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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불경과 경영은 진리로 통섭불경은 기업의 무명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

|    불경의 진리를 행하고 증명하는 것이 지혜와 자비 

어지러운 세상에 중생은 고통에 허덕인다. 진리와 멀어져 삼독에 홀려 살기 때문이다. 서점, 도서관, 인터넷에 가득 찬 책들은 생각의 공허와 행동의 혼돈을 부추길 뿐. 종교 성전들도 저마다 진리를 주장하면서 아집과 고집을 키우는 듯하다. 진리가 내 마음에 그리고 우주에 가득 차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부처님이 내보이신 진리가 불경에 들어있는데 보는 눈이 없고 찾는 정성이 부족하다. 

부처님은 깨달은 직후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망설이셨다. 언어가 진리로 이끌기보다 어리석음을 가중시킨다고 우려하셨다. 하지만 큰 자비심을 일으켜 열반의 순간까지 언어로 진리를 표현·전달하셨다. 근기 높은 제자들이 부처님 육성을 듣고서 깨달음에 이르렀다. 사부대중이 부처님 진리를 수용해 교단이 만들어졌고, 배운 바를 전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언어는 기억에 남았다가 점차 사라진다. 문자·책의 그릇에 담아야 전달할 수 있고 오래 보관된다. 부처님 제자들이 기억을 되살려 기록하고 경전을 결집한 이유이다. 후학들은 경전을 수집·번역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때로는 목숨을 걸었다. 진리에 다가가고 널리 오래 전하겠다는 염원이 절절했던 시절이었다. 그 절정은 해인사 대장경, 외적 침입에 맞서 16년간 8만 경판에 5,200만 자를 새겼다. 한 글자씩 합장해가며 새겼다 하니 요즘의 ‘엄지 까딱’과는 정성의 차원이 다르다. 

불경은 부처님 깨달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화자·청자·필자를 거치며 소리와 문자의 불완전성이 모이고 증폭된다. 기억, 전달,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끊어지고 맥락이 흐트러진다. 암송, 필사, 목판, 활자, 컴퓨터로 그릇은 발전했지만 정작 진리의 체와는 멀어졌다. 그릇에 정신 빼앗기고 정진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불법의 종말시대. 부처님이 계신다면, “내 이럴 줄 알았다.” 하시리라.   

예불의식 때 불법에 귀의해 자타가 함께 성불하자고 합송한다. 사홍서원 하면서는 무량법문을 배우겠다고 기원한다. 불법을 믿고 배우겠다며 계속 다짐하지만 성불의 길은 멀기만 하다. 신해信解에 치우쳐 행증行證에 소홀한 탓이 크다.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이해는 구심력, 실천과 증명은 원심력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역동적 평형을 이루어야 법신과 한 몸이 된다. 그래야 법신이 불경을 통해 자신을 살리는 지혜, 다른 사람을 구하는 자비로 드러난다. 

탐욕의 화신인 기업이 지나치게 융성하고 있다. 탐욕을 추구해야 행복해진다고 여겨서다. 탐욕이 고통의 원인인 줄 모르니 정말 어리석다. 탐욕은 열심히 추구해도 외면해도 둘 다 고통이다. 탐욕으로 얻는 것이 넘쳐도 모자라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길이라서 나아가고 물러서고 멈추어봐야 소용이 없다. 불경이 제시하는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고통의 쳇바퀴와 함정에서 벗어난다.

 

|    불경은 기업의 무명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

경영은 경지영지經之營之를 줄인 말, 기준을 세워 실행한다는 뜻이다. 기업은 처음부터 이익·조직을 전제하는 등 기준이 잘못돼 있다. 세속 기준에 따라 운영하면서 자각과 궤도 수정에 관심이 없다. 불경과 경영의 경經은 같은 글자, 부처님의 진리와 운영의 기준이다. 불경의 진리가 기업운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업가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 구성원은 미래 부처의 가능성으로 거듭날 수 있다. 

불법은 원래 쉽고 명확하며 고통 치유에 효험이 있다. 경전이 방대·난해하고 문자·표현이 구식이어서 접근 자체가 어렵다. 경전의 숲에서 헤매느라 피안으로 가는 뗏목을 띄우지 못한다. 경·율·론 삼장을 참구해서 경영의 이론, 행동지침, 문제해결에 사용해야겠다. 선禪으로 문자의 격格을 뛰어넘고 깨뜨려 기업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경經으로 경영 이론을 다시 세워야 한다. 경영 이론이 진리여야 기업 관계자가 정견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한다. 통념에 휩쓸리지 말고 불경의 관점으로 고통 원인과 치유의 길을 찾아보자. 이익, 조직, 숫자는 헛된 상相이며 마음의 연기 작용이 근본이다. 금강의 초점을 경영에 맞추면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경영을 화엄으로 펼치면 사업의 연기 관계가 드러난다. 

율律로 기업 구성원의 행동을 제어해야 한다. 수행이 본업인 출가자는 계율 안에 자유로워서 소수의 규정으로 충분하다. 기업 구성원은 자기 이익을 위해 모이므로 강제로 규율하기가 어렵다. 계율의 취지를 살려서 큰 틀을 제시하되 과도한 위반을 막아야 한다. 불살생을 고객 만족과 환경 보호에 반영하고 불법·부도덕을 제재하는 식이다. 자자와 포살로 개인 반성과 집단 학습을 촉구해도 좋겠다. 탁발을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순례에 응용하면 발상의 돌파구가 열린다. 

론論으로 구체적 이슈를 해결하고 특정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불법, 비유와 예화는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극단의 변견, 어설픈 타협을 경계하면서 이슈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 모호하거나 모순된 개념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경영 개념들의 공통분모를 찾고 뼈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올바른 구체적 개념은 마음과 행동을 일으켜서 성과로 연결된다. 애플 디자인의 ‘단순함’은 불교의 공空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선禪의 할과 방으로 경영에 혁명을 일으키자. 경영은 세속법이어서 문자·숫자·기법의 늪에서 헤매기 쉽다. 이론에 주눅 들거나 사례를 모방하지 말고 구성원들이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할로 생각에 충격을 주고 방으로 관행을 깨트려야 한다. 할과 방을 체질화하면 초일류, 벼랑 끝에서 주춤거리면 삼류이다. 기업은 진검승부의 현장, 특히 기업가에게 활구와 성성惺惺이 요구된다. 탁월한 기업가의 어록과 행동이 선사의 그것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불경은 진리를 담는 그릇, 문자는 식재료, 고통은 음식을 달구는 불기운이다. 지금 그릇이 깨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창고에 쌓여있다. 식재료는 많은데 레시피가 구태의연하고 요리가 서툴러 그 한 맛을 내지 못한다. 어리석고 게을러서 맛없고 해로운 음식을 먹으며 그날그날을 때운다. 스스로 깨달아 근본 진리를 한 상 차려 먹는 즐거움을 누려보자. 불경과 경영이 만나면 불교와 기업을 넘어 모든 중생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    불교는 진리로 이끌고 기업은 현장 적용으로 화답

경영이 불경의 진리를 따르면 고통 치유의 성과가 절로 나타난다. 성과가 나는 경영이어서 환희심도 절로 따라온다. 왜 불경과 경영이 진리로 통섭하지 못하는 걸까. 기업은 아예 중생을 표방하니까 어리석지만 일관성이 있다. 불교는 진리임을 내세우면서 실천하지 않으니 표리부동이다. 기업의 은혜를 진리로 갚지 않으니 방일이다. 기업 고통을 방치한 데 대해 대분심大憤心을 내야 한다.

부처님은 위대한 창업자, 초기 승단은 모범적 조직이었다. 교단 운영이 법다워서 수행에 매진했으며 재가자는 신심을 냈다. 지금 불경의 진리를 구현하지 못해 원형이 훼손되고 세속과의 소통·조화가 깨졌다. 진리는 수승한데 경영이 서툴러서 불교가 정체되었다. 불교부터 불경을 교단 운영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경영능력이 커져 수행 호위, 신도 증가, 재정 확보가 원활해진다. 기업이 불교 교단의 운영 원리와 사례를 배우려고 해서 전법과 보시가 따라온다.

기업 맞춤형의 새로운 불경을 찬술하자. 불법에 입각해서 세부 대안들을 내놓는 일이다. 테마는 ‘선업 쌓는 이익창출’, ‘일자리의 중도해법’, ‘화쟁과 갈등관리’ 등. 무차선회無遮禪會 방식으로 이슈 도출, 관점 정리, 방안 제시를 하면 어떨까. 이해당사자, 경영 전문가, 불교 수행자가 함께 참구하고 논의하는 마당을 열어야 한다. 불교는 진리를 추구하니 수행, 기업은 그것을 실천하니 보살행이다. 불경은 응용 사례가 풍부해지고 경영은 틀이 다시 잡힐 것이다.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경영으로 차원이 다른 제품·서비스가 등장할 전망이다. 기준이 잘못되어 삼독을 지능적으로 자동·연결 처리할 것으로 우려된다. 바로 경經의 문제이다. 선도 분야에서 이미 통제 실패, 인간 소외 등 부작용이 관찰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지극히 불교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답이다. 개인의 자율·자각을 우선하고 시스템을 최대한 분산시켜야 한다. 

기업은 상에 집착하니 성공사례로 보여주어야 한다. 실행해 보고서 효과가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나선다. 불경과 경영의 진리 통섭을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겠다. 그 영험은 즉시 나타나 영원히 퍼져나갈 것이다. 출가자는 신분을 감추고 기업의 생산·판매에 동사하는 만행에 나서자. 재가자는 템플스테이에 참가해 경영 이슈를 풀어서 나오자. 계절은 겨울, 경전의 숲. 바람이 차고 하늘은 맑고 나무 골격은 뚜렷하다. 현실 고통, 광명 세계, 우뚝 선 불법에 대한 은유이다. 추위를 양약 삼아 불법의 빛을 비추어 경영의 새봄을 준비하자.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 

 

이언오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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