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월리사 대웅전 한산습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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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월리사 대웅전 한산습득도
  • 강호진
  • 승인 2018.01.0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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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삼경에 손가락을 만져보라
사진:최배문

달 월月, 속 리裡, 절 사寺. ‘달 속의 절’ 청주 문의면에 있는 월리사月裡寺를 문자 그대로 풀면 이런 뜻이다. 달 속의 절이라니, 시구처럼 멋지긴 한데 무슨 뜻인지 잘 다가오진 않는다. 1665년에 쓰인 월리사사적비는 달과 가까운 높은 곳에 위치해 월리사라 했다고 전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말끝을 흐린다.

월리사는 산 중턱에 있다. 그렇다면 월리사란 무슨 뜻일까? 우리는 이 질문과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니, 의문을 품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월리사 한산습득도를 선택한 것은 곡절이 있다. 원래 한산습득에 관해 쓰려고 했던 벽화가 따로 있었지만, 사찰에 도착한 순간 생각을 접어야 했다. 수장고에 모셔진 ‘유물’이 아무리 빼어나다할지라도 법당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늙어가는 벽화에 비할 바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도 첫정이 무섭다고, 이후로 눈에 드는 한산습득도가 드물었다. 그렇게 반년을 흘려보내고 찾아간 곳이 월리사다. 

만일 ‘절집’이라는 말에서 고요함, 호젓함, 여백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면, 월리사는 절집 그 자체다. 대웅전은 일요일 아침 목욕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이웃의 모습과 닮았다. 거대함으로 사람을 압도하고 화려함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사찰들의 틈바구니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랄까. 19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전의 벽화들도 간명하고 소박하긴 매한가지다.

한산습득도는 대웅전 내부 좌측 내목도리 윗벽에 그려져 있다. 화면 중앙에 자리 잡은 두 명의 인물. 얼굴엔 세월이 스친 흔적이 역력하지만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서 그린 화사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들을 아이라 부르기로 하자. 오른편 아이는 한 손에 불로초를 들고, 다른 손은 뻗어서 달을 가리키고 있다. 왼편의 아이는 소매를 바위 앞으로 늘어뜨린 채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알다시피 이들은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이다. 한산습득도의 다양한 유형들(빗자루로 바닥을 쓴다든지, 경전을 들고 있거나, 양팔을 벌리고 헤벌쭉 웃고 있는) 가운데 달을 가리키는 도상에 속한다. 누가 한산이고 어느 쪽이 습득인가? 이는 프랑스와 불란서를 구분하려드는 것만큼 덧없으나, 굳이 나누자면 달을 가리키는 쪽이 한산이다. 한산‘과’ 습득을 알기 위해선 ‘과’를 함께 살펴야 하는데, ‘과’를 맡고 있는 이가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산 국청사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풍간豊干 선사다. 『천태삼성시집天台三聖詩集』 서序에는 당시 관리였던 여구윤閭丘胤이 한산과 습득, 그리고 풍간을 만나 겪은 일화가 전기 형식으로 실려 있다. 한산과 습득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니 굵직한 뼈대만 짚어 보자. 

 

국청사에 적을 둔 행각승行脚僧 풍간, 그가 길에서 주워 기른 승려 습득, 그리고 국청사 주변 한암寒巖에 홀로 살던 은자 한산이 있다.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승려들에게 얻어맞던 한산은 자신을 위해 찌꺼기 밥을 모아서 전해주던 습득과 친구가 되고, 풍간 선사와도 교류하며 지낸다. 여구윤은 태주太州에 관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두통이 생겨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홀연히 풍간 선사가 찾아와 병을 낫게 한다. 여구윤이 스승으로 모실 이를 묻자 풍간은 한산과 습득이 문수와 보현의 화신이라 말한다. 여구윤이 국청사에 찾아가 그들에게 절을 하자 둘은 아미타불(풍간)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자신들에게 절한다고 꾸짖고는 한암 바위굴로 사라져버린다. 이후 여구윤이 사람을 시켜 세 사람이 남긴 시를 수집하고 묶어서 낸 책이 『천태삼성시집天台三聖詩集』, 이른바 『한산시집』이다. 그런데 시를 보면 한산은 보살이나 선사 같은 불교적 인물로 묶기엔 낯선 결이 도드라진다. 

“총명한 놈은 단명하기 십상이고(聰明好短命), 어리석은 놈이 오히려 장수한다(癡騃卻長年), 멍청할수록 재물이 풍족하고(鈍物豐財寶), 정신이 올바르면 땡전 한 푼 없구나(醒醒漢無錢).”

한산의 시에선 세태풍자뿐만 아니라 과거에 수차례 낙방하고 도교에 탐닉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화사는 신선마냥 불로초를 손에 쥔 모습으로 한산을 그려놓았다. 하지만 한산의 정체성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세 명의 성인은 물론 여구윤 또한 실존인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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