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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부처, 마애불] 서울 삼천사마애불입상우리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부처님
사진. 최배문

현존하는 우리나라 마애불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것이다. 조각의 형태가 세련되지 않은 모습에 표현 기법도 거칠고 투박한 것이 많다. 고려시대 다수의 마애불들은 비례나 동세動勢가 실제적인 인체에서 벗어나 있으며, 거대하고 과장되어 있고 경직된 모습 등에서 괴기스럽고 신기한 힘을 가진 부처님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마애불들은 신력과 영험이 있어 여기에 기원을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설화와 함께 기복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최배문

북한산 삼천사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의 기단이나 계단, 바닥에 화강암 판석을 깔거나 화강암 조각을 많이 해두었다. 자연석이나 가공된 화강암으로 축대를 쌓고, 두부처럼 자른 사괴석으로 담장을 둘렀고, 석재로 계단과 조형물 등을 만들어 온통 화강암으로 둘러쌓았다. 뒤편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도 우람한 화강암들이 자리 잡고 있어 강한 기운을 준다. 

북한산 삼천사의 여러 전각과 석탑 그리고 조형물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 조성된 것이다. 예외적으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조성물이 있으니, 고려 초기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대웅보전 뒤쪽 계곡 왼편의 병풍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마애불은 반세기전만해도 깊은 산중의 은자隱者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마을 한가운데서 만나는 부처님같이 주변 공간이 변했다.

마애불은 전체가 약간 도드라진 낮은 부조(底浮彫)로 되어 있는데 얼굴 또한 얕은 볼륨으로 조각되었다. 광배光背를 비롯해 몸에 걸친 가사는 굵은 선의 주름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불상의 도드라진 선을 따라 가사 자락에 붉은 색을 칠하고 금색을 덧칠한 것이 지금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고풍스런 회화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사진. 최배문


불상의 머리 위에는 반달 같고, 큼지막한 상투 같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원만하며 이목구비가 정제되어 있다. 이마가 좁은데 눈썹은 초승달같이 선명하며 높지 않은 반듯한 코와 가늘고 웃음어린 실눈, 인중이 뚜렷하면서 미소 짓는 작은 입, 긴 8자 같은 굵은 선으로 된 귀는 어깨 가까이 내려와 있다.

훤칠한 키에 비해 목은 굵은 편이며 3줄로 새겨진 목주름(三道)이 뚜렷하다. 어깨는 넓지는 않지만, 양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의 두터운 가사로 감싸고 있다. 약간 경직되어 있지만 균형 잡힌 어깨, 자연스러운 손의 자세, 풍성한 법의 자락, 양옆으로 벌린 두 발이 어색하지만, 전체적으로 눈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양어깨에 걸친 가사의 옷자락은 풍성하지만 면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신체의 굴곡은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과 목의 얕은 볼륨을 제외하면 불신에서 볼륨의 표현은 억제되고 있다. 왼쪽 팔을 ㄴ자로 꾸부리면서 옷 주름을 조밀하고 깊게 음각 선으로 새긴 반면, 오른팔은 허벅지 가까이까지 내려 대범하고 성글게 옷 주름을 표현하여 두 팔의 자세와 옷 주름이 대비를 이룬다.

가사 속에 팔다리가 가려져 있지만, 사지의 비례 가운데 복부 가까이 오므린 왼쪽 아래팔(前腕)의 길이가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가슴 사이로 경사지게 넓은 띠를 이룬 승각기(僧脚崎, 내의)와 그 아래로 치마 같은 하의(裙衣)를 묶은 대칭의 나비형 띠 매듭은 둔탁하다. 내려진 오른손은 손가락을 곧게 펴 허벅지 중간에서 옷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왼손은 단전 부근에서 손가락을 접어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고 있다.

광배는 머리 주변의 두광頭光과 몸 주변의 신광身光을 구분하여 두광은 머리 주변을 두 줄의 융기선으로, 신광은 한 줄의 융기선으로 불신의 윤곽에 비례하여 연화좌대까지 길게 내려 표현하였다. 좌대는 연화대좌이며, 꽃잎이 위로 향한 앙련仰蓮을 굵은 선의 겹꽃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 부분은 낮은 볼륨으로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조각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친절하고 편안한 인상이다. 마애불의 자애로운 부처님은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들을 따뜻한 손으로 잡아 줄 듯하다. 마애불을 얼굴 중심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삼국시대 이래 오랜 전통이다. 삼천사마애불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따뜻한 마애불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광배나 가사의 주름, 대좌 등은 모두 양각의 굵은 선과 면으로 처리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선을 긋고 정성스럽게 새겼다. 인체 표현에서 어려운 부분 으로 손을 꼽을 수 있는데, 이곳 마애불은 양손 모두 장갑을 낀 것처럼 면으로 처리하여 둔탁한 느낌이 든다. 가사자락 아래 발 또한 발등과 발가락을 선과 면으로 형식적으로 표현하여 투박하다. 이러한 전체 모습을 보면 얼굴을 중심으로 하여 정성을 쏟은 반면, 아래로 내려오면서 특히 발은 대충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곳 마애불은 실제 크기가 2.6m로 한국인 보통의 키인 1.7m 전후에 비해 크다. 이 불상은 어디에선가 뵌 적이 있는 노스님같이 자애롭고 겸손하고 정성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 마애불의 불신佛身은 우리의 신체보다 엄청 크게 느껴지면서 마치 현실적인 인물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겨가실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곳 마애불은 10세기 태평이년명마애약사불(하남 선법사)과 같은 10세기의 저부조 조각의 전통을 잇고 있는 불상이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자세와 거친 표현을 띄고 있어 대중 친화적이다. 이러한 표현은 12세기 초 거창 가섭암지마애삼존불(1111년)의 목판 같은 표현양식을 닮아 있다.

삼천사마애여래입상은 양감이 없는 밋밋하고 평면적인 불신, 형식화된 옷 주름을 표현하였지만, 은은한 미소의 자애로운 상호와 마치 목판에 여래상을 새긴 듯한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에서 절제된 표현의 경판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낮은 부조로 양감을 살린 얼굴과 굵은 선으로 양각한 불신에 묻어난 붉은색과 금색이 고색창연한 목판 그림 같다. 

우리는 마애불 조성 이후 근세까지의 주변의 변화를 짐작해볼 수 있다. 마애불 조성 당시에는 비바람을 피하는 보호각을 지었고 그 아래 불단에 향로와 촛대를 설치하고 향화를 올렸을 것이다. 또한 불상의 좌우 바위 면에는 건축의 가구공架構孔이 깊게 패여 있는데 이를 토대로 목재를 끼워보면 목조의 작은 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의 불신의 높이가 2.6m이고 총 높이가 3m 그리고 양 가구공 폭이 약 2.5m에 이르는데 여기에 지면에 안정감 있게 기둥을 설치하였다면 직사각형의 2층 높이의 목조건축물이 서 있었을 것이다.

또한 마애불 앞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깊은 웅덩이를 이루었다면 참배자들이 마애불까지 접근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개울 건너편에서 마애불을 위로 올려다보는 시각에서 배례하였을 것이다. 계곡물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면 불단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겠지만, 물이 많은 여름에는 개울 건너편에서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사진. 최배문

지금은 마애불 앞의 계곡을 시멘트로 덮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을 깔아 공간이 확장되어 주변 전각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있다. 마애불의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오히려 종교적 경외감과 신비로움은 사라져버린 듯하다. 과거에는 개울 건너(彼岸) 부처님께 반대쪽(此岸)개울가에서 기원을 올리는 종교적 신비감까지 드는 기도 공간이 지금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광장 속의 조형물로 변해 버렸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일정한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듯, 기도는 어딘가 가려지고 차단된 공간 속에서 고요와 침묵 가운데 더 잘 행해진다. 마애불은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습은 변함없는데 주변 공간은 상전벽해처럼 변화되었다. 지금은 도심의 가로등 같은 환한 불빛 아래에 건물 외벽에 모셔진 거리의 부처님과 같은 느낌으로 기도의 내밀함이나 신비로움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사진. 최배문


높은 산과 유장한 강물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경외한 느낌이 들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거나 자동차로 그 옆을 지나갈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광장 같은 넓은 공간에 서 계시는 부처님은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거리의 조형물로만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마애불은 천년의 시간동안 그 자리에 서서 평화로운 미소로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계셨고, 미래의 긴 시간도 우리를 구원하려 자비로움과 그 실천의 손가짐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자비로운 말씀을 하시는 듯하다.  


                                  

이성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4회 개인전과 270여 회의 초대, 기획, 단체전에 출품하는 등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국 마애불의 조형성』 등 다수의 책을 썼고,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서 후학 양성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성도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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