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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평화모니] 새로운 승가 공동체의 꿈쓰레기 없는 쓰레기마을 -

개구즉착開口卽錯 - 입 닥쳐. 염화시중拈花示衆 - 꽃 따 보임. 빈자일등貧者一燈 - 없는 할미 불씨 하나.

윤구병
철학자

저승 갈 날 가까울수록 부처 입은 무거워졌다. 유구무언有口無言-할 말이 없었다. 떼거지는 늘었지만 죄다 비렁뱅이였다. 입만 살아 있었다. 손발 놀리고 몸 놀려 제 앞가림할 수 있어야 저도 살고 이웃도 살릴 수 있겠는데, 일손 놓고 가르치려고만 들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먹이지 않으면 살릴 수도 없다. 살자고, 살리자고 배우고 가르치는 것 아닌가? 주둥이로 먹고 산다? 말로 먹여 살린다? 버러지들도 그러지 않는다. 땀 흘려 심고 가꾸고 거두지 않으면 먹을 수도 먹일 수도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죄다 헛소리거나 빈말이거나 거짓말,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나(부처-석가모니)야 어려서부터 일손 놓고도 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아비 어미 밑에서 태어나고 자랄 수 있어서, 그 덕에, 또는 그 탓에 아예 처음부터 손발을 어떻게 쓸 줄 몰라서 이렇게 살아왔다고 치자. 그런데 내 밑에 와 있는 이 손발 멀쩡한 것들 꼬라지는 무엇인가? 빌어먹고, 앗아 먹고 훔쳐 먹는 것들만 무더기로 길러낸 것 아닌가?

나 팔아서 입 놀려 먹고사는 식충食蟲이들만 대대로 양산해낸 꼴이 아닌가? 이 죄를 어떻게 갚지? 소나 되어 갚을까? 입 발린 부처도 부처인가? 할 말을 잃었구나. 저 먹을 것도 없는,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살아온 저 할미의 갈퀴손에 들린 기름등을 보아라.

두 해 동안 써 오던 되지 않은 소리 이번으로 마치려고 한다.(그 사이에 내 마음에 평화가 없었다. ‘평화모니’는 빈말이었다. ‘평화-뭐니?’였다.) 뒤늦게나마 낯 두껍게 몇 가지 내 가슴에 서려 있던 것을 ‘제안’할까 한다. ‘쓰레기 없는 쓰레기마을’로 절집 바꾸어내기. 사람이 이 땅별에 나타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슬기사람(homo sapiens)이 나타난 때를 얼추 10만 년 전이라고 치자. 이 사람들이 한 곳에 자리 잡고 낟알과 남새를 기르고 짐승들을 길들인 지는 1만 년 전쯤. 힘 있는 놈들이 모여 도시에 자리 잡고 우두머리를 뽑아 ‘전제군주’를 삼은 때는 5,000년 전 무렵.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를 개척하고 바다와 뭍에 장삿길을 연 지는 500년 남짓. (우리나라를 잣대 삼아) 농촌 인구와 도시 인구가 8:2의 비율에서 2:8로 바뀐 것은 지난 50년 사이. 이 빠르기로 세상이 바뀐다면 앞으로 5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그사이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대량살상 무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맞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릴 평화로운 삶터, 살림터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람을 비롯한 뭇산이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다. 그래서다. 이 땅의 남녘과 북녘에 평화마을을 되살리고, 낯설겠지만 그 마을 이름을 ‘쓰레기 없는 쓰레기마을’로 붙이자는 제안을 하는 까닭이.

보다시피 도시에서는(시골에서도)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멀쩡한 사람조차 쓸모없는 쓰레기로 버림받는 꼴도 눈앞에 보인다.) 이 쓰레기들을 모두 거두어들여 되살릴 길이 없을까?(어쭙잖은 자랑이지만 내 형 윤팔병은 50년 가까이 도시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모아 가리고 나누어서 ‘재활용’시키는 ‘넝마주이’로 살아왔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꽤 오래 ‘아름다운 가게’의 공동대표라는 ‘벼슬살이’(?)를 한 적도 있다.)

어려울 게 없다. 뜻만 내면 된다. 먼저 휴전선 가까운 파주, 연천, 철원, 문산 쪽에 마을을 세우자. 이미 있는, 그러나 사라져가는 마을에 자리 잡아도 되고 새로 터를 잡아도 된다. 서울과 인근 도시에서는 먹다 버린(죄 받을 일이다.) 음식물까지 보태서 온갖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을 어디에 버리느냐를 두고 실갱이가 벌어지고 있다.

먼저 음식쓰레기. 100% 재활용될 수 있다. 발효시켜 거기에서 생기는 ‘가스’는 따로 모아 방을 덥히거나 음식을 익히는 데 쓸 수 있다. 또 썩는 과정에서 생기는 구더기를 비롯한 벌레들은 닭 모이로 쓸 수 있다. (한 본보기로, 커피 찌꺼기를 따로 모아 그것으로 느타리버섯을 탐스럽게 길러낸 사람도 있고, 그것을 땅에 두툼하게 깔아 거기에서 생기는 여러 종류의 굼벵이들을 식용으로, 약용으로 쓸 수 있다. 지난해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누에번데기,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 갈색거저리 애벌레, 메뚜기, 귀뚜라미,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을 식품 원료로 인정했고, 앞으로 이 목록은 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다음으로 폐지. 달 지나거나 팔리지 않는 책자나 신문, 상품포장 골판지는 나날이 값이 떨어져 그것을 모으는 도시 할머니 할아버지 용돈도 안 되고 있다. 이것을 모아 사이사이 구멍을 뚫어 종이벽돌을 만들어 집 짓는 데 쓰면 된다. 비바람 들이치는 외벽용으로는 당분간 쓰기 어렵겠지만 칸막이 벽돌로는 훌륭한 쓰임새가 있다. 이 밖에도 종이의 쓰임새는 많다. 종이장판, 종이요, 종이이불, 아늑하고 불 땔 필요 없는 종이상자 꼴 침상도 만들 수 있다.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페트병? ‘스티로폼’ 대신에 벽돌 사이에 끼워 넣으면 훌륭한 단열재가 된다.(이미 변산공동체에서 ‘실험’과 ‘검증’을 거쳤다.) 빈 병? 달리 재활용이 안 된다면 불 때지 않는 방에 바로 세우고 거꾸로 세워서 그 위에 두툼하게 골판지 깔고 종이 덮으면 그 위에서 한겨울 날 수 있다. 빈 깡통? 상상력만 발휘하면 온갖 쓸모 있는 것, 심지어 예술품도 만들 수 있다.

이제 ‘사람 쓰레기’(?)다. 도시문명의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머리만 키우다가 쓸모없다고 버림받아 살길이 없는, 그래서 하릴없이 ‘룸펜프롤레타리아’가 되어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피 말리는 경쟁 대신에 상생과 공존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소비만 일삼는 ‘부랑자’에서 생산하는 ‘일꾼’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지난 스무 해 가까운 경험에 따르면, 도시 학교에서 내침당한 아이들이 변산공동체학교에서 ‘핸드폰’ 없이도, ‘텔레비전’ 보지 않고도, ‘게임’에 코를 박지 않고도, 머리 굴리는 시간에 손발 놀리면서도, 어른들 일손 도우면서, 제가 쓸 용돈 달라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으면서도 지네들끼리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 이 일에 불교가, 스님들이 앞장서야 하느냐고? 바로 얼마 전에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앞당기기 위한 ‘평화마을 만들기’ 제안서 초안을 만들어 몇몇 뜻있는 이들에게 돌려 읽힌 적이 있다. 이 가운데는 나라 밖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오랫동안 애써 온 분도 있고, 남녘땅에서 저 나름으로 자리를 펼쳐오던 이도 있다. 뜻만 있으면 뭘 하나? 길을 열어야지. 길을 열려면 닦아야지?

수도修道. 길 닦기를 일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곳. 바로 스님들이고 절집이다. 곧 한참(一眞) 스님을 만나려고 한다. 만나서 ‘평화마을 만들기’ 제안서를 보여주고 들들 볶으려고 한다. 그리고 ‘착한 사람’만 들들(달달인가?) 볶는 ‘들들(달달)펀드’(또는 ‘볶음밥펀드’)를 만들고 절 땅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려고 한다. 덩달아 사람도 내놓으라고. 그만큼 ‘평화운동’의 ‘전위’가 될 가능성, ‘평화의 전사’로 나설 싹수를 절집에서, 스님들과 그분들을 에워싼 ‘불자’들 사이에서 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잘못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50년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탠 죄가 나에게도 있으니, 죽기 전에 죄갚음하려고 한다.(변산공동체 땅들은 이미 ‘변산공동체 장학재단’에 몽땅 증여하기로 했으니, 이제 변산공동체에는 ‘사유재산’이 없다.) 나라도 볶고, 지자체도 볶고, 땅 가진 단체나 개인도 볶고. 들들 볶고, 달달 볶고,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볶아댈 참이다. 한참 그러노라면 길을 얻겠지. ‘득도得道’. 살길 찾고, 살릴 길 찾기.
이 늙은이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나 궁금해할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A4 용지로 자그마치 8쪽에 걸쳐 늘어놓은 ‘제안’을 큰 제목만 밝히면 아래와 같다.

1. 식량 주권이 없는 독립 국가는 허상이다.
2.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일은 식량 주권 확립의 기초 작업이다.
3. 모성(어머니 됨)은 세계평화의 보금자리다.
4. ‘죽임’에서 ‘살림’으로, ‘수직질서’에서 ‘수평질서’로 돌아서야 한다.
5. 도시에 의한 농촌의 식민화, 이것이 제국주의의 기초다.

이다음부터는 여러분과 함께 채워갈 자리다. (그동안 내 어쭙잖은 글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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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를 끝으로 ‘윤구병의 평화모니’를 마칩니다. 이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윤구병 선생님만의 유쾌한 언어로 풀어내주셨습니다. 평화모니가 되는 생각의 씨앗을 던져주신 윤구병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 

 

윤구병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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