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윤회를 보는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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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윤회를 보는 선禪
  • 박재현
  • 승인 2018.01.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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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은영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받치는 것도 받치지 않는 것도 둘 다 멋쩍어 보일 정도로 어중간하게 비가 내렸다. 실험실 열쇠를 집에 두고 와서 사무실에서 키를 받아야 한다면서, 후배는 어디론가 후다닥 뛰어갔다. 텅 빈 승용차의 윈도우 브러쉬만 저 혼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휴일의 키스트KIST는 바로 옆의 홍릉수목원보다 더 적막해 보였다. ‘키스트’는 줄여서 편하게 부르는 명칭이다. 정확한 우리말 기관명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다.

이름 앞에 ‘한국’이 들어가는 기관들이 대개 그렇듯이, 키스트에 들어가려면 정문 경비실에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군부대 초소 병사같이 생긴 경비원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면서 신분증을 요구한다. 신분증이 출입증과 맞교환되는 동안, 경비원은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고 무전기처럼 생긴 기계도 들었다 놨다 한다. 기계에서는 새소리 같기도 하고 곤충 소리 같기도 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난다. 그런 소리를 경비원은 용케도 알아듣는다. 내 후배는 그런 삼엄한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무려 과학자다.

점심을 함께 먹다 말고, 후배는 얼마 전 전생에 관해 말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점쟁이 비슷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예약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밀려있어서 두어 달을 기다렸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복채도 꽤 준 눈치였다.

“아 글쎄 좀 들어봐요. 그 사람이 제 전생에 관해 얘기해 주는데요, 너무 잘 맞추고, 듣고 나니까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야, 전생 같은 소리 좀 그만해라, 전생은 무슨….”

진지하게 전생 얘기를 하던 후배가, 내 시큰둥한 반응이 못마땅했던지 단호한 어조로 되물었다. 

“선배는 불교학자잖아요. 그런데 윤회를 안 믿어요?”

동그란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후배는 뚫어지게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은 너무 절절하고 진지해서, ‘나 지금 심각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고, 그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후배가 말을 가로챘다.

“그럼 뭔데요?”

퉁퉁 불은 스파게티 가닥처럼 머릿속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았다.

“야, 생각을 좀 해 봐라. 전생이라는 게 성립되려면, 현생과 전생 사이에 손톱만 한 연속성이라도 있어야 하겠지. 아무것도 없다면 설사 전생이 있다고 해도, 그게 내 전생인지 네 전생인지 우째 알 수 있겠냐. 그리고…, 에이 관두자, 그냥 그런 게 있다. 야, 먹던 거 다 불어터지겠다. 이거나 얼른 먹고 가자….”

후배는 과학자고 나는 명색이 철학자다. 부끄럽지만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대충 그렇게 끝났다. 윤회,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다. 윤회는 돌고 돈다는 뜻이다. 여기서, 뭐가? 라는 질문은 당연히 따라 나올 수밖에 없다. 도대체 뭐가 돌고 도는가 하는 궁금증은 수천 년도 더 된 궁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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