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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나를 부르는 소리1,700공안에서 가려뽑은 가장 철학적인 질문 41가지
화두, 나를 부르는 소리
저작·역자 박재현 정가 15000원
출간일 2018-03-05 분야 종교
책정보

304쪽|판형 152 × 225|책등 두께 16mm|ISBN 978-89-7479-388-3 (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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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혜능, 마조, 조주, 남전, 원오, 혜심, 벽장 등 위대한 선사들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1,700여 개의 공안(公案) 중에 뽑은 가장 철학적인 질문 41가지

저자소개 위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동양철학과 불교학 분야 여러 학회에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백남준아트센터, 국립극단 등에서 선(禪) 강좌를 진행했고, 대표적인 저술로는 ‘제12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만해, 그날들》(2015)이 있다. 그밖에 《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1998), 《깨달음의 신화》(2002),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2009) 등의 저술이 있다.

목차 위로

머리말

1장. 화두는 엉겁결에 들이닥친다

눈[雪]이 떨어지는 곳
목동
춤추는 노[棹]
배가 가는가 산이 가는가
이게 무슨 소리냐

2장. 춤추는 마음

떼죽음
들오리 떼
깃발과 바람
칠(七)과 일(一)
앞에 삼삼 뒤에 삼삼
외부 세력은 없다

3장. 두려움을 두려워하라

이중구속, 벗어날 수 있겠는가
용이 된 주장자
동그라미의 유혹
고양이를 베다
촌놈에게는 불성이 없다
내려놓아라

4장. 익숙한 세상과 결별하라

이음새 없는 탑
손가락을 자르며
마삼근
빈손
마음 심(心), 한 글자
아닌 건 버려라

5장. 부처를 넘어서라

이미 다 했다
내 마음 속의 달
인과의 그늘
아직도 그런 게 남아있는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벽돌을 갈듯 수행하는 이에게

6장. ‘나’를 부르는 소리

가섭찰간
병 속의 새
이건 비밀이야
병정동자
문지방
이뭐꼬

7장. 공감

넘어진 사람을 부축하는 법
깨진 접시
벽을 보는 사람
돼지를 물어보다
달마도 모른다
마른 나무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상세소개 위로

“현실과 통(通)하지 않는 화두(話頭)는 가짜다”
헛것의 시대, ‘화두’는 매 순간 던져야 할 ‘절박한 의심’

어지러운 세상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상황 속에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전문가들의 고준담론부터 온갖 멘토들의 충고가 독서 시장과 방송 매체에 넘쳐난다. 하지만 우울증 등 마음이 아픈 사람은 늘어만 가고 있다.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지만 삶은 더 힘들어지는 아이러니….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이고, 세상은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격변해가고 있지만, 개인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나’는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다.
마음의 중심이 곧지 않으면 바깥의 탁한 기운에 휩싸이고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법. 혼란한 세상, 올곧게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각의 중심축을 ‘나’로 가져와야 한다. 그 생각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일이 바로 ‘화두’다.
한국 선불교의 간화선 전문가이자 오랫동안 선(禪)으로 대중과 호흡해왔던 저자 박재현 교수(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는 삶속에서 선사들의 화두를 통해 어떻게 생각의 중심을 찾아갈지 풀이해왔다.
보는 만큼 안다고 했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시험하는 온갖 유혹을 쳐내고 담금질하고 다듬어야 이 혼침 같은 세상을 베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화두로 나를 찾기 위해서는 교감을 중요시 여긴다. 세상과 소통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의례화되고 정형화된 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절박하게 들이닥쳐야 화두가 될 수 있다. 살아있는 화두는 끊임없이 현실과 교감한다. 그렇지 못한 화두는 가짜일 수밖에 없다. 박재현 교수의 ‘화두에 관한 지론’이다.
지금 이 순간의 절박함이 내면의 직관과 만나면 화두의 세계가 펼쳐진다. 의심이 강할수록 화두의 몸집은 거대해진다. 정해진 답도 없고, 남의 답이 나의 답이 될 수도 없다. 오직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화두는 결코 선승들의 전유물이거나 고전에 적힌 글귀가 아니다. 지금 나와 맞닥뜨린 것만이 화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화두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과 문제의식에 두 눈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화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자 해답이기 때문이다.

혜능, 마조, 조주, 남전, 원오, 혜심, 벽장 등 위대한 선사들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1,700여 개의 공안(公案) 중에 뽑은 가장 철학적인 질문 41가지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한 스님이 말했다.
“깃발이 흔들리는구먼.”
다른 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일세.”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육조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닐세.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세.”
두 스님이 흠칫 놀랐다.

- 공안 ‘깃발과 바람’ 중에서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깨침을 얻도록 하기 위해 제시한 문제가 공안(公案), 즉 화두(話頭)이다. 제자는 화두를 풀기 위해 분석적인 사고와 절박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어느 순간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 답을 얻게 된다. 이러한 수행법을 ‘공안 수행’이라고 하는데, 선(禪)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수행법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공안’과 ‘화두’는 같은 말이기도 하고 다른 말이기도 하다. 전문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굳이 조금 자세히 들어가 구분하자면, 공안은 옛 선종(禪宗) 고승들이 화두를 선별하여 엮은 선문답(禪問答) 사례집 같은 것이고, 화두는 넓은 의미에서 선문답 전체를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마조, 조주, 남전, 원오, 혜심, 벽장 등 위대한 선사들의 대화를 다룬 공안집으로는 《벽암록(碧巖錄)》, 《무문관(無門關)》, 《종용록(從容錄)》 등이 유명한데, 공안의 종류가 1,700가지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공안이 선문답의 ‘문제 은행’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00 공안’이라는 용어는 선종 관련 역사서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등장하는 선사의 총수가 1,701명인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경덕전등록》은 공안집이 아닌 역사서이기 때문에 공안의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선종과 공안집은 중국에서 탄생했지만 1,700 공안을 모두 볼 수 있는 전집(全集)은 중국에서 편찬되지 않았다. 이 방대한 양의 공안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공안집은 1226년경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간행된 《선문염송(禪門拈頌)》이 유일하다. 《선문염송》은 공안집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 불교의 정수가 선종이 된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선문염송》을 바탕으로 41개의 화두를 가려뽑아 현시대에 맞게 세련된 현대어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여기에는 저자의 시사성 강한 발언과 철학적 질문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화두, 나를 부르는 소리》는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가미한 내용을 두었다. 이어서 ‘공안’을 직접 번역해 소개하고, 해설편을 따로 두었다.
공안집에 기록된 화두가 단지 옛 시대의 글귀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사구(死句)’에 불과할 것이다. 공안집의 화두가 현시대의 시사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죽은 언어가 아닌 새로운 화두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속에는 우리의 삶과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강한 울림이 있다. 그 울림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화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는 현대인에게
직관적이며 논리적인 생각법을 제공한다

흔히 선문답에서 주고받는 말은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한다. “주장자는 주장자가 아니다”, “대답하는 너는 네가 아니다”라는 식의 말들은 듣는 이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여기에 말려들면 안 된다. 동어반복과 모순의 논리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솎아져야 한다. 그런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남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야 화두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사고의 전환을 이루고 직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생각법을 《화두, 나를 부르는 소리》는 명확히 제시한다.


‘화두’라는 직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하지만 버려야 할) 법칙들

- 공안의 답은 없다. 남의 답이 결코 나의 답이 될 수 없다.
- 하찮아 보이는 사람이 별 뜻 없이 말하는 그 순간조차도 놓치지 않는다.
- 언제나 지금이 바로 내가 힘을 얻는 때이다.
-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도대체’라고 말할 때의 막막함과 절망감을 부둥켜안고 가라.
- 인내는 참는 게 아니다. 그만둘 줄 아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아 버려야 비로소 내려놓는 것이다.
- “버려야 얻을 수 있다.” 그 다짐에는 이미 얻겠다는 속셈이 들어있다.
- 잘라라, 가리키는 손가락을. 손가락에서 마음을 떼어놓아라.
- 공연히 뭔가 숨겨진 뜻이라도 있는 양 억지 해석하지 마라.
- 엄마와 부처를 조심하라. 고정관념은 비수 끝에 발린 꿀이다.
- “모른다”고 하라. 넘겨짚지 않아야 비로소 말에 놀아나지 않는다.
- 부처란 이미 다 알아버린 사람이 아니라, 거듭 묻는 사람이다.

책속으로 위로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면서, 먼저 나름의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가미한 내용을 두었다. 학술적이지 못하고 시사성이 너무 강하다는 인상이 없지 않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감이 없다면, 공안을 읽어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지금과 교감할 수 없는 공안은 ‘죽은 언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나는 여기에 언급된 시사성 있는 일들이 시사가 아니라 부디 역사로 읽히기를 바란다. _10쪽

진술되거나 설명된 공안은 엉겁결에 들이닥치는 공안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공들인 작품처럼 정교하게 잘 짜여 있지만, 바로 그래서 수행자의 의식을 계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_21쪽

그래도 선객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소” 하고 되묻는 데서 알 수 있다. 설사 방거사가 대답한다고 해도 그것이 선객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것은 방거사의 답일 뿐이다. 공안의 답은 정해진 것이 없고, 남의 답이 결코 자기의 답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니 이렇게 물은 것이다. _25쪽

진정한 수행자는 하찮아 보이는 시골아이가 별 뜻 없이 말하는 그 순간조차도 놓치지 않고 수행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하찮음이 엉겁결에 들이닥쳐 사람을 일깨워야 화두가 된다. _30쪽

말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언론의 얼굴을 하고 교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말만 쏟아내서는 안 듣는 사람이 있으니, 자막까지 동원한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 화면 하단에 글자가 등장했다. 뉴스는 물론이고 예능프로그램에도 친절하게 자막을 넣고 있다. 말과 글자는 중생이 전도(顚倒)되어 자기를 잃고 대상을 따르게끔 한다. 말 많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법이 있다. 누가 뭐라고 떠들든 곡진하게 스스로 물어보면 된다. “저게 무슨 소리냐 ….” _50쪽

간다고 얘기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온다고 얘기하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가. 가고 오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문제는 이런 발언이 감상적 탄식이나 과도한 인상 비평적 언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탄탄한 논리적 과정을 통해 도출된 통찰이다. 그 논리 전개과정을 압축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미 가 버린 것[已去, gone]’의 감(going)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버린 것에는 감이라는 현상이 이미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차 가게 될 것[來去, will go]’의 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장차 가게 될 것에는 아직 감이라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_64쪽

“(주역 괘의) 모양[象]은 (하늘의) 의미[意]를 드러낸것이고, (주역 괘에 붙은) 말[言]은 (주역 괘의) 모양을 밝힌 것이다. … 말은 모양을 밝히려는 것이니, 모양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야 한다. 또 모양은 의미를 있게 하려는 것이니, 의미를 얻었으면 모양은 잊어야 한다. … 따라서 모양을 잊어야 의미를 얻고, 말을 잊어야 모양을 얻는다.” 선의 말귀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마음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그것이 집착이다. 선문답은 마음이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둘 다 한꺼번에 잡고 있든가, 모두 놓아버리든가…. _78쪽

겨울 산의 나무처럼 그냥 담담하게 있으면 그게 전부인 것일까. 선 수행은 바로 여기서 시작이다. 묘하게도 바로 이때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치는 간단하다. 의지가 없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다. 대혜 선사가 일찍이 말했다. “날이 오래되고 달이 차면 문득 힘이 덜어지는 것을 깨닫게 되리니 그때가 바로 힘을 얻는 때이니라.” _85쪽

그저 속히 선(禪)을 이해하려고만 덤비면서 심지(心地)를 열어 안락함에 이르고자 하니 난감한 일이 아니겠는가. 기묘하고 신기한 온갖 말과 비밀스럽게 전해 받았다는 옛사람들의 공안(公案)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들은 모두 독(毒)이다. _94쪽

조주 선사다.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으로 말했다. 말함과 말하지 않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섰다. 짚신을 머리에 얹거나 손에 들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굳이 짚신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는 단지 두려움에 갇히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어차피 도는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안다고 하면 잘못된 깨달음이요, 모른다고 하면 그냥 멍청한 것이다. _117쪽

자기가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 놓아버려야 비로소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평생을 지탱해 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내려 놓아버려야 방하착이다. 그래야 생사를 면할 수 있다. 들고 있던 꽃 한 송이를 겨우 버린 것인지 마음을 놓아버렸는지, 보면 안다. 지금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내려 놓아버려야, 비로소 사람들은 책임졌다고 여길 것이다. _131쪽

말을 세우지 말라는 말은 스스로 부정하면서 겨우 세워지는 말이다. 선은 ‘말을 세우지 말라’고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 무너지는 말의 모습을 무수히 보여줌으로써, 말은 끝내 세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선문답은 스스로 쓰러져간 말들의 기록이다. _172쪽

부처라는 말은 꿀과 같고 물과 같지만, 그것은 비수 끝에 발린 꿀이고 비상 파는 집의 께름칙한 물이니, 모쪼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_177쪽

“무심(無心)이 곧 도(道)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막힘이니라….” _197쪽

박재현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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