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불광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kakaostory

상단여백
HOME 월간불광 연재
[불교철학 강의실 357호] 미국 대학 강의실 풍경한국 출신 교수의 미국 대학 불교철학 강의실 풍경

●    미국 본토에서 가장 춥다는 미네소타는 원래 키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머리가 노란 스칸디나비아계 이민자들이 개척했다. 북유럽식 문화와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어서 소득과 치안, 교육 그리고 환경 등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살기 좋은 주라고 평가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네소타는 아직도 “대학에 와서야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홍창성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기독교 전통이 강한 미국 바이블 벨트Bible Belt 북부에 속해 있다. 

●    십여 년 전 처음 내가 이곳 미네소타주립대학에서 불교철학 강의를 새로 개설했을 때는 한 수업에 참가한 35명 가운데 백인이 아닌 사람은 교수인 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기 시작해 이번 학기에는 네팔, 일본, 몽골,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나라의 출신들이 1/3가량 되었다. 외국 학생 가운데는 네팔 학생들이 가장 많은데, 이들은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지 출신이라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실제 네팔 인구의 2/3가량은 힌두교도이고, 이들은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키가 상대적으로 크고 눈이 둥글며 코가 큰 아리안 계통 사람들이다. 네팔인의 1/3정도만이 불교도인데, 이들은 아리안보다는 오히려 몽골인종으로 보이며 키가 좀 작고 생김새도 많이 다르다. 『불타 석가모니』의 저자 와타나베 쇼코의 주장처럼 석가모니 부처는 아리안이 아니라 히말라야 지역의 몽골로이드계 소수민족 출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네팔 학생들이 내 강의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첫해에 내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여러 해 동안 강의한 대로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태어난 왕자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강의가 끝난 후 네팔 학생 여럿이 내게 다가와 “부처가 네팔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인도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면서 강력히 항의했다. 나는 그들의 조상 가운데 한 명인 석가모니가 오늘날 네팔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네팔이라는 나라가 없었고 그 지역을 포함한 많은 지역이 두루뭉술하게 ‘인도’라고 불렸기 때문에 그렇게 편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네팔이 석가모니의 탄생지라는 점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네팔 학생들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역사에 대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곧 석가모니가 수행하고 성도하며 또 전법활동을 편 지역의 대부분이 실은 오늘날의 인도에 해당한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였다. 2천5백 년 전에 살았던 석가모니와는 그 지혜와 자비심에 있어 유사점이 별로 안 보이는 이들에게도 이런 국가적 자부심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모양이다. 

●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 불교가 남전불교에 속하는지 북전불교에 속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내가 여러 보살의 이름을 나열해 주었더니 자기네도 최소한 문수사리보살은 모신다고 하기에, “그럼 자네들 불교도 북전 대승불교의 전통과 가깝겠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어쨌든 이 일 이후 나는 석가모니가 오늘날의 네팔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출생했고, 그 당시 이 지역의 사회와 문화 및 종교는 인도의 다른 지역과의 활발할 교류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의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네팔 학생들의 귀여운(?) 항의를 받을 일이 없었다.

●    첫날 수업은 학생들이 교재를 읽지 않은 채로 교실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에 나는 불교 전반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강의를 진행하곤 한다. 그리고 내 강좌가 철학으로써 불교를 가르치는 불교철학 강의이다 보니 역시 철학 강의답게 ‘불교(Buddhism)’라는 말을 개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불교를 영어로 ‘Buddhism’이라고 하면 자본주의(capitalism)나 공산주의(communism)와 같이 ‘-ism(주의 主義)’이라는 부분을 가지게 되어, 불교도들이 마치 자본주의자나 공산주의자와 같이 오직 자기들만이 옳은 믿음과 가치의 체계를 가졌고, 또 오직 불교를 통해서만 구원이나 해탈이 가능하며 그 나머지 모든 종교는 다 틀렸고, 그쪽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실은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회교를 믿는 이들은 수천 년 동안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적敵”이라고 하고, “지옥 불 지필 땔감들이 될 것이다.”는 등 험악한 소리들을 많이 해 왔다. 그 때문에 영어권 사람들에게 불교가 어떤 ‘주의(主義 Ism)’로 소개되어도 그들은 아무 저항감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    그러나 대다수 우리 불자들이 이해하는 불교는 그런 험한 가르침의 체계가 아니다. ‘Buddhism’이라는 영어 어휘의 원래 불교권 용어는 불교佛敎 또는 불도佛道였고, 이 말들은 ‘부처의 가르침의 체계’ 또는 ‘부처의 길’이라는 의미였지, 불교만이 유일한 진리요 또 구원이라는 서양 종교식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도 불교가 다른 종교나 철학과 갈등을 일으켜 철학적 또는 종교적으로 그들을 선제공격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시아 종교나 철학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불교도 제설혼합주의(syncretism)의 관점에서 힌두교, 자이나교, 도교, 유교와 같은 여러 다른 가르침의 체계를 존중하고 또 서로 배울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상호 교류해 왔다. 

●    서양 학생들은 이렇게 멋진 열린 태도와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간혹 제설혼합주의에 대해 에세이를 제출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예외 없이 제설혼합주의가 우리가 따라야 할 훌륭한 이상理想이지만, 서양의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회교 사이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학생들은 “20세기 후반 한국의 성철 스님께서 ‘내가 스님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교가 진리를 궁구하는 최고의 길이기 때문이다. 만약 불교보다 더 나은 가르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불교를 떠나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을 때 정말 놀라며 감명받는 모습들을 보인다. 나는 내 미국 학생들에게 불교를 이렇게 열린 가르침의 체계라고 소개한다.
세계의 다른 주요 종교들과는 달리 불교가 얼마나 열린 종교이고 철학인가는 대장경(大藏經 tripitaka)의 열린 체계(open canon system)가 잘 보여준다. 불교의 대장경은 결코 그 오랜 옛날에 절대적으로 완성되어 전혀 변화시키거나, 삭제 또는 추가할 수 없어 어찌하지 못하는 닫힌 성전의 체계(closed canon system)가 아니다. 기독교와 회교는 그들이 받아들인 완성된 성전이 있어서 단 한 자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새로운 생각이 더해질 수도 없고 기존의 내용을 뺄 수도 없다. 시대와 종파에 따라 그들 성전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이 두 종교는 기본적으로 그들 성전의 내용에 대한 수정, 삭제, 추가를 허용하지 않는다. 유대교는 그래도 좀 열려 있는 체계다. 그들의 성전 『토라』의 내용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또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랍비들이 내린 각각 다른 해석과 새로운 주장이 『토라』와 함께 읽히고 토론의 대상이 된다. 

●    그런데 불교에서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역사상 어떻게 여러 문헌이 수집 정리 편찬되었고 또 새로운 내용이 계속 추가되어 왔는가를 돌아보면, 불교가 세계의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열려 있고 또 계속 진화 및 발전하는 가르침의 체계라는 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역사상 최강의 군대를 가졌던 몽골과의 전쟁 중에도 당시까지의 세계 대장경 역사상 최고의 대장경을 만들었다.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 후 700여 년이 지난 20세기 초 일본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더 넓은 지역에서 많은 문헌을 모아 정리하고 또 그 700여 년 동안 새로이 저술된 문헌들을 추가하여 『신수대장경』을 완성했다. 미래의 언제 어디에서인가 대장경은 또 새로이 편찬될 것이다. 지금처럼 영어권 나라들에 계속 불교가 전해지고, 또 문물이 발달한 선진국인 이들 나라에서 새로운 불교 운동이 일어난다면, 다음번 대장경은 영어로 편찬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내 학생들에게 “자네들 가운데 누군가가 불교에 대한 훌륭한 저술을 남긴다면, 그것이 미래 대장경의 일부로 수록되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간직되고 읽힐 것이다.”라고 하면서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 보라고 격려한다. 그러면 언제나 몇몇 학생은 그 크고 맑은 눈을 빛내며 진지하게 듣곤 한다. 지난 가을 학기 내 불교철학 강의를 수강한 33명의 학생 가운데 세 명이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었다. 

다음 호에서는 깨달음과 열반 그리고 참선에 대한 내 미국 학생들의 반응을 소개해 보겠다.      

          

홍창성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브라운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철학박사. 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모어헤드 철학과 교수.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그리고 불교철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 및 한글로 발표해 왔고, 유선경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불광출판사)를 영역하기도 했다. 현재 ‘Buddhism for Thinkers(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을 집필 중이고, 불교의 연기緣起의 개념으로 서양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홍창성  bulkwang_c@hanmail.net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