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책이야기 수행과 신행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달마와 혜능 그리고 선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저작·역자 혜담 스님 정가 20,000원
출간일 2018-01-09 분야 종교
책정보

296쪽|판형 157 × 223 (양장)|책등 두께 24mm|ISBN 978-89-7479-382-1 (03220)

구매사이트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알라딘
책소개 위로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선현들이 제시한 수많은 길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가?
혜담 스님의 50여 년 오롯한 수행이 답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 선현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바람직한 길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 것인가?’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고민 속에서 이십 대 청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上求菩提 下化衆生]

이 한 줄의 가르침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한 지 50여 년!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는 오직 수행일념으로 점철되어온 혜담(慧潭) 스님의 소박하면서도 뜨거운 수행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소개 위로

혜담 스님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 졸업, 칠불선원과 해인사 선원 등에서 참선 수행, 해군 군종법사 대위로 전역했다. 불광사 불광법회 지도법사를 지낸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붓쿄(佛敎)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조계종 총무원 홍보실장, 소청심사위원, 호법부장, 재심호계위원을 역임했다. 검단산 각화사 주지, 군법사후원회 초대회장, 선우도량 공동대표, 불교신문 논설위원, 경향신문 정동칼럼 필진을 지냈으며, 현재 불광사 선덕(先德) 소임을 맡고 있다.
역서 및 저서로는 『대품마하반야바라밀경』(상·하), 『반야불교 신행론』, 『신 반야심경 강의』, 『방거사 어록 강설』,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 등이 있다.

목차 위로

이 책을 쓰면서

제1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다[上求菩提]

제1장 깨달음[見性]이란 무엇인가?

1 깨달음에 관한 탐구의 시작
2 깨달음에의 접근
3 깨달음에 관한 착각인 처음의 상사각(相似覺)
4 깨달음에 관한 착각인 두 번째 상사각(相似覺)
5 깨달음에 관한 착각인 세 번째 상사각(相似覺)
6 참된 깨달음의 탐구

제2장 경전과 조사어록에 나타난 깨달음

1 덕소 국사의 깨달음
2 아라한의 깨달음
3 『무아상경』의 법문
4 집(集)의 법은 모두 멸(滅)의 법이다
5 아난 존자의 깨침
6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祖師西來意]


제2부 달마의 심(心)종교

제1장 달마 조사에 관한 기록

1 달마 조사와의 만남 - 『벽암록』 <제1칙>의 달마 조사

2 달마 조사의 전기(傳記)
  ∙『이입사행론장권자(二入四行論長卷子)』
  ∙두 개의 입장, 이법과 행위의 발견

3 본래로 돌아가기 위한 네 가지 실천
  ∙첫째는 전생의 원한에 보답하는 행위[報怨行]
  ∙둘째는 현생의 인연에 맡기는 행위[隨緣行]
  ∙셋째는 과보를 구하지 않는 행위[無所求行]
  ∙넷째는 법의 진실에 부합하는 행위[稱法行]

4 안심(安心)이 벽관이다 - 안심문답(安心問答)
  ∙수행과 안심
  ∙마음을 가지고 오라
  ∙그대의 죄업을 가져오라
  ∙인간의 무죄선언(無罪宣言)
  ∙본래의 자기를 세우는 것이 최고의 참회다

5 불교(佛敎)와 불법(佛法)
  ∙정법안장(正法眼藏) - 안목 있는 말
  ∙사수(師授) 또는 면수(面授)
  ∙불법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6 벽관과 오정심관(五停心觀)·사념처관(四念處觀)의 차이점
  ∙초기불교의 수행법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인연관(因緣觀)
  ∙계분별관(界分別觀)
  ∙수식관(數息觀)

7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몸은 깨끗하지 못한 것임을 관하는 것[觀身不淨]
  ∙감각적인 것은 모두 괴로움을 가져온다고 관하는 것[觀受是苦]
  ∙마음은 덧없는 것임을 관하는 것[觀心無常]
  ∙일체 법은 본래 실체가 없음을 관하는 것[觀法無我]

8 달마교단의 수행법
  ∙중도(中道)에 바탕을 둔 수행법
  ∙중도(中道) - 모두를 초월한 자리
  ∙부정(不淨)의 관념을 제거한 수행법
  ∙새로운 신행운동
  ∙부처님이 깨달은 궁극적인 진실
  ∙우리 모두는 불성생명(佛性生命)


제3부 혜능 조사(慧能祖師)의 선불교(禪佛敎)

제1장 심종교(心宗敎)의 계승자 혜능 조사(慧能祖師)

1 혜능 조사의 생애와 오도(悟道)
  ∙혜능 조사의 오도송(悟道頌)
  ∙중국불교인 선불교(禪佛敎)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
  ∙불성은 항상 청정하다[佛性常淸淨]

제2장 『법보단경』과 선불교(禪佛敎)

1 혜능 조사의 불성사상
  ∙혜능 조사 오도송의 의미
  ∙견성성불(見性成佛)
  ∙마하반야바라밀 염송(念誦)

제3장 『법보단경』 「반야품」

1 모든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반야지(般若智)
  ∙『법보단경』의 핵심인 「반야품」
  ∙「반야품」의 핵심인 마하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이란?
  ∙범부가 곧 불이요, 번뇌가 곧 보리[凡夫卽佛 煩惱卽菩提]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경』을 지송하라

2 돈교법문(頓敎法門)
  ∙점수(漸修)와 돈오(頓悟)
  ∙깨닫지 못하면 불(佛)이 중생이요, 깨달으면 중생이 불이다
  ∙자성을 깨달으면 즉시 불지(佛地)에 이른다[自性一悟 卽至佛地]
  ∙안팎이 사무쳐 밝아[內外明徹] 자기의 본심을 알면 곧 해탈이다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

3 달마 조사와 혜능 조사를 계승한 선사
  ∙회양 선사의 때 묻거나 물들여지지 않는 한 물건
  ∙도(道)는 닦을 것이 없다
  ∙마조 선사
  ∙대매법상(大梅法常) 선사
  ∙도(道)는 닦고 증득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심이 도(道)다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의 의미
  ∙개한테는 불성이 없다
  ∙뜰 앞의 잣나무

상세소개 위로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선현들이 제시한 수많은 길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가?
혜담 스님의 50여 년 오롯한 수행이 답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 선현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바람직한 길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 것인가?’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고민 속에서 이십 대 청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上求菩提 下化衆生]

이 한 줄의 가르침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한 지 50여 년!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는 오직 수행일념으로 점철되어온 혜담(慧潭) 스님의 소박하면서도 뜨거운 수행 여정을 담고 있다.


선불교의 뿌리인 달마와 혜능의 가르침을 수행의 빛으로 삼다

삶의 회의를 씻어내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겠다는 원력으로 출가수행을 시작한 혜담 스님은 선현들의 발자국을 따라 참선과 경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은사인 광덕 스님의 지도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수행’과도 만나고, 반야사상의 체계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학문적인 시각으로 불교 교리에 접근하는 학승의 한계를 절감하고, 귀국 후에는 더욱 조사어록에 전일하여 화두참구에 몰두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조사들의 화두가 자신의 화두가 되는 시간을 보내며 달마와 혜능의 선사상을 체득해 갔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마음을 다잡지 못해 갈등이 밀려오는 순간도 있었고, 깨달음 아닌 것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수행에 몰두한 나머지 뇌혈관이 터져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적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중생 제도를 실천하기 위해 전법교화에 매진하고, 저술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이처럼 혜담 스님이 수행자로 걸어온 지난 반세기는 실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삶 그 자체였다.

출가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삶의 고해를 지나 고희(古稀)에 이른 지금 혜담 스님은 “이제 조금 눈이 열린 것 같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역대 조사들과 은사 광덕 스님이 말씀하신 ‘번뇌가 다 한 것이 부처가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부처’임을 여실히 관(觀)한 스님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 책은 깨친 선승의 ‘할(喝)’이라기보다 묵묵히 걸어온 수행과정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회고록이자, 선승으로서 조사어록을 정리하여 설명한 지침서이다.


“선불교는 ‘달마의 심(心)종교’와 대면하는 것”
선은 불교의 일파가 아닌 인류의 거대한 지적 유산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되는 선(禪)은 인도불교와는 다른 중국적 성격을 지닌 불교 사상이다. 중국불교는 7~8세기 사이에 그 철학의 일단을 매듭짓고 새로운 불교사상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중국적 불교의 색채를 발하며 선불교를 낳았다. 따라서 선불교는 중국불교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혜담 스님은 이것을 ‘달마의 심(心)종교’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달마의 심종교’인 선은 예기치 않게도 중국을 넘어 국제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불교에서 파생했지만 새로운 사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선(禪)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님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禪)은 이제 불교의 일파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인류의 지적 유산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이처럼 파격적인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조사의 사상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선종 이전의 불교에서는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부처를 찾았다면, 선종은 오직 마음에서 부처를 찾는 데 결을 달리한다.

초기불교와는 다른 달마 대사의 심종교의 기본 골격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입이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본래 부처라는 이법(理法)과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한 행위로서의 수행 방법을 말한다. 사행은 ‘본래로 돌아가기 위한 네 가지 실천’을 가리킨다. 첫째는 보원행(報怨行)으로 수행하면서 겪는 장애나 역경은 전생에 지은 과보임을 알고, 괴로움을 만나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수행이다. 둘째는 수연행(隨緣行)으로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고 인연에 따라 움직인다는 진실을 깨닫기 위한 수행이다. 셋째는 무소구행(無所求行)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일체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이다. 넷째는 칭법행(稱法行)으로 자기 자신이 본래 청정하다는 도리를 깨닫는 수행이다.

초조 달마의 수행법에는 사념처(四念處) 등에서 말하는 부정관(不淨觀)이 없다. 본래 자성이 불성이고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기 때문이다.


달마의 심종교에 선불교를 입힌 혜능,
견성(見性)이든 성불(成佛)이든 결국은 마음 이야기

한국불교 선종 계통의 선사들은 모두 달마 대사의 심종교인 이입사행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달마 대사의 심종교는 육조혜능에 의해 선불교라는 옷을 입고 인도불교와는 결이 다른 중국불교로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선종은 달마 대사가 심종교로 시작하고 혜능 대사가 일으켜 세웠다는 사실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혜담 스님은 선불교와 기존 불교의 우위를 논하려 하거나 조사들의 뛰어남만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고 불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통찰하도록 유도한다.

달마의 사상도, 그 사상을 가장 잘 계승한 혜능도 결국 이야기하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혜능은 진여본성(眞如本性)을 강조한다. 본래 마음이란 진여본성이고, 진여본성은 불성(佛性)이다. 이 진여본성인 불성을 보면 그 자리가 그대로 해탈이기도 하다. 이는 혜능 대사의 불성사상을 가장 잘 나타낸 말로, ‘본성을 보고 난 후에 다른 수행을 하여 열반이나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본 그 자체가 성불이고 해탈이며 열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선종의 교리적 해석이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저자의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과 달마, 혜능의 사상을 통섭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수행의 길을 응집하여 결국, 출가 당시의 물음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의 답이다. 무엇에도 얽힘 없는 자유자재한 삶, 그러기 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안목을 키우는 지혜, 그것이다.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본디 없음을 보라!

혜담 스님은 서문 ‘이 책을 쓰면서’에서 스승인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틀림없이 무상(無常)・고(苦)・공(空)・무아(無我), 혹은 부정(不淨)・무(無常)・무아(無我)이긴 하지만, 이것은 현상에 대해서 범부들이 집착하기 때문에 범부들의 그릇된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당신이 깨달은 궁극적인 진실을 말한 게 아니다. 부정(不淨)에 대한 가르침, 고(苦)의 가르침, 무상(無常)의 가르침은 불법이며 부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부처님의 진실한 깨달음 자체는 아니다. 그러면 부처님 법문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법신(法身)이다.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즉, 실제로 부처님께서 깨달은 법문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다.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를 믿는 것을 순수불교라고 한다.”

결국, 불교의 광활한 가르침은 ‘마음 없음’에 귀결된다. 이 무궁무진한 지혜를 얻기 위한 50년 수행의 치열한 삶, 이 책이 전해주는 뜨거운 가르침이다.

책속으로 위로

이미 제 나이가 70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소납이 수행 과정에서 실패했던 경험들을 후배 수행자들이 똑같이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수행 경험과 선불교(禪佛敎)를 이 땅에 있게 하신 달마 조사와 혜능 조사의 선사상(禪思想)이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원고를 썼습니다. _7쪽, _‘이 책을 쓰면서’ 중에서

법문이 있어서 한강에 있는 강변북로로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텅 빈 내[我]’가 몸 전체에서 보였습니다. 나라는 이 신체가 내가 아님을

본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설하고 있는 “반야바라밀이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라는 부처님 말씀이 체득되었습니다. “산은 산이 아니다. 그 이름이 산이다. 그것이 그것을 본다. 부처님이 부처님을 보고 있다. 그것이 산이고 그것이 물이다. 그래서 산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산이다.”라는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_45쪽

소납은 위의 게송을 오도송(悟道頌)이라 여겼습니다. 은사스님의 예순여섯 번째 생신날이 왔습니다. 생신 축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보현사에 머물고 계신 큰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위 게송을 올려 바치고 점검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글을 다 읽은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치는 맞는 말인데, 너무 조작냄새가 나는구나!”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저의 견처(見處)가 아직은 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_39쪽

더 황당한 것은 달마 대사의 ‘텅 비어서 성스러운 진리마저 없다[廓然無聖]’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그렇다면 짐과 마주한 그대는 누구냐’는 무제의 물음에 ‘모른다[不識]’는 달마 대사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뇌리에는 확연무성(廓然無聖)과 불식(不識)이라는 단어가 들어앉았습니다. ‘텅 비었다’는 상태가 어떤 것이고, ‘모른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_94쪽

‘텅 빈 그 자리’, ‘불식의 자리’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성(本性)자리를 단순히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소위 해오(解悟)의 상태에 있으면서 그것이 견성(見性)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바르게 보았을 때, 『벽암록』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태로 다가왔습니다. _95쪽

조사의 사상이 그때까지 동북아시아 불교를 지배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결이 다른 선종을 일으켰다는 것과, 그 선종은 앞의 제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처를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서 찾는다는 사실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달마 대사의 이 사상이 『화엄경(華嚴經)』에서 설하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고[一切唯心造], 나타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의 표현이다[一切唯心所顯]”라는 불교의 근본대의(根本大意)를 적확(的確)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품반야경』을 비롯한 600부 반야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내 생명 마하반야바라밀 생명’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_97쪽

달마 조사로부터 시작되는 선(禪)은 초기 인도불교와는 다른 중국 민족 고유의 사상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중국불교는 7~8세기 사이에 그 철학의 일단을 매듭짓고 새로운 불교사상운동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민족 자체의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선불교는 중국불교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달마의 심(心)종교’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선은 이제 불교의 일파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고유하고 거대한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다루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_99쪽

여기서부터 초기불교와는 다른 달마 조사의 심종교(心宗敎)의 기본 골격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하면 조사의 가르침은 이른바 이입(理入)이며 구체적으로는 사행(四行)입니다. 이입이란 이법(理法)과 행위를 말합니다. 즉 본래부처라는 이법과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이입(理入)은 수행생활의 근거이며, 행입(行入)은 그 구체적인 수행의 실천입니다. _103쪽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다”라는 『유마경』의 말이나, “미혹한 마음 밖에 따로 깨달음은 없는 것,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마음을 파악할 수 없다”는 『금강경』의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의 가르침도 혜가 스님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다는 도리나 방법이 아니라, 참으로 번뇌를 끊지 않고 보리를 얻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_130쪽

번뇌가 다한, 번뇌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것입니다. 끊어 버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번뇌란 원래 없으므로 열반에 이른 상태나 불성・법성・진여(眞如)의 진리 자체로 계시는 부처님의 입장에서의 진리는 다릅니다. _169쪽

달마 조사의 심종교는 선불교라는 옷을 입고 인도불교와는 결이 다른 중국불교로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일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인물이 바로 혜능 조사입니다. _187쪽

혜담 스님  bulkwanger@naver.com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