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방랑기] 경북 영주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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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방랑기] 경북 영주 부석사
  • 이광이
  • 승인 2018.01.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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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지던 날, 조사전에 절하고 무이상無二相을 묻다
사진:최배문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법성法性은 원융圓融하여 무이상無二相이다. 무슨 뜻일까? 법은, 성은 무엇이고, 원융은 무엇이고, 무이상은 무엇인가? 칠언절구 하나로도 어렵고 쪼개질수록 더 어렵다.

이 비 그치면 겨울이다. 낮부터 내리던 비가 저녁공양 마치고 더 굵어졌다. 바람도 세차게 분다. 문고리가 덜커덩거리는 산사의 밤, 예불 끝난 저녁 7시가 오밤중이다. 저 바람에 몇 잎 안남은 것, 마저 지겠구나. 일엽지추一葉知秋, 잎이 하나 지는 것으로 가을이 오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겨울이 문지방을 흔든다. 의상 스님은 조사당에 계시는가, 부석사 마당에는 아무도 없다. 젖은 낙엽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만 처연하다. 겨울은 산사에 먼저 도착하였고, 이제 들로 내려갈 것이다. 계절이 승僧에서 속俗으로 간다. 

661년 그 동굴에서, 썩은 물 한바가지 나눠 마시고, 한 사람은 서라벌로 돌아가고, 한 사람은  당唐으로 떠나갔던 그 운명적 갈림길이, 우리 불교의 큰 획을 긋는다.

하나는 선禪의 길이고, 하나는 교敎의 길이었거나, 나아가는 것도 한판의 바둑이고, 회향하는 것도 한세상이다. 어쨌거나 의상 스님은 그길로 당 화엄종의 이조二祖 지엄 스님 문하에 들어 교학을 크게 깨치고, 훗날 해동화엄의 초조初祖가 된다. 이때(668) 쓴 불후의 명저가 ‘화엄일승법계도’다. 의상 스님이 원래는 『대승장』 10권을 지었는데, 스승으로부터 ‘의리義理는 아름다우나 문사文詞가 아직 옹색하다.’는 지적을 듣고 저술을 불태우기에 이른다.

여기서 타지 않은 210자를 얻어, 7언 30구로 게송을 지은 것이 「법성게」이고, 글자를 사각 도형 안에 그림처럼 배열한 것이 ‘화엄일승법계도’다. 광대무변한 화엄의 세계를 단 210자로 압축하여 화엄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 「법성게」의 첫머리가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다. 일연 스님은 “온 솥의 국 맛을 아는데 고기 한 점이면 족하다.”고 『삼국유사』에 썼다. 법성게에 관한 이 멋진 평은 ‘상정일련嘗鼎一臠’,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다.

‘산속의 중이 갑자甲子를 알지 못하나, 낙엽 하나로 가을이 왔음을 알고, 고기 한 점으로 솥 안의 국 맛을 알고, 깃털 하나로 마르고 습한 기운을 알고,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오고 있음을 안다.’ 스승 지엄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성게」의 9번째 시구,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뜻을 물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것이다. 티끌 하나에 시방세계, 무량의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은 고기 한 점으로 온 솥의 국 맛을 아는 것과 같은 구조다.

씨앗 하나가 나무 한 그루를 품고 있는 것 하며,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보면 그것이 자기 유사성을 갖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 나무이며, 산봉우리 하나가 같은 구조로 무한히 순환하는 것이 산맥이며, 구불구불 같은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해안이며, 우주만물이 그러하다는 이른바 ‘프랙탈fractal 구조’의 비밀을 이미 1,400년 전에 간파해버렸으니. ‘일미진중함시방’은 부분으로 전체를 꿰뚫은 경이로운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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