욕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 죽음의 어둠 끝자락이기도 하다. 그 어둠은 나를 겸허해지라고 촉구하고, 늘 깨끗해지라고 나를 다잡곤 한다. -90쪽

차를 마시다가 천장의 서까래들을 쳐다본다. 나는 늘 기다리며 산다. 딱히 찾아올 반가운 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기다린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질을 하지 않는다. 만일 전화질을 하면 그들이 나를 절대고독 이기지 못하고 엄살떠는 겁쟁이라고 흉허물 할 터이다. 소월도 그랬을 터이다. 기다리며 슬픈 고독을 시로 읊었을 터이다. 나는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고독 이기는 법을 배운다. 기다리며 사는 사람의 귀에는 빗소리가 임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차를 마시다가 발자국 소리 같은 빗소리를 듣는다. -114쪽

이 늙은이는 삼십 분쯤 책을 읽으면 글자가 기어간다. 시력이 낡아진 까닭이다. 그때는 더 읽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책상 앞을 떠나 침실로 가서 눈을 붙인다. 한 시간쯤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이 들고, 깨어나면 시력이 다시 회복된다. 새 맛, 새 시력으로 다시 책을 읽는다. 사력을 다해 책을 읽으려 하는 이 늙은이의 삶을 엿보고 있는 저승사자는 아마 비웃으리라. 그 사자가 비웃을지라도 지금 이렇게 남아 있는 시력으로 읽을 수 있는 한 책 읽기를 분투하듯 해야 한다. 이러한 책 읽기는 늘 내 운명에 또 하나의 변수를 만들어 나를 놀라게 하곤 했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121쪽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볼 때마다 나는 늘 추워지고 슬픔 속에 젖어든다. 추워짐과 슬퍼짐이란 것은 온실 속 같은 다사로움과 달뜸으로 인해 물러져 있는 의식을 냉철하게 하는 오싹함이다. 그 냉철로 인한 슬픔과 오싹함은 나의 흐물흐물해져 있는 삶을 성난 얼굴로 살펴보게 한다. -179쪽

여름철에는 내 토굴에 지네가 출몰하여 나를 물곤 한다. 지네도 나에게는 위대한 경전이고 하나의 해설서이다. 어느 날 저녁, “우리 모두는 하나하나의 섬이다. 그 섬에 불을 밝히고 자기의 길을 가야 한다, 신에게도 악마에게도 의지하지 말고”라는 석가모니의 마지막 가르침을 생각하며 토굴의 거실에 누워 있는데, 바람벽 틈으로 칫솔만 한 지네가 기어들어 오더니 사방을 휘둘러 살피고 중얼거렸다. “대관절 어떻게 생긴 벌레가 이렇게 큰 굴을 파놓고 사는 것이냐, 그놈을 잡으면 평생 주리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겠구나.” 지네는 내가 한 마리 벌레임을 일깨워준 경전인 것이다. -241쪽

석가모니 부처님의 맨발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출가자의 표상이지 않는가. 평생 대중 교화를 위해 온 세상의 험난한 길을 밟고 다닌 맨발. 발가락과 발톱은 돌부리에 차이고, 삐죽거리는 자갈과 가시로 인해 찔리고 긁히는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고, 또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기를 거듭한 까닭으로 곳곳에 암자주색 딱정이와 암회색의 옹이들이 박혀 있고, 짐승의 낡은 가죽을 덮어씌운 것처럼 두껍고 너덜너덜 보풀이 일어나 있다. -295쪽

사랑하는 아들딸아, 늙은 아비는 건강할 때면 보이지 않던 것이 앓을 때면 문득 보이곤 한다. 슬픈 눈으로 보기 때문일 터이다. 기쁜 눈은 가슴을 달뜨게 하지만, 슬픈 눈은 냉엄하게 응시하곤 한다. ‘유식학(唯識學)’에서, 우리의 눈빛이 별빛과 햇빛과 달빛을 만든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너희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니도록 하여라. 그 눈빛으로 너희들만의 풍경을 창조하도록 하여라. -295쪽

초음파 엑스레이 시티 촬영, 피검사, 오줌 검사 할 만큼 해본 의학박사는 내 모든 기관은 깨끗하고 건강하다고 아파야 할 이유가 없다고, 의사 말을 믿고 안심하고 잘 먹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점차 회복될 거라

고 확언한다. 그런데 으슬으슬 춥다가 열이 오르며 진땀이 나곤 하면서 맥이 풀리는 나의 이 증상은 무엇인가. 아파야 할 이유가 없다는데, 나의 투병은 병 없음의 병과의 싸움인가. 병 없음의 병이란 잡히지 않는 허공 아닌가, 그것은 허공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인가, 아 허공, 허공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더 아프고 진땀을 흘리게 되면 허공으로 환원되는 것일까. -330쪽

언론사 서평 위로
[한겨레] “딸 한강에게 당부한 슬픈 눈빛은, 세상 보는 냉엄한 눈” 2018-03-13 
[중앙일보] 한강 아버지 한승원씨 "딸이 나를 능가, 최고의 효도" 2018-03-13
[서울경제] 한승원 "내 딸 한강은 이미 저를 넘어섰죠" 2018-03-13
[뉴스1] 소설가 한승원 "딸 한강이 진작에 나를 뛰어넘었다" 2018-03-13
[뉴시스] 한승원 "딸은 진작 나를 뛰어넘어...한강 아버지 기분 좋아" 2018-03-13
[매일경제] "산문은 가장 솔직한 자기 언어" 2018-03-13
[연합뉴스] 작가 한승원 "딸 한강은 나를 뛰어넘어…가장 큰 효도" 2018-03-13
[경향신문] 소설가 한승원, 글 쓰는 한 살아 있을 게고 살아 있는 한 쓸 것 2018-03-13
[무등일보] "딸은 진작 나를 뛰어넘어… 한강 아버지 기분 좋아" 2018-03-13
[동아일보] “딸 작품 읽으며 공부 더 해야겠다 생각” 2018-03-13
[서울신문]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것은 미치는 것” 2018-03-13
[조선일보] "딸의 글 읽으면 '나 공부 더 해야겠다' 싶다" 2018-03-13
[문화일보] "나무는 겨우내 웅크리고 있는 게 아냐...도전적으로 꽃 준비, 그렇게 살아야" 2018-03-13
[한국일보]  “예술가가 미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어요” 2018-03-14
[세계일보] 이것은...길잃은 내 인생의 기록 2018-03-16
[불교신문] 부처님과 함께한 구도의 삶, 한 권에 책에 담다 2018-03-21
[CBS 김현정의 뉴스쇼] 한승원 작가 인터뷰 2018*-03-28
[노컷뉴스] 한승원 "한강 맨부커상, 설마 또 줄까 싶지만…그래도 기대" 2018-03-28
[광주일보] 팔순에 산문집 펴낸 한승원 “딸 한강이 ‘흰’에서 말한 진리 나와 같더라” 2018-03-29
[무등일보] 50년 창작과 삶의 원동력 오롯이 20118-04-05
[채널예스] 한승원 작가 인터뷰 2018-04-12

한승원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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