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는 명쾌해서 이치를 잘 분별합니다. 예리해서 무엇이든 다 뚫습니다. 힘이 세서 그릇되고 사악한 것을 가차 없이 쳐부숩니다. 그런 지혜를 갖춘 사람으로 으뜸가는 이가 사리불 존자입니다. 부처님은 그를 가리켜 지혜제일이요, 법의 장수라고까지 칭송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승경전에서는 사리불의 지혜를 곱게 봐주지 않습니다. 편협하고 옹색하고 불완전한 지혜로 깎아내립니다. 저 유명한 『유마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서 사리불의 지혜는 소승적인 지혜로 규정되고, 제발 그 품을 넓히라며 유마 거사에게서 사정없이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초기경전을 음미해보면 이건 좀 억울하다 싶습니다. 애석하게도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과의 인연을 마칩니다. 사리불의 사미는 스승의 다비를 마친 뒤 그 유해를 발우에 담아 부처님께 보여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덧없기 짝이 없는지라 부처님은 담담하게 사리불의 발우를 들여다봅니다. 자신의 발우에 담긴 자신의 사리라…. 그 담담한 부처님의 눈길 속에 허전함이 슬며시 배어 나옵니다. 훗날 ‘세상이 텅 빈 것만 같다.’는 속마음도 부처님은 비치십니다. 그만큼 사리불 존자를 향한 부처님의 신망은 두터웠습니다.
그의 지혜가 소승적이었다면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리 없습니다. 초기경전을 펼치면 사리불 존자의 자취를 참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면 그 지혜에 압도당하기 이전에 마음이 먼저 따뜻해집니다. 그 예리하고 명석한 지혜는 분명 인간의 온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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