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불경과 경영은 진리로 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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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으로 읽는 현대경영]불경과 경영은 진리로 통섭
  • 이언오
  • 승인 2018.01.29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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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은 기업의 무명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

|    불경의 진리를 행하고 증명하는 것이 지혜와 자비 

어지러운 세상에 중생은 고통에 허덕인다. 진리와 멀어져 삼독에 홀려 살기 때문이다. 서점, 도서관, 인터넷에 가득 찬 책들은 생각의 공허와 행동의 혼돈을 부추길 뿐. 종교 성전들도 저마다 진리를 주장하면서 아집과 고집을 키우는 듯하다. 진리가 내 마음에 그리고 우주에 가득 차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부처님이 내보이신 진리가 불경에 들어있는데 보는 눈이 없고 찾는 정성이 부족하다. 

부처님은 깨달은 직후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망설이셨다. 언어가 진리로 이끌기보다 어리석음을 가중시킨다고 우려하셨다. 하지만 큰 자비심을 일으켜 열반의 순간까지 언어로 진리를 표현·전달하셨다. 근기 높은 제자들이 부처님 육성을 듣고서 깨달음에 이르렀다. 사부대중이 부처님 진리를 수용해 교단이 만들어졌고, 배운 바를 전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언어는 기억에 남았다가 점차 사라진다. 문자·책의 그릇에 담아야 전달할 수 있고 오래 보관된다. 부처님 제자들이 기억을 되살려 기록하고 경전을 결집한 이유이다. 후학들은 경전을 수집·번역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때로는 목숨을 걸었다. 진리에 다가가고 널리 오래 전하겠다는 염원이 절절했던 시절이었다. 그 절정은 해인사 대장경, 외적 침입에 맞서 16년간 8만 경판에 5,200만 자를 새겼다. 한 글자씩 합장해가며 새겼다 하니 요즘의 ‘엄지 까딱’과는 정성의 차원이 다르다. 

불경은 부처님 깨달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화자·청자·필자를 거치며 소리와 문자의 불완전성이 모이고 증폭된다. 기억, 전달,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끊어지고 맥락이 흐트러진다. 암송, 필사, 목판, 활자, 컴퓨터로 그릇은 발전했지만 정작 진리의 체와는 멀어졌다. 그릇에 정신 빼앗기고 정진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불법의 종말시대. 부처님이 계신다면, “내 이럴 줄 알았다.” 하시리라.   

예불의식 때 불법에 귀의해 자타가 함께 성불하자고 합송한다. 사홍서원 하면서는 무량법문을 배우겠다고 기원한다. 불법을 믿고 배우겠다며 계속 다짐하지만 성불의 길은 멀기만 하다. 신해信解에 치우쳐 행증行證에 소홀한 탓이 크다.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이해는 구심력, 실천과 증명은 원심력이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역동적 평형을 이루어야 법신과 한 몸이 된다. 그래야 법신이 불경을 통해 자신을 살리는 지혜, 다른 사람을 구하는 자비로 드러난다. 

탐욕의 화신인 기업이 지나치게 융성하고 있다. 탐욕을 추구해야 행복해진다고 여겨서다. 탐욕이 고통의 원인인 줄 모르니 정말 어리석다. 탐욕은 열심히 추구해도 외면해도 둘 다 고통이다. 탐욕으로 얻는 것이 넘쳐도 모자라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길이라서 나아가고 물러서고 멈추어봐야 소용이 없다. 불경이 제시하는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고통의 쳇바퀴와 함정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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